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홍범 경상대 경제학과 교수
최근 정부(금융위원회)는 ‘디지털금융 종합혁신방안’을 발표했다. 금융 디지털화를 기치로 산업을 육성하고 인프라를 구축하며 보안 및 소비자보호를 강화한다는 것이 그 핵심 요지로, 금융위가 디지털금융의 발전방안을 폭넓게 제시하고 이를 위해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을 추진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그중에는 우려할 만한 방침도 포함돼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한국은행은 “지급결제제도의 운영자ㆍ감시자ㆍ발전촉진자”로서의 소임을 오랫동안 수행해 왔다. 이런 한은의 역할과 충돌할 것이 뻔한 방침을 금융위가 혁신목록에 슬쩍 얹은 것이 화근이다. 한마디로, ‘금융결제원을 디지털 지급거래청산업자로 지정해 금융위의 규제감독을 받도록 하고, 금융결제원의 현행 오픈뱅킹 공동업무 처리시스템을 오픈뱅킹 지급결제시스템으로 지정해서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한은을 주축으로 한 금융결제원 현행 업무 감시체계의 훼손을 무릅쓰고라도 추가 규제를 입법화하겠다는 금융위의 결의가 엿보인다.
하지만 그래야 할 현실적 필요나 합리적 근거도 거의 없고 외국의 유사 사례도 찾기 어렵다. 금융위가 내세운 “디지털 지급거래청산 제도화”와 “오픈뱅킹의 법제도화”라는 명분도 관할영역 확장이라는 속내를 애먼 전문용어로 그럴싸하게 가린 허울에 불과하다. 트로이목마가 따로 없다. 선의의 선물(목마)에 정예부대를 숨겨 보내 고대 트로이를 정복했다는 그리스 신화의 트로이목마 말이다.
유럽의 초기 중앙은행은 군주에게 재정지원을 제공하는 대가로 은행권 발행 권한을 독점한 ‘정부의 은행’이었다. 덕분에 신용도가 높아진 이 은행으로 다른 상업은행들의 여유자금이 집중되면서 18세기 후반 ‘정부의 은행’은 은행간 대차를 해소해주는 ‘은행의 은행’으로 진화했다. 이것이 오늘날 중앙은행을 중심으로 한 각국 지급결제제도의 기원이다.
중앙은행은 지급결제제도의 감시와 결제완결성 보장에 최적화된 태생적 금융안정 당국이다. 일찍이 1930년대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경험은 이런 사실을 잘 보여준다. 대공황으로 인해 미국에선 1932년까지 무려 5000개가 훨씬 넘는 은행이 도산했고, 1933년 3월 초에는 뱅크런(예금인출사태)이 한 달째 계속 번지고 있었다. 이에 루즈벨트 대통령은 취임 이틀 만에 은행휴무(Bank Holiday)를 7일간 전격 실시하고 비상은행법(Emergency Banking Act of 1933)을 제정하는 등 은행위기에 강력히 대처했다. 은행영업 재개를 하루 앞둔 1933년 3월12일, ‘장롱 속 현금보다 은행예금이 더 안전하다’는 루즈벨트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가 그 유명한 노변정담의 시작이었다. 다행히도, 은행영업이 재개되자 자금이 대거 재예치됐고 전면 중단됐던 지급결제제도 운영도 신속히 정상화됐다. 여기엔 비상은행법이 주효했다는 것이 실버(W. Silber) 뉴욕대 교수의 결론이다. “영업을 재개한 은행에 달러화를 무제한 공급하겠다는 연준의 의지”가 비상은행법에 따라 “사실상의 100% 예금보험”으로 받아들여지면서 국민의 신뢰 회복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는 것이다. 연준이 누구인가, 법화의 무제한 발행권을 가진 중앙은행 아닌가.
다시 문제의 ‘방침’으로 돌아가 보자. 우리나라에서는 한국은행법 등 관련 법률에 따라 한은이 금융결제원의 지급결제시스템을 감시하고 그 결제완결성을 보장한다. 하지만 2014년 국제통화기금(IMF)은 금융부문 평가프로그램(FSAP) 한국 보고서에서 지급결제시스템에 대한 금융위의 규제감독 권한은 “충분한” 반면, 한은의 감시 권한은 “효과적이지 않다”고 진단했다. 한은법 개정을 통해 “정확한 정보의 획득권”, “금융시장인프라의 한국은행 의견ㆍ결론 이행 여부의 감시권”, 그리고 “제재부과권”을 규정하라는 것이 당시 IMF의 권유였다. 이에 한은법 개정안이 19ㆍ20대 국회에 각기 발의됐으나, 정부의 반대로 논의가 전혀 진행되지 않았다.
중앙은행의 긴 역사는 차치하고 이런 근자의 맥락만 얼른 살펴봐도, 금융위의 이번 방침은 주객이 전도된 내용임이 자명하다. 금융위는 디지털금융 혁신방안에 건전한 미래비전만 담아 추진하기 바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세상이 온통 정신없는 와중에 뜬금없는 정책으로 평지풍파를 일으켜서야 되겠는가.
김홍범 경상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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