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2.09.14 07:01최종 업데이트 22.09.18 09:51

제보

의사수 부족 아닌 과잉…‘공공’ 내세운 ‘포퓰리즘’ 의대 신설법안, 받아들이기 힘들다

[의대 신설 폐해와 부작용]③ 박명하 서울특별시의사회장

반복되는 의대 신설 주장의 폐해와 부작용  
 

2020년 의료 파업의 주된 원인이 의대 정원 증원 반대였을 정도로 의료계의 반대가 거세지만, 국회와 정부는 여전히 의대 신설 주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21대 국회 들어서 여야가 발의한 의대 신설 법안은 8건에 달하며, 새 정부 들어서도 의대 신설이 주요 국정과제로 채택될 가능성이 커졌다. 의료계는 의대 신설에 대해 막대한 예산 낭비는 물론 필수의료 기피 현상을 해결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메디게이트뉴스는 의료계 주요 오피니언리더들과 함께 반복되는 의대 신설 주장의 폐해와 부작용을 낱낱이 파헤쳐본다. 

①안덕선 전 의협 의료정책연구소장 "교수 최소 110명 확보, 500병상 부속병원 예산 지원 부당"
②김동석 대한개원의협의회장 "불 보듯 뻔한 의대 신설 실패 책임은 누가 지나"
③박명하 서울시의사회장 "의사수 부족 아닌 과잉…‘공공’ 내세운 ‘포퓰리즘’ 의대신설법안"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최근 정부와 정치권의 의대신설법안 논란이 갈수록 포퓰리즘으로 흐르는 것 같아 안타깝지 그지없다. 겉으로는 ‘공공(公共)’을 표방하고 있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지역 이기주의에 입각한 구태(舊態) 반복에 불과해 보인다. 지역별 의료기관 접근성 및 의료 수준 등을 내세우고 있지만 왜 그 지역에 설립해야 공공성에 부합하는 것인지에 대한 설명은 찾기 힘들다.

‘공공’이 무엇인지에 대한 해묵은 질문을 던지기에 앞서 공공에 대한 인식이 공공기관에서 양성된 인력을 강제 배치하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면 그 자체로 성공하기 힘들다. 인력의 지역배치는 지역 인프라 수준의 향상 없이는 이룰 수 없다.

공공보건의료법에도 민간의료자원을 활용하게 돼있는 만큼 반드시 공공의대가 필수 과제라 보기도 어렵다. 무엇보다 서남의대 폐교로 촉발된 의과대학 신설 논의가 결과적으로 무분별한 부실의대 설립에서 비롯됐다는 반성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공공’ 의 껍데기를 썼을 뿐, 과거 지역적 포퓰리즘에 기반한 의대 신설 주장이 현재에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국회에 발의된 의과대학 설립 관련 법안이 총 11건이나 된다. 최근 국회예산정책처가 이들 법안의 비용 추계서를 비교 분석했다. 11건의 법안 중 5건은 공공의대 설립과 관련한 법안이며, 서남의대 폐교 후 전라남도에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을 받아 공공의대를 설립한다는 내용이다. 이 5건의 공공의대 설립법안의 평균 추계 예산이 1975억원이었다. 비용이 높게 추계된 안은 2021년부터 2028년까지 8년간 총 3460억원, 연평균 432억원이나 소요되는 것으로 추산됐다.

특정 지역에 국립의대를 설립하자는 법안은 총 6건이다. 지역도 다양해서 창원의대, 방사선의대, 목포의대, 인천의대, 전남지역의대, 공주의대 설립 법안이 나왔다. 전남지역의대 설립법안과 공주의대 특별법안을 제외한 4건의 법안 평균은 약 2017억원이었다.

공공의대 등 신설에 관한 정치권의 주장은 지역 간 의료격차 및 의료취약지 등의 인력 부족 문제를 의과대학 신설로 해결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대한의사협회의 입장은 다르다. 지역 간 의료격차 및 의료취약지 등의 인력 부족 문제는 의사 수 문제가 아니라, 정부의 의사인력 수급 정책과 지역 및 의료취약지의 열악한 진료환경 등으로 인한 구조적 문제에 기인한다. 이에 대한 근본적 해결 없이 의사인력 증원만으로 지역 의료수급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의사인력 공급 추세에 따라 의사인력 부족이 아닌 공급 과잉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현재 해마다 40개 의과대학 및 의학전문대학원에서 3058명의 입학생을 모집해 왔고, 연간 약 3000여 명에게 의사면허가 교부되고 있다. 2020년 현재 10만 6144명이 임상의사로 활동 중이다. 최근 10년간 인구의 연평균 증가율은 0.55%에 불과한데 반해 활동의사의 증가율은 3.07%로 높으며, 임상의사 1인당 국민 수는 2006년 588명에서 2017년 409명으로 지속적으로 감소했다. 이러한 추세를 볼 때 오히려 2037년부터 인구 1000명 당 활동의사 수는 OECD 회원국 평균을 넘어서 의사인력이 공급 초과잉 상태가 된다는 것이 의료정책연구소의 예상이다. 

최근 발의된 공공의대 설립 관련 법안에 대해 서울시의사회는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지역간 의료불균형 및 지역의료 확충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공감하나, 이에 우선적으로 보완해야 할 것은 지역 내 거점 병원 역할을 할 수 있는 의료기관들의 운영 정상화 및 질 향상이다. 의과대학을 추가로 설립한다고 해도 의대 졸업생이 의사 면허를 획득하고 지역에서 의사로 역할을 수행하기에는 많은 기간이 소요된다. 임상 수련을 병행할 병원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의과대학을 설립하는 것은 오히려 질 낮은 의사를 양성함으로써 지역주민 건강 안전성을 해칠 수 있어 우려된다.

추가적으로 9.4 의정합의에 의해 의과대학 신설 및 의대정원과 관련된 사안은 코로나 안정 이후 의정협의체에서 추후 방향을 논의하기로 했던 만큼 개별적인 의과대학 설립 법안 발의는 의정합의 취지에 어긋난다.

일부 정치권의 포퓰리즘적 의대신설법안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 대한민국 전 국토와 인구 등을 고려할 때, 현재의 40개 의과대학은 전세계적으로도 많은 수준이다. 인구 3억 이상의 미국 의대 및 의학대학원이 198개교, 인구 1억2000만의 일본 의과대학이 80개교인 것에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코로나19 진료도 하겠다는 한의과 대학까지 합치면 의료인 양성 기관이 너무 많아서 문제라고도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의사인력 증원을 통한 지역의사 양성은 우리나라 전체 의료체계 및 의료인력 수급의 적정성을 간과한 근시안적 대안에 불과하다.

의사 수는 부족하지 않다. 오히려 향후 의사 공급 과잉으로 인한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다. 현재의 의사인력 및 의사 교육시스템 내에서 의과대학의 교육과정에 공중보건 및 지역의료 등에 대한 교육 지원이 필요하다.

아울러 지역 의료기관에 대한 행정•재정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의료전달체계를 확립하고 지역의료의 기반을 확립해야 한다. 의료인력이 지역에서 정주하며 안정적인 진료를 할 수 있도록 행정적, 제도적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정부와 정치권이 해결해야 할 시급한 당면 과제이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메디게이트뉴스 (news@medigatenews.com)
댓글보기(0)

전체 뉴스 순위

칼럼/MG툰

English News

전체보기

유튜브

전체보기

사람들

이 게시글의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