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조강욱 기자] 지난달 주요 시중은행의 정기예금이 5조원 가량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예금 이자율이 0%대까지 떨어진 초저금리 속에서도 8월과 9월에 이어 3개월 연속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로 경기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가 커진 가운데 공모주 거품 논란마저 커지면서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확대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5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ㆍ신한ㆍ우리ㆍ하나ㆍNH농협은행 등 5대 시중은행의 지난달 정기예금 잔액은 640조7257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월(635조7964억원) 대비 4조9293억원 늘어난 규모다.
5대 은행의 정기예금 잔액은 지난 3월 652조3277억원을 기록한 뒤 넉 달 연속 감소세를 보였다. 감소 폭도 4월 2조7079억원, 5월 5조8499억원으로 갈수록 가팔라지면서 6월(10조6785억원)엔 한 달 만에 10조원이나 넘게 빠져나가는 이상현상을 보였다. 코로나19가 다소 진정세를 보였던 7월에는 전월에 비해 감소폭(5조4259억원)이 절반으로 줄었지만 여전히 5조원을 웃돌며 정기예금에 대한 매력이 저하되고 있음을 보여줬다.
올해 들어 은행 예금금리가 연 0∼1%대로 낮아지면서 이자 측면의 매력이 떨어지자 투자자들이 더 나은 투자처를 찾아 자금을 빼낸 탓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코로나19로 경기 침체가 가속화하면서 정기예금에 묵혀둘 만한 여유 자금이 이전보다 축소된 탓도 있었다. 여기에 신용대출로 빚을 내 주식에 투자하는 '빚투(빚내서 투자),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자) 열풍'도 한몫했다.
초저금리에도 은행 정기예금에 이례적 자금 이동
빚투, 영끌에 빠져나갔다가 유턴현재 5대 시중은행 정기예금 금리는 연평균 0.8~0.9% 수준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1.65%와 비교하면 1년 새 약 0.8%포인트 떨어졌다. 1억원을 정기예금에 넣어봤자 연간 이자가 100만 원도 안 된다는 의미다. 금융감독원 금융상품 통합 비교 공시 사이트 '금융상품 한눈에'에 따르면 이날 기준 국내 21개 은행이 취급하는 49개 정기예금 상품 가운데 0%대 금리 상품은 35개로 71.4%를 차지한다.
이 같은 초저금리 속에서도 8월 1조원, 9월 7조원에 이어 10월 5조원으로 정기예금이 3개월 연속 급증한 것은 '빚투(빚내서 투자)' 열풍으로 썰물처럼 은행 예금에서 빠져나갔던 자금이 일부나마 돌아오고 있다는 신호로 풀이된다. 특히 58조원이 넘는 돈이 몰린 빅히트엔터테인먼트 주가가 상장 이후 급락하면서 손실을 본 투자자 불만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빅히트엔터테인먼트의 공모 가격이 어떻게 결정됐는지 밝혀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글이 게재됐다. 이른 바 '빅히트 쇼크'가 공모주 거품 논란을 일으킨 것 또한 안전자산으로의 회귀에 영향을 미쳤다는 해석이 나온다.
여기에 코로나19 재확산 현상과 미국 대선 불확실성이 가세해 당분간 우리 금융시장 변동성 확대가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도 한몫한 것으로 풀이된다.
금융권 관계자는 "주식시장에서 공모가를 밑도는 종목이 속출하면서 증시 거품 논란이 커진 것이 빚투·영끌 열풍을 가라앉히고 안전자산으로 돌아서게 한 요인으로 보인다"면서 "여기에 최근 은행들이 소폭이나마 수신금리를 올리며 예금 감소와 대출 급증, 코로나19 지원 등으로 빠져나간 유동성 확보에 나선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강욱 기자 jomarok@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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