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당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정세영 교수(정보화실장) 연구팀이 인공지능(AI)을 활용해 1차 의료기관과 대형병원 사이의 중간 단계를 만드는 ‘1.5차 의료체계(1.5-Tier Healthcare System)’ 모델을 네이처 포트폴리오(Nature Portfolio)가 발행하는 국제 학술지 'npj 헬스 시스템'에 게재했다고 17일 밝혔다.
이번 연구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박상민 교수 연구팀, 차지호 국회의원 등이 함께 참여했으며, ‘Bridging primary care with artificial intelligence: toward a global 1.5-Tier Healthcare System’이라는 제목으로 9월 2일 온라인에 공개됐다.
연구팀은 AI가 동네 병원(1차)과 대형병원(2·3차) 사이에 ‘디지털 다리’ 역할을 수행해 별도의 의료진 증원 없이 환자별 세심한 관리가 가능하다고 제안했다.
분당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정세영 교수(정보화실장) 연구팀 자료
연구팀은 AI가 강화할 수 있는 1차 의료의 네 가지 역할을 제시했다. 첫째 ‘첫 관문’(First Contact) 역할로, AI가 사진이나 검사 데이터를 분석해 대형병원 이송 여부를 판단하도록 돕는 것이다. 호주 1차 의료기관에서 진행된 전향적 임상연구에서는 자동 안저 촬영과 AI 녹내장 선별검사를 결합한 결과, 검사 대상자 161명 중 18명(11.2%)이 그동안 인지하지 못했던 녹내장 환자로 확인됐다.
둘째 ‘진료 조율’(Coordination) 기능이다. 전자의무기록(EMR) 데이터를 대형언어모델(LLM)에 입력했을 때, 별도의 사전 학습 없이 진료 의뢰서와 퇴원 요약서를 최대 99.25%의 정확도로 자동 작성했다. 이는 의료진이 직접 작성한 요약본과 높은 일치도를 보였다.
셋째 ‘포괄적 진료’(Comprehensiveness) 지원으로, 다른 목적으로 촬영한 흉부 CT에서 AI가 우연히 심장 혈관 이상 신호를 발견해 알려주는 방식이다. 미국 ‘노티파이-1(NOTIFY-1)’ 프로젝트에서는 관상동맥 석회화 여부를 AI로 분석해 스타틴 처방률을 검사 전 6.9%에서 6개월 뒤 51.2%로 높였다.
넷째 ‘지속적 관리’(Continuity)다. 연속혈당측정기와 AI 기반 맞춤형 생활습관 교정을 결합한 무작위 대조 임상시험에서는 제2형 당뇨병 환자의 71.0%가 약물 없이 정상 혈당을 유지하거나 복용 약을 줄이는 데 성공했다. 아랍에미리트(UAE)의 AI 기반 원격 혈당 관리 연구에서는 당화혈색소 개선 폭이 일반 치료군(-0.10%)보다 AI 관리군(-2.19%)에서 크게 나타났다.
연구팀은 AI가 진단이나 치료를 최종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의료진의 판단을 보조하는 역할에 머물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류 작성 등 위험도가 낮은 업무는 AI에 맡기되, 진단이나 약물 처방 등 중요한 결정은 의료진이 최종 확인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한국은 전자의무기록(EMR) 보급률이 95%를 넘고 전 국민 건강보험이 갖춰져 있으나, 국민 1인당 연간 외래 진료 횟수는 18회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6.5회)의 3배에 가까워 대형병원 쏠림 현상이 뚜렷하다. 연구팀은 이러한 문제들이 공존하는 한국이 1.5차 의료체계를 시험할 적합한 무대라고 설명했다.
정세영 교수는 “AI를 활용하면 특별히 많은 인력과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환자 한 명 한 명에게 더 세심한 관심을 기울이는 의료가 가능해진다”며 “이번 연구는 ‘누구나 누리는 맞춤 의료’로 가는 구체적인 청사진을 제시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