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6.04.11 21:51최종 업데이트 26.04.11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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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집단행동은 왜 번번이 실패했나…'의협 회장 3인 공동체제' 파격 제시

의료계, 투쟁으로 협상력 만들어내지 못해…의협 '연합형 거버넌스'가 미래 대안될 수 있어

대한병원의사협의회 안양수 고문.

[메디게이트뉴스 하경대 기자] 의사들의 집단행동은 왜 번번이 실패로 귀결됐을까.

이 같은 질문에 대한병원의사협의회 안양수 고문은 단순한 '투쟁 의지 부족'이나 '조직력 약화'가 답이라고 보지 않았다. 

그의 진단은 훨씬 더 구조적이었다. 안 고문은 11일 병의협·바른의료연구소 세미나에서 "의사들의 투쟁은 싸움을 위한 싸움이었을 뿐, 정작 중요한 협상력을 만들어내지 못했기 때문에 실패했다"고 봤다. 투쟁은 목적이 아니라 협상을 가능하게 하는 수단이어야 하는데, 의료계는 그 점을 끝내 체계화하지 못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안양수 고문은 "투쟁은 싸우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협상을 하기 위해 하는 것"이라며 "협상이라는 것은 투쟁과 분리될 수 없다. 협상이란 결국 양쪽이 모두 괴로워야 성립하는 것인데, 한쪽만 아프고 다른 쪽은 아무 일도 없으면 협상은 열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안 고문이 보기에 의료계가 늘 불리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정부는 정책을 밀어 붙여도 당장 괴로울 일이 없지만, 의사들은 파업이나 집단행동에 나서는 순간 사회적 비난과 제재를 먼저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 너무 좋은데 왜 바꾸겠느냐는 식의 태도가 정부와 국민에게 동시에 존재한다면, 의사들이 아무리 강하게 외쳐도 상대가 움직일 이유가 없다. 협상의 본질은 내가 상대에게 고통을 줄 수 있느냐의 문제"라며 "단순히 목소리를 높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상대가 '이대로 두면 더 큰일 나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실제로 싸우지 않아도, 저 집단은 언제든 움직일 수 있겠다는 느낌만 줘도 협상력이 생긴다. 이는 단순한 선동이 아니라 전략적 메시지에 가깝다.  의사 사회가 너무 조용하고, 너무 개별적이며, 너무 은밀하게 움직이다 보니 상대가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2020년 의사파업과 이번 의정갈등 사태 전반을 관통하는 안 고문의 메시지는 명확했다. 의사들의 투쟁은 '왜 졌는가'보다 '왜 상대가 양보할 이유를 만들지 못했는가'를 되돌아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단순한 구호나 감정적 저항만으로는 협상이 성립하지 않는다"며 "내부 결속을 만드는 숫자, 사회적 명분, 조직의 구조, 상대를 두렵게 하는 기세가 함께 있어야 한다"며 의사 집단행동 실패 원인을 분석했다. 

이어 "투쟁은 싸움이 아니라 협상력의 기술이다. 의사 사회가 반복해서 같은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더 크게 외치는 것보다 먼저 상대가 움직일 수밖에 없는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내부 결속이 중요하고 '내가 혼자 힘든 게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데이터'를 통해 실상을 공유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사진=대한병원의사협의회 안양수 고문 발표자료


지금 의협 구조론 아무것도 이루기 힘들어…3인 대표 의사 연합체 필요

바른의료연구소 정인석 소장은 향후 제대로 된 투쟁을 위해 대한의사협회 구조 개혁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평가했다. 

현재 14만 회원의 3분의 1 수준일 때 만들어진 수십 년 전 의협 구조가 그대로 유지되는 상황에선 여러 직역, 세대별로 다른 의사들의 목소리를 하나로 모으기 힘들다는 취지다. 

정 소장은 "현재 의협 구조로는 우리의 원하는 것을 제대로 얻어낼 수가 없다"며 "단일 협회 구조의 한계로 직역 간 이해 충돌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 개원의, 봉직의, 교수, 전공의들 사이에 하나의 컨센서스를 형성하지 못하고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이런 갈등은 의대 정원 정책 논란으로 인해 더 부각됐고 젊은의사에 대한 의협의 대표성도 매우 부족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개편 방향에 대해선 의협 해체 보다 연합형 거버넌스 구조가 제시됐다. 구체적으로 의료계를 직역(개원의·봉직의·교수·전공의), 전문가(의학회 등), 지역(지역의사회), 총 3개 거버넌스로 재구조화해 3인 공동대표 시스템으로 연대하자는 것이다. 

그는 "처음엔 단순히 의협을 완전히 해체하고, 새롭게 만들면 어떨까도 생각했다. 갑자기 협회가 사라졌을 때, 정부에게도 충격이 있고, 의사들 사이에도 큰 충격이 있을 것이다. 그 충격이 오히려 협상에 유리할 수 있다고 봤다"며 "그러나 현실적으로 갑자기 사라지는 것보다는 구조를 재설계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전했다. 

아울러 "단일 조직 대신, 여러 조직이 연합해 '연합형 거버넌스'를 만드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 특히 정책과 이익을 분리해서 담당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면서 "의협 회장 한 사람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되는 구조를 바꾸고 직역과 지역 등에 균형 있게 권한을 분배하는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정인석 소장은 "의사들 모두가 충분히 논의하고 합의한 기반에서 결정이 내려져야 한다. 그 속에서 소외감을 느끼는 젊은 의사들의 참여를 더 크게 확대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직역 60%,전문가 15%, 지역의사회 25% 비율로 대의원회를 구성하면 더 균형잡힌 구조가 될 것"이라고 제언했다. 

그는 "각 직역 이익을 대변하는 조직은 노조형태로 가고, 전문가 조직은 의학회와 비슷한 조직으로 전문성과 정책을 담당하고, 지역 조직은 현재 지역의사회로 지역 공공성을 강화하는 역할을 맡으면 적절할 것"이라며 "단일 회장 체제를 폐지하고 이 공동대표 3인 체제로, 싱크탱크인 정책위원회와 협상위원회도 별도로 나눠 실제적 협상은 협상위에게 실권을 주는 형태를 고민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가짜 수가 협상, 노조가 함께 가야 '진짜 협상' 된다
 
대한병원의사협의회 주신구 회장.


투쟁과 함께 향후 의료계 협상을 위한 발판으로 의사노조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주장 역시 함께 나왔다. 

대한병원의사협의회 주신구 회장은 "우리가 뭐라도 싸우려고 하면, 공정거래위원회가 바로 출동한다. 사업자 간 담합이라고 해서 칼을 꽂는다. 세무조사, 업무개시명령, 업무정지 등의 위협 속에서 우리가 이런 위협을 피해 나가려면, 노조를 만들 수밖에 없다"며 "노조는 헌법에서 보장되는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가진 구조"라고 전했다. 

그는 “의협은 의료법에 놓이고, 노조는 노동조합법을 통해 보호받는 구조”라며, “의협이 노조를 품으면 양쪽의 보호권을 동시에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노조를 통한 현실적인 변화론 '수가협상'이 꼽혔다. 지금은 사실상 일방적인 통보형식이지만, 노조가 들어가야 제대로 된 협상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주 회장은 "앞으론 건정심이나 수가 협상단에는 의협 대표뿐 아니라 노조 대표도 함께 가야 한다. 개원의 대표도 가고, 노조 대표도 가야 한다. 노조 대표가 함께 가야 단체교섭권을 행사할 수 있고, 그때야 수가 협상이 본격적인 노사 교섭이 된다"고 말했다. 

아울러 "의사가 통제의 대상이 아니라, 대등한 교섭의 주체가 돼야 대한민국 필수의료의 지속 가능한 미래가 시작된다”며 "봉직의 노조, 교수 노조, 전공의 노조, 개원의 노조가 각각 발전한 뒤, 그 위에 전국의사노조라는 빅텐트를 만드는 것이 지금 우리가 가야 할 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경대 기자 (kdha@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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