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 부위별·다주파수 체성분 분석기 상용화…30년 만에 매출 2340억원 글로벌 기업으로
인바디(당시 바이오스페이스)가 1996년 처음으로 출시한 제품인 InBody 2.0의 모습.
[메디게이트뉴스 박민식 기자] 국내 의료기기 기업 인바디가 올해로 창립 30주년을 맞았다. 차기철 회장이 전세자금으로 마련한 작은 지하 사무실에서 출발한 인바디는 이제 연 매출 약 2340억원(2025년 기준)의 80% 이상을 해외에서 올리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현재 미국, 일본, 유럽, 중국 등 14개 해외법인을 두고 전 세계 110여개국에 진출해 있다.
1996년 창업 당시 국내에서 불모지에 가까웠던 정밀 체성분 분석기 시장을 개척해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한 인바디의 역사는 국내 의료기기 산업에서도 독특한 사례다. 의료기기산업 전문 기자단은 지난 18일 인바디의 지난 30년을 돌아보기 위해 충남 천안공장을 찾았다.
공장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기자들을 맞은 건 커다란 벽에 새겨진 ‘우리는 세계 최고의 기계를 만드는 사람들입니다’라는 문구였다. 실제 차 회장의 필체를 본떠 만들었다는 이 문구에서는 인바디가 제품과 기술력에 갖고 있는 자부심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사무동 4층에는 인바디가 걸어온 발자취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역사관 ‘인바디 히스토리움(InBody Historium)’이 마련돼 있었다. 창립 30주년을 기념해 지난 5월 문을 연 공간이다.
입구부터 기자들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인바디(당시 사명 바이오스페이스)가 1996년 처음 세상에 내놓은 체성분 분석기 ‘인바디 2.0’이었다.
인바디 2.0은 부위별·다주파수 측정 기술을 적용한 세계 최초의 체성분 분석기다. 한눈에 봐도 묵직해 보이는 이 기기는 회사 측이 역사관을 조성하기 위해 전국을 수소문한 끝에 어렵게 확보했다고 한다. 지방의 한 한의원에서도 한 대가 발견됐지만, 약 30년이 지난 지금도 실제 사용 중이어서 가져오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인바디 2.0에 적용된 생체전기임피던스분석법(BIA)은 당시만 해도 지금처럼 보편적인 체성분 측정법은 아니었다. 체성분을 측정하는 방법으로는 수중체밀도법, 피부두겹집기법, 정밀 측정법으로 널리 사용되는 이중에너지 X선 흡수계측법(DXA) 등이 있었지만 측정의 번거로움과 비용, 활용성 등에서 각각 한계가 있었다. 이때 비교적 간편하고 안전하면서 반복 측정이 가능하다는 장점을 앞세워 가능성을 보여준 기술이 BIA였다.
BIA는 인체에 미세한 교류 전류를 흘려보냈을 때 발생하는 임피던스, 즉 인체의 전기적 저항을 측정해 체성분을 추정하는 기술이다. 수분과 전해질이 많은 근육 조직은 전류가 상대적으로 잘 흐르는 반면 지방 조직은 잘 흐르지 않는다는 특성을 이용한다.
그러나 초기 BIA에도 한계가 있었다. 당시 장비들은 주로 단일 주파수를 사용하고 인체 전체를 하나의 원통처럼 간주해 임피던스를 측정했다. 이 때문에 세포 안팎의 수분을 세밀하게 구분하기 어렵고 팔, 다리, 몸통처럼 구조와 단면적이 크게 다른 부위의 특성을 충분히 반영하기 어려웠다.
인바디는 이 문제를 여러 주파수를 이용하는 다주파수 측정과 팔∙다리∙몸통을 각각 나눠 측정하는 부위별 직접 측정 방식으로 풀었다. 여기에 손과 발의 8개 지점에 전극을 접촉시키는 방식을 적용해 측정 위치에 따른 오차도 줄였다. 인바디가 BIA 자체를 처음 만든 것은 아니지만, 기존 기술의 한계를 보완해 정밀 체성분 분석기로 상용화하면서 시장의 판도를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지난 5월 개관한 인바디 히스토리움 내부 모습.
회사가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가 된 것은 외환위기의 여파가 채 가시지 않은 1999년이었다. 당시 인바디는 의료기기와 계량기 분야에서 한국보다 앞서 있던 일본 기업에 오히려 체성분 분석 기술을 수출했다.
계약 상대는 일본 계량기 업체 야마토(Yamato Scale)였다. 당시 바이오스페이스는 핵심 체성분 분석 기술을 이전하는 대가로 선급 기술료 20억원과 이후 제품 매출에 따른 로열티를 받는 계약을 체결했다. 당시 회사의 연간 예상 매출이 약 40억원 수준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선급 기술료만 매출의 절반에 달하는 대형 계약이었다. 한국의 작은 의료기기 벤처가 일본 기업에 기술을 팔았다는 사실 자체가 드문 일이던 시기였다.
이후 인바디의 해외 진출에는 속도가 붙었다. 2000년 6월 일본법인을 설립했고 같은 해 12월 코스닥 시장에 상장했다. 2002년 4월에는 천안공장을 완공하며 자체 제조 기반을 갖췄다.
2003년에는 현재 단일 국가 기준 인바디 최대 시장인 미국에서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받았다. 2025년 기준 미국 매출은 약 789억원으로 전체 매출의 33.7%를 차지한다. 국내에서 출발한 기업이 이제 전체 매출 3분의 1 이상을 미국에서 벌어들이고 있는 셈이다.
초기 헬스장과 건강검진센터를 중심으로 보급되던 인바디는 병원뿐 아니라 군부대, 스포츠 구단 등으로 활용 영역을 꾸준히 확대했다.
이에 힘입어 매출도 지속적으로 성장했다. 설립 후 매출 500억원 달성까지는 약 15년이 걸렸지만 1000억원 돌파는 그로부터 9년 뒤인 2020년 이뤄졌다. 당시 매출은 1071억원이었다. 2024년에는 연 매출 2045억원을 기록해 처음으로 2000억원을 넘어섰다. 1000억원을 돌파한 지 불과 4년 만이다.
히스토리움에는 이 같은 매출 성장과 해외시장 개척을 이끌었던 역대 제품들과 수출 실적을 기념하는 트로피가 빼곡히 전시돼 있었다.
18일 천안공장에서 인바디 제품을 조립 중인 직원들 모습. 사진=인바디
인바디가 30년 동안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기술뿐 아니라 제조방식에 대한 고집도 자리하고 있다.
현재 천안공장에는 제조인력 45명, 관리인력 50명 등 총 95명이 근무하고 있다. 인바디는 창업 이후 체성분분석기의 설계부터 핵심 보드 개발, 조립, 검증까지 완제품을 직접 만드는 방식을 유지해왔다. 특히 전문가용 체성분 분석기 생산에는 대량생산에 흔히 쓰이는 컨베이어벨트가 아닌 ‘셀 생산’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셀 생산은 작업자가 생산라인의 일부 공정만 반복하는 대신 한 대의 장비를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는 방식이다. 인바디에서는 한 작업자가 조립부터 검사, 포장, 출하까지 전 과정을 담당한다. 매출이 2000억원을 넘어선 지금도 전문가용 체성분 분석기의 조립 인력을 20명 안팎으로 유지하며 이 같은 생산방식을 이어가고 있다. 가정용 제품은 대랑 생산을 위해 일부 변형된 셀 생산 방식을 적용한다.
실제 이날 천안공장에서도 20~30대 젊은 직원들이 각자 자신의 작업공간에서 제품 한 대를 처음부터 끝까지 조립하고 있었다. 각 장비에는 조립을 책임진 직원의 이름이 붙는다. 이른바 ‘셀장 책임제’다. 완성품에 자신의 이름이 남는 만큼 작업자 한 명 한 명이 제품 품질을 직접 책임진다는 취지다.
조립이 끝났다고 제품이 바로 출하되는 것도 아니다. 생산된 장비는 인근 건물에 마련된 ‘김구현테스트실’에서 다시 신뢰성 검증을 거친다. 품질관리파트 김구현 부장의 이름을 그대로 딴 이곳에서는 제품 상용화 전 실제 사용 환경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찾기 위해 장비를 수백, 수천 차례 반복 작동시키는 등 각종 검증이 이뤄진다. 이런 과정을 모두 거친 인바디 제품은 국내는 물론이고 전 세계 시장으로 향한다.
인바디 관계자는 “지금과 같은 성과가 나올 수 있었던 핵심 요인은 결국 기기의 품질이다. 제조 공장은 인바디의 심장인 셈”이라며 “이렇게 만들어진 장비를 통해 전 세계에서 쌓인 체성분 데이터가 2억 4000만 건에 달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