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4.04.21 09:18최종 업데이트 24.04.21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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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의료대란' 해결 의지가 있기나 한가...의료개혁 특위는 기울어진 운동장일 뿐

[칼럼] 좌훈정 대한일반과개원의협의회장·대한개원의협의회 기획부회장

사진=대한민국 대통령실

[메디게이트뉴스] 정부여당의 4.10 총선 패배로 인해 지난 2년 간 국정 운영에 대한 책임론이 불거지는 가운데, 특히 최근 2개월 동안의 ‘의료대란’에 대한 정부의 태도변화 및 조속한 해결을 요구하는 여론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런 차원에서 정부는 대통령 직속의 ‘의료개혁 특별위원회’ 구성을 추진하고 있으나, 정작 당사자인 대한의사협회나 전공의들의 반응은 매우 냉담하다.
 
정부가 구성하려는 의료개혁 특별위원회는 정부, 의료공급자, 의료수요자, 보건의료 전문가 등 25명 안팎 규모의 기구로서, 정부에서는 보건복지부와 교육부, 법무부 등 관계 부처 장관들이 참여한다. 의료공급자 측에서는 의사 단체를 비롯해 간호사, 약사, 치과의사, 한의사 단체 등이 참여할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의료소비자 측에서는 환자단체, 근로자·경영자 대표 등이 참여하며 그 외 보건의료 분야의 전문가들도 참여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를 바라보는 의사들은 또다시 불쾌한 데자뷰(기시감)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이번 사태가 지난 2월 6일 열렸던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에서 대한의사협회의 의견 한번 제대로 들어보지 않고 불과 1시간 만에 매년 의대정원을 2000명씩 늘린다는 정부안을 서둘러 통과시킴으로써 촉발됐기 때문이다. 바로 그 보정심의 인적 구성도 지금 만들겠다는 의료개혁 특별위원회와 별반 다르지 않다.
 
보건복지부 산하 보정심의 위원은 총 25명으로 정부 7명, 환자단체, 소비자단체, 언론 등 수요자대표 6명, 공급자대표 6명, 전문가 5명으로 구성돼 있다. 결국 의대 정원 문제와 관련된 당사자인 의사의 대표는 대한의사협회 단 한 명뿐으로, 의사들의 의견을 충분히 들었다는 정부의 주장과는 달리 실질적인 소통 없이 일방적으로 강행 결정된 셈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기하자는 정부
 
의사들은 이미 20여 년 전부터 이런 불공정한 일들을 숱하게 겪어왔다. 그 대표적인 무대가 보건복지부 산하의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이다. 건강보험정책에 대한 사안들을 심의 의결하기 위해 설치되었던 건정심의 위원은 총 25명으로 건강보험 가입자대표 8인, 공급자대표 8인, 공익대표 8인 그리고 위원장을 맡은 보건복지부 차관으로 이뤄져 있다. 그런데 공익대표들이 주로 정부의 산하 기구나 정부가 지명하는 단체의 추천으로 오는 위원으로 구성되고 있어 사실상 정부의 뜻대로 대부분의 사안들이 결정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지난 20여 년간 의료계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매번 정부의 마음대로 의료정책들이 일방 통행되는 것을 보고 울분을 금치 못했다. 그 결과 정부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을 갖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번에 만들어지는 의료개혁 특별위원회 역시 건정심이나 보정심과 전혀 다를 바 없는 의사결정 구조를 갖고 있다. 세 기구 모두 숫자조차 한명도 다르지 않은 25인으로 구성되고 그 중 의사들의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는 위원은 한두 명에 불과하다. 보정심은 건정심 시즌2, 의개특위는 보정심 시즌2라는 조소(嘲笑)가 나오고 있다. 이런 뻔한 곳에서 무슨 소통이 되고 제대로 된 논의가 나오겠는가.
 
언젠가부터 우리나라는 ‘위원회 공화국’이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으로 불리고 있다. 당초 위원회(委員會)라는 건 정부가 어떤 정책적인 결정을 내릴 때 각계각층의 의견들을 두루 반영하기 위해 설치하는 것이었지만, 어느 샌가 중요한 결정을 할 때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만드는 것으로 변질돼왔다.

즉 중요한 정책 결정에 있어 정부가 직접 결정을 내리면 나중에 그것이 실패한 것으로 드러났을 때 책임을 져야 하지만, 위원회에서 다수결로써 결정을 하게 되면 책임 소재가 모호해지기 때문이다. 더욱이 정부의 입맛에 맞는 민간 위원들을 끌어들여 정책의 방향을 민심으로 포장할 수도 있으니 일거양득이 아닐 수 없다.
 
위원회 공화국이 비판받는 보다 뼈아픈 이유는 정부가 위원회 하나 만들어 놓고 결과에 상관없이 ‘일을 다 했다’는 식으로 치부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어떤 갈등이 발생하면 정부가 나서서 그 당사자와 직접 논의하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첩경인데, 사회적 기구라는 미명하에 여기저기서 사람들을 끌어다놓으니 토론은 중구난방이 되고 배가 산으로 가는 일이 허다하다. 그러면 종내는 만들지 않느니만 못한 기구가 되는데도 정부 입장에선 ‘우리는 최선을 다 했고 문제 해결이 안 되는 건 니들 때문이다’라고 책임을 전가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해결 의지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위원회 구성
 
의료개혁 특별위원회 역시 사태를 일으킨 보정심과 인적 구성이 다르지 않는데도 옥상옥(屋上屋) 같은 기구를 만드는 건 문제 해결보다는 면피를 위한 것이다. 총선 패배 이후 동력을 잃어버린 의대정원 증원 문제의 출구전략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필자는 예전에 의협 임원으로 일할 때 정부 측에 수차례 이런 의견들을 전달해왔다. 만약 정부가 다른 전문가든 시민단체든 의견을 듣고 싶은 곳이 더 있다면 미리 만나서 듣고 오고, 제발 좀 정부와 의료계가 논의하는 곳에 들입다 끼워 넣지 말라는 것이었다. 당사자가 만나서 얘기하는 자리에 입장이 다르거나 관련이 적은 사람이 참여한다면 논의가 제대로 되지 않을 뿐더러, 특히 위원회처럼 의결구조를 가지는 기구라면 다수결에 의한 일방적인 결론이 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번 ‘의료대란’ 역시 정부가 사태를 해결하고자 하는 적극적인 의지가 있다면 의료계, 특히 의사들을 대표하는 법정 단체인 대한의사협회 및 전공의와 당사자로서 대화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한 원칙이다. 그러지 아니하고 또다시 무슨 위원회 따위를 만드는 건 문제 해결보다는 보여주기 식의 면피 행동에 불과하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정부가 민의를 반영하고 싶다면 미리 반영해서 오면 된다. 그렇지 않고 의료계와 국민이 맞상대인 것처럼 자리를 만들고 정부는 마치 제3자이거나 중재자인 것처럼 행동하는 건 매우 비겁한 방식이며, 진정성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 드러내는 작태일 뿐이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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