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학교 안암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조철현 교수 연구팀이 아바타를 활용한 원격 심리치료의 사용자 경험을 분석해 디지털 심리치료 플랫폼 설계 기준을 제시했다. 연구팀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논문이 디지털 헬스 분야 국제학술지 'Journal of Medical Internet Research'에 게재됐다고 11일 밝혔다.
이번 연구는 국민대학교 스마트경험디자인학과 허정윤 교수 연구팀,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USC) 애넌버그 커뮤니케이션·저널리즘 스쿨 연구진과 공동으로 진행됐다. USC 애넌버그 스쿨 박사과정 이혜리와 국민대학교 스마트경험디자인학과 황지현 석사가 공동 제1저자로, 조철현 교수와 허정윤 교수가 공동 교신저자로 참여했다.
연구팀은 심리건강 관리 필요성을 느끼는 만 19세부터 70세까지 성인 60명을 대상으로 아바타 매개 원격 심리치료를 진행했다. 이 중 30명을 선정해 심층 면담을 실시하고, 2233개의 초기 분석 항목을 508개로 정리한 뒤 4개의 핵심 주제를 도출했다.
첫째는 '익명성과 자기표현의 균형'이다. 실제 외모가 드러나지 않아 심리적 부담이 낮아졌으나, 외모의 유사성보다 표정이나 몸짓이 자연스럽게 반영되는 '행동의 사실성'이 아바타를 자신의 분신처럼 느끼는 데 중요했다. 둘째는 상담 전·중·후의 공간 설계다. 상담 전 가상 대기공간은 긴장과 예기불안을 줄이는 '심리적 전이 공간'으로 작용했으며, 상담 중 아바타 표시 선택 기능과 상담 후 감정 기록 및 익명 교류 공간에 대한 요구가 나타났다.
셋째는 가상공간과 현실 일상을 이어주는 '메타-커넥션(meta-connection)' 구조다. 상담 경험이 일상에서의 감정 점검과 행동 변화로 이어지고, 다시 다음 상담으로 연결되도록 정기적인 심리평가나 알림 등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넷째는 상담자 역할과 기술적 안정성이다. 아바타 상담에서는 고개 끄덕임이나 시선 등 제한된 비언어적 신호가 중요하므로, 상담자 교육과 안정적인 네트워크, 개인정보 보호 체계 마련이 필요했다.
연구팀은 익명 아바타가 사회불안이나 수치심이 큰 사람에게 '안전행동(safety behavior)'을 유발해 장기적 회피를 고착시킬 수 있음을 경고했다. 따라서 아바타 상담을 대면치료의 완전한 대체재가 아닌, 단계적 돌봄 체계 안에서 활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조철현 교수는 "얼굴을 가리면서도 표정은 전달하는 설계가 자기개방의 문턱을 낮출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숨을 수 있다는 안도감이 회피를 고착시키지 않도록 단계적 돌봄 체계 안에서 설계돼야 한다"고 말했다.
허정윤 교수는 "사용자는 상담실 안팎에서 치료 여정에 있으므로, 대기 공간과 성찰 공간 등을 포함한 단계적 공간 설계가 중요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