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일학 교수 “법적 효력 중심에서 반복적 상담·결정으로” 제안… 김도경 교수 “요양·호스피스·감염·임상시험 사각지대” 지적
사진=연세의대 이일학 교수
[메디게이트뉴스 선다현 인턴기자 고려의대 예2]“현행 연명의료결정제도는 좋은 의도와는 다르게 상당 부분 서식 작성과 환자의 의사 확인 및 임상적 적용에 한정돼 ‘돌봄’이 빠져있다.” (연세의대 이일학 교수)
연명의료결정법은 환자의 자기결정권과 존엄성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2016년 제정, 2018년 2월부터 시행됐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서식 작성과 법적 요건 충족이 돌봄을 대체하는 구조가 반복되고 사각지대가 남아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연명의료결정법 개정과 생애말기 돌봄’을 주제로 이화여대 생명의료법연구소 학술행사가 28일 이화여대 법학관에서 개최됐다. 이날 연세의대 이일학 교수는 ‘연명의료결정에서 사전돌봄계획으로: 관점과 실천적 고려점’을 주제로 발표를 진행했다.
현행 연명의료결정제도는 지나치게 법적 효력 집중
이일학 교수는 “현행 연명의료결정제도는 지나치게 법적인 효력에 집중해 돌봄의 일부로서 의향을 확인하고 갱신하기보다 환자의 코드 스테이터스를 확정하고 주변의 행동을 규정하고 구속하는 기능이 강해졌다”고 비판했다.
이에 그는 “법적인 문서 작성에서 상담·돌봄의 계획이라는 다이내믹하고 끊임없이 지속되는 형태의 결정으로 관점을 전환하자”라며 연명의료결정을 넘어선 새로운 접근 방식인 '사전돌봄계획'을 제안했다.
그는 '사전돌봄계획'에 대해 ▲환자의 가치관 구체화 ▲증상관리 및 완화의료 방식 ▲생애말기 치료 장소 선택 ▲지정대리인 지정 ▲상담 맥락에 따른 유연한 구성이 가능하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사전돌봄계획조차도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하는 건 지나친 기대”라고 하며 제도에 대한 과도한 기대를 경계했다.
이 교수는 “사전돌봄계획은 미래 상황의 불확실성을 전제로 한다. 환자에게 가치관과 선호를 곧바로 정하라고 요구하기보다 대화 역량과 기회를 제공하고 의사결정을 조금씩 나아가는 일로 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말기에는 의사결정 능력 상실 가능성이 큰데, (사전돌봄계획은) 환자의 뜻을 최선을 다해서 확인해 자율성과 존엄을 보장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해외 사례를 들면서 "사전돌봄계획이 국가별로 단일한 형태가 아니라 각국의 문화·제도 환경에 따라 서로 다른 모델로 운영된다”라며 "한국 상황에 맞는 개발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법적 권리 중심인 독일·대만과, 의사소통·합의 중심인 일본·미국 사례를 소개했다. 이 교수는 대만의 경우 “환자 자주권법을 가지고 있는 등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중요하게 여기는 국가다. 이 때문에 더더욱 의료진의 상담을 필수화하고, 반대 급부로 100달러 정도의 상담 수가를 만들었다”고 했다.
그는 "반대로 일본의 경우 명시적 법률 없이 후생노동성 가이드라인 중심으로 환자·가족·의료진 간 충분한 논의와 합의가 필요하다"라며 "'인생회의(Jinsei Kaigi)' 프로그램을 홍보하는 등 관계·합의 중심의 모델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문화적 맥락을 고려한 한국형 사전돌봄계획 정착을 위해서 ▲환자 중심 접근 ▲다학제 인력 ▲의사소통 보조도구 ▲문서화 및 접근성 ▲준비도 평가 ▲대리의사결정자 지정 ▲지속성과 유연성 ▲전인적 돌봄 등을 강조했다.
그는 문화 및 정책 환경의 과제로 의료진·환자·문화·시스템 장벽과 자원 문제도 함께 짚었다. 특히 "죽음과 임종에 대한 논의가 사회적으로 회피되며, 가족에게 의사결정 책임이 과도하게 전가되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해결책으로 환자 관점에서 시스템을 이끌 수 있는 케이스 매니저 형태의 인력·제도의 도입을 제안했다. 그는 “적극 치료 중심의 접근이 사전돌봄 논의를 거치며 완화의료 접근으로 전환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전환이 곧 치료 포기나 방임으로 오해되지 않게 하는 지속적 돌봄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외국 사례에서 배울 점과 반면교사를 종합해 제도 정착을 위한 기반 구축, 서비스 제공 시 발생하는 재정·조직적 장애요인 완화가 필요하다”라며 "특히 급성기 치료에서 완화의료로 이어지는 돌봄 전환의 연속성 확보가 핵심 과제”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건강한 시점에 작성하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지나치게 무게를 두기보다 이후 실제 의사결정이 필요한 시점에 상담·돌봄·지지가 충분히 제공되는 구조를 강화하는 방향이 필요하다”며 사전돌봄계획 논의의 필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임상시험 참여 환자에서 사망 1주 내 공격적 치료 보고돼
동아의대 김도경 교수는 ‘연명의료결정과 이해상충’이라는 주제로 발표하며 ▲호스피스 의료기관의 부족 ▲요양기관 내 의료기관윤리위원회의 부족 ▲보건의료 감염관리 ▲임상시험 참여에 대한 현황과 견해를 전했다.
김 교수는 “생애말기 환자들이 급성기 병원을 거쳐 호전 시 요양병원·자택으로 이동하고, 악화 시 다시 급성기로 돌아오는 반복 사이클이 존재한다"라며 "가운데 구간에서 환자가 어디를 가야 될지 모르겠고 어떻게 하는 게 가장 좋을지 모른다는 혼란이 수개월에서 수년 동안 지속될 수 있다. 이 전환 구간을 중심으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했다.
또한 “급성기에서는 적극 치료 기회와 치료 방향 제시가 필요하고, 요양병원·요양원·호스피스는 생애말기 존엄과 삶의 질을 보장하는 기관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의료기관윤리위원회가 상급종합병원 등에서는 존재 여부가 평가 기준에 있기에 쉽게 확충됐지만, 요양병원급에서는 아직 부족하다”라며 “요양병원은 최근 전체 사망자의 약 21%가 존재하는 등 사망의 중요한 장소가 됐지만, 그럼에도 윤리위원회 구성 요건 형성 및 유지가 현장에서는 모두 어렵다”고 했다.
그는 대안으로 제시된 공용윤리위원회 역시 확산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협약·심의 비용 부담과 기존 관행(DNR 활용, 대학병원으로 전원하는 루트 등)이 작동했을 가능성이 있다”라며, “요양병원이 장기 돌봄 공간인 만큼 형식적·양적 확충보다 기능 중심의 지원 조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진행성 암 환자들이 임상시험을 기회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라며, “임상시험 참여가 생애말기 돌봄과 충돌할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임상시험 참여 환자에서 ▲사망 1주 내 공격적 치료 ▲ICU/인공호흡기 비율 증가 ▲호스피스 등록 지연 등이 보고되는데, 참여 자체보다 말기의 공격적 치료가 삶의 질을 저하시키는 구조와 연결된다는 지적도 덧붙였다.
그는 “임상시험이 때로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는 상황에서 의료진이 제시할 수 있는 마지막 도구가 되기도 한다"라며, “지역 응급의료·입원 연계의 불안정 속에서 임상시험 참여 여부가 말기 경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