[의대정원 증원 감사] 배정위에 전문가인 의대 교수 전무…일부 위원 현장점검 요청에도 교육부는 '일축'
이주호 전 교육부 장관. 사진=교육
[메디게이트뉴스 박민식 기자] 대통령실의 고집으로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의대증원은 이후 정원 배정 과정에서도 곳곳에서 문제점을 드러냈다.
정원 배정 신청부터 의대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고, 정원을 배정하는 배정위원회에는 의대교육 전문가인 의대 교수가 포함되지 않았다. 실제 각 의대가 배정된 인원을 감당할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현장 점검도 패싱했다. 과도한 증원을 밀어붙이려다 보니 발생한 무리수의 연속이었다.
감사원은 27일 공개한 의대증원 추진 과정에 대한 감사 보고서를 통해 의대정원 배정 과정에 대해서도 여러 문제점들을 지적했다.
17개 대학, 의대와 합의 없이 정원 신청…의대교수 없는 배정위 전문성 결여
감사원은 교육부가 의대증원 2000명 확정 이후 3월 초까지 40개 대학 본부나 총장으로부터 제출받은 정원 배정 신청서가 작성된 경위부터 파악했다.
그 결과 가톨릭대, 전북대, 충남대, 충북대, 경상국립대 등 5개 대학은 대학 측이 의대와 협의 없이 정원 배정 신청서를 제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강원대, 한림대, 고신대, 부산대, 순천향대, 연세대, 울산대, 원광대, 이화여대, 전남대, 제주대, 조선대 등 12개 대학은 대학이 의대에 협의를 요청했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했고, 나머지 23개 대학은 의대와 신청 인원에 대한 합의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대해 감사원은 “40개 의대 중 17개 대학은 대학본부에서 실제 의대생 교육을 담당하고 있어 증원 신청서 내용이 실현 가능한지 가장 잘 알고 있는 의대와 구체적 배정신청 인원에 대한 협의 또는 합의가 없었다”고 지적했다.
의대 교수들과의 합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정원 배정 신청이었던 만큼, 이어진 과정에서 교수들의 보이콧도 예고된 수순이었다.
교육부는 2024년 2월 말 현직 의대 교수들에게 연락해 배정위원회 위원으로 참여 의사를 문의했지만, 위원직을 수락하는 교수가 전무했다. 결국 이후 위촉된 7명(교육부∙복지부 관계자 1명씩 포함)의 위원 중에는 의대교육 현장의 전문가인 의대 교수가 단 한 명도 없었다. 반면 교육부는 2021학년도부터 2025학년도까지 보건의료계열 정원배정위 외부위원 22명 전원을 관련학과 교수로 위촉해 왔다.
이에 대해 감사원은 “의대정원 배정위원회 위원으로 위촉된 7명은 의대 교수로 교육과정을 설계하고 운영해 본 현장 경험이 없어 대학이 제출한 교원∙교사∙실습장비∙임상실습자원 현황 및 확충 계획이 늘어난 정원을 수용하기에 충분한지, 확충 계획이 실현 가능한지, 이런 계획이 실현될 경우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의평원) 평가인증 획득∙유지가 가능한지 등에 대해 평가할 수 있는 전문적 지식과 실제 현장 경험을 의대 교수보다 더 많이 보유할 위치에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의대 정원 배정위원회에는 의대 교육 전문가인 의대 교수가 한 명도 포함되지 않았다. 사진=감사원
감사원은 현장 점검이 이뤄지지 않았고 배정 기준도 일관되게 적용되지 않았다는 점도 문제 삼았다.
보건복지부는 2000명 증원을 발표하기 전인 2023년 11월 40개 대학을 대상으로 증원 수요 조사를 실시하고 같은 해 12월 말까지 서면 검토(40개 대학)와 현장점검(14개)을 진행한 뒤 12월 28일 ‘의학교육점검반 활동보고서’를 완성했다.
하지만 교육부는 해당 보고서 검토 결과, 이를 정원 배정 과정에서 판단 근거로 활용하기 어렵다고 결론 내렸다. 현재 상황에서 증원 수요 감당이 어려워 보이는 대학이 있는 데다, 점검도 총평 수준의 내용에 그칠 뿐 개별 대학의 교육역량 실태, 향후 확충 계획의 타당성 등은 빠져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현장점검은 가천대 등 14개 대학을 대상으로만 실시됐다는 점도 치명적인 흠결이었다.
현장점검 요청 번번이 일축…정원 가감 조정 사유도 일관적 적용 안 해
이와 관련 배정위 회의에서 일부 위원은 대학의 실제 증원 수용 능력 확인을 위해 현장 점검을 실시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교육부 소속 위원은 “복지부 의학교육점검반이 현장방문을 했고 이후 교육여건이 많이 바뀌지는 않았으므로 해당 활동 결과 자료를 활용하면 배정위의 현장방문 없이도 대학별 증원신청 규모의 객관성 검증이 가능하다”는 취지로 답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교육부는 의학교육점검반 활동 보고서를 배정위 위원들에게 제공하지 않았다.
이후 회의에서 증원 규모가 가장 큰 충북대의 경우 실습병원 부족 등의 우려가 있어 별도 현장점검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기됐지만 역시 교육부 측 위원이 “정부의 예산 지원을 통해 사후 관리가 가능하다”고 일축했다.
감사원은 이에 대해 “교육부는 대학 유형별 배정기준 상한을 적용해 정원을 배정한 후 고신대는 과거실적 정량심사 자료를 토대로 평가한 실습여건 분야 점수 저조 등을 이유로, 인제대는 정원배정신청서의 연도별 투자계획 작성 부실 등을 이유로 감소 조정했을 뿐, 대학별 현장점검 등의 방법으로 대학의 향후 교육여건 확보 가능성 등에 대한 체계적 점검 없이 정원 배정 규모를 최종 결정했다”고 했다.
이어 “이와 관련해 각 대학이 교육부에 2024년 3월 4일까지 제출했던 교원, 교사, 실습장비 등 교육여건 확보 현황 및 향후 확충계획의 실현 가능성이 부족했던 사례가 있다”며 충북의대 사례를 언급하기도 했다.
충북대가 교육부에 제출한 정원배정신청서에는 임상실습 병원으로 활용하기 위해 충북대병원 충주 분원을 2029년까지 건립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지만, 의평원 평가 결과에는 “현재 병원 건립을 위한 예타 조사 단계에 있고, 계획대로 진행돼도 2031년 완공이라 2~3년간 공백이 예상된다”는 내용이 기재돼 있었다는 것이다.
감사원은 또 ▲전국 대비 대학 소재지 권역의 인규 비율 저조 조정 ▲수도권 임상실습 비율 과도 조정 ▲낮은 실습여건 점수 조정 ▲지역인재전형 법정 기준 미준수 조정 등 정원 가감 조정 사유를 대학별로 동일하게 적용하지 않은 부분을 지적하며 “정원 배정기준을 일관성 없이 적용해 대학별 정원 배정의 타당성∙형평성이 저해되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주의 조치했다.
다만 감사원은 이해 충돌 우려가 있는 충북도 소속 공무원이 배정위원회 위원에 선임된 건, 배정위 회의록이 작성되지 않은 건 등에 대해선 감사 결과 문제 삼기 어렵다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