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1.12.09 07:00최종 업데이트 21.12.0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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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의료기관도 당연지정제 지정…공공-민간의료기관 이분화하는 '공공성'의 덫에서 벗어나자

[대선 후보들에게 제안하는 보건의료정책 어젠다]⑪ 박진규 대한신경외과의사회장·대한의사협회 부회장

대선 후보들에게 제안하는 보건의료정책 어젠다

제20대 대통령선거가 내년 3월 9일로 다가왔습니다. 각 후보캠프들이 여러 단체들로부터 정책 제안을 받아 대선 공약을 완성하고 있습니다. 메디게이트뉴스는 대통령 후보라면 반드시 짚어야 하는 보건의료정책 어젠다(agenda)를 사전에 심도 있게 살펴보고 이를 대통령 후보들의 공약과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의료계 전현직 리더들의 릴레이 칼럼을 게재합니다. 의료계가 각종 악법에 대한 방어에만 급급할 게 아니라, 선제적으로 꼭 필요한 정책을 제안할 수 있도록 의료계의 많은 관심과 참여 바랍니다.   

①이철호 전 의협 의장 "일차의원과 중소병원 특별법·의료전달체계 정립·수가현실화"
②이로운 의협 홍보이사 "의료분쟁처리 특례법 제정"
③박상준 의협 부의장 "의료전달체계 확립과 응급의료시스템 정비"
④최운창 전남의사회장 "지역의료 살리기"
⑤안치석 전 충북의사회장 "서울과 지역 의료격차 최소화"
⑥주신구 병원의사협의회장 "보건의료 문제는 의사들과 먼저 협의"
⑦김장한 전국의대교수협의회장 "의료체계 정부 관여 줄이고 자유도 높이기"
⑧장성구 전 의학회장 "전문가 의견 수렴·정치적 판단 배제…고품격 의료강국 대한민국"
⑨안덕선 전 의료정책연구소장 "의료전달체계 확립"
⑩김동석 개원의협의회장 "필수의료 살리기가 최우선"
⑪박진규 신경외과의사회장 "공공성 재정립과 지역불균형 해소"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정치의 계절은 누구에게나 초미의 관심사이다. 의료계라고 예외가 아니며 그간의 시시비비를 강화하거나 돌이키는 계기가 되므로, 차기 정권에 거는 기대는 매우 크다. 차기 대통령에게 의료 정책을 제안한다는 것은, 더 나은 대한민국의 의료를 기대하기 때문에 현재에 대한 비판을 담을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지난 5년간 진행된 보장성 강화정책을 반성하면서 차기 정부에 의료 정책의 방향성을 제안해야 한다. 보장성 강화정책은 선한 의도에서 진행되었지만, 원하는 만큼의 공공성을 확보하지 못했고, 보장률을 높이는 데도 실패했다. 동시에 탄탄했던 건보 재정을 적자에 빠뜨렸고 고갈이라는 위험에 노출시켰다. 재정의 고갈은 보장성 강화 정책의 퇴보를 의미하며 속도 조절이라는 극약 처방을 가져왔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속도조절보다 정책 전환이라는 탈출구를 찾아야 한다. 

보장성 강화 정책은 발전이 정지된 의료 현실에서도 실현되기 어렵지만, 하루가 다르게 첨단의 기술이 도입되고 신약이 등장하는 의료 현실을 감안한다면 재원을 감당할 수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21세기에 19세기의 치료를 강요하는 내용으로 가득 찬 정책의 성공은 애초에 불가능했다. 국가가 이념을 실천하려한다면 현실적인 목표를 설정해야 하고, 보장성 강화는 비용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즉, 훌륭한 이데올로기가 실현되려면 그를 지원하는 재원조달이라는 “현실적 해결책”이 제시되어야 한다. 우리나라 의료 정책은 상해·질병·장애 등에 대해 취사 선택해야하는 우선 순위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근거에 기반한 실현가능한 목표를 설정해 지역 및 인구집단, 성과 연령, 사회경제적 상태에 따라 차별을 두어야 하는 근본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 

지역 및 인구집단·성과 연령·사회경제적 상태를 고려해야 하는 의료 정책은 보편성과 우선 순위의 충돌을 슬기롭게 극복해야 하는 과정으로 많은 것들을 고려해야 한다. 의료를 바라보는 눈, 공공성이라는 덫의 제거, 지역 불균형 해소, 의료 전달체계 정립 등에 대해 세세한 부분을 조율해야 한다. 

의료를 바라보는 눈은 기다림의 미학으로 표현되는 영국식 의료를 지향할 것인지, 현재 의료 보험 시스템을 유지할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료 철학의 문제로 정책자의 신념이 중요하다. 일부 학자들은 영국 지향 의료를 강조하지만, 실제 영국의 환경을 냉철하게 바라본다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보다 훨씬 많은 문제를 가진 영국의 상황을 이해한다면, 여타의 문제는 더 유연한 방식으로 대처할 수 있다. 보편적이고 포괄적이고 무료인 영국 지향 의료에서 벗어나는 것은 보편적인 것과 공공성 강화라는 패러다임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비난을 받을 수 있다.

이는 이념이라는 전쟁을 통해 반드시 승리해야 하는 과정으로 의료계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독점적 지위의 의료계를 제압하고 다수의 보험가입자, 즉 국민과 환자들의 이익을 표출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지난 5년간 시행된 보장성 강화 정책은 보편성과 공공성이라는 틀을 공고히 하면서 확장됐지만 한정된 재원이라는 벽을 넘지 못했으며, 이는 의료계의 저항 때문이 아니라 의료를 이용하는 국민들의 편의성에 기인한 것으로 보편적이고 공공적인 것이 재원 문제를 더 악화시킬 것임을 시사한다. 선택과 집중은 보편적이고 공공적인 것에 대한 해결책이 될 수 있으며 의료 정책을 어떤 식으로 가다듬어야 하는지 알게 한다. 선택과 집중이라는 우선 순위 결정을 위해 생명과 관련된 필수성, 중증도, 긴급성, 위급도를 분류해 상대적으로 만성적이고 양성(良性)의 경과를 보이는 경증 질환에 대한 보편적 기준의 적용을 재고(再考)해야 한다. 

선택과 집중으로 의료를 바라보기 위해서는 공공성이라는 덫에서 벗어나야 한다. 공공성이 가미된 의료, 즉 공공의료를 재정의함으로써 공공성이라는 덫을 벗어날 수 있다. 공공 의료는 공공 병원·공공의료기관 (보건소 등)등을 통해 이뤄지는 의료 행위로 받아들여지지만, 의료 시스템이라는 광의의 관점에서 우리나라 모든 의료기관은 건강보험의 요양기관으로 당연 지정돼 비용(수가)이 정부에 의해 통제 받고, 의료행위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심사를 받게 돼 공공이나 민간의료기관 간의 차이가 없다.

건강보험제도는 법에 의한 정부의 의료보장사업으로 민간의료기관도 강제로 참여하도록 돼있으므로 우리나라 의료시스템은 이미 공공성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공공성이라는 의미를 이념적 관점에서 규범적 관념으로 재해석해 공공성이라는 표현을 유지하면서 의료를 바라보는 시각과 동일하게 정책을 재편할 수 있다. 

이런 공공 의료의 재해석은 지역간 의료 격차 해소와 의료 전달체계 재정립 문제로 연결시킬 수 있다. 좁은 땅덩어리를 가진 우리나라에서 지역의료 격차가 실질적으로 얼마나 발생하는지 알 수 없지만, 서울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김윤 교수 등이 제시한 의료 이용 지도를 참고하더라도 대형병원의 대도시 집중은 명확하다. 대학병원을 포함한 상급종합병원은 수도권을 포함한 대도시에 몰려 있으며, 도서 산간지역에는 전무하다. 수도권은 모든 종별의 의료 기관이 포화임에도 대학병원의 증설 경쟁으로, 이미 과포화된 병상의 증가가 가속화하고 있다.

대학병원을 포함한 종합병원 설립이 복지부와 지자체의 허가 없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대형병원의 수도권 집중 현상을 공공성이라는 명분을 통해 도서지역으로 분산시킬 수 있다. 의료 이용지도에서 대규모 종합병원이 부족한 고성, 영월, 진천, 거제, 사천, 김천 등에 대형병원 설립을 유도하고 수도권에서의 대형병원 증축 경쟁을 제한해야 한다. 지역간 의료 격차 해결책은 의료 전달체계 재정립과도 관계가 있으며, 과포화된 대학병원을 진료 중심에서 본연의 역할인 교육과 연구로 되돌리는 방법이 된다. 

의료를 바라보는 눈, 공공성이라는 덫의 제거,  지역 불균형 해소, 의료 전달체계 정립이라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나그네의 옷을 벗기는 이솝우화 ‘해님과 바람’ 이야기를 연상시킨다. 나그네의 옷을 벗기기 위해 폭풍같은 거센 바람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이 일견 일리가 있어 보이지만, 현실적으로 거센 바람은 나그네의 옷을 오히려 여미는 결과를 가져오며, 벗길 수 없다. 나그네의 옷을 벗기려면 거센 바람이 아니라 작열하는 뜨거운 햇살이 더 효과적이라는 결과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보편적이고 공공적이고 포괄적인 의료에 대한 정부의 욕심은 자연스럽지만, 실현 가능한 목표로 의료인들의 동의를 받을 때 비난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보장성 강화라는 나그네의 옷을 벗기기 위해 보편적인 거센 바람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면 실소와 비난을 낳고, 결국 좌초한다. 의료를 바라보는 해석과 그에 대한 해결책은 이념의 문제로 현재의 보장성 강화 정책 기조를 결정하는 주요한 요인이 된다. 거센 바람을 주장하는 현 정부의 기조는 선택과 집중이라는 작열하는 뜨거운 햇살을 주장하는 많은 의료인들의 동의를 얻지 못하고 있으며, 오히려 현 정부는 뜨거운 햇살을 주장하는 의료인들의 이기심을 비난하고 있다. 차기 대통령은 이런 상황을 외면하지 말고 보건 의료의 틀을 현실에 맞게 개선해야 한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메디게이트뉴스 (news@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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