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류태민 기자] 부동산 시장의 선행지표로 여겨지는 법원 경매시장이 침체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최근 꽁꽁 얼어붙은 부동산 시장과 맞물린 영향으로 보인다. 서울 아파트 낙찰가율이 다섯 달 연속 하락하며 1년 반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올 들어 적용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등으로 자금조달 부담이 커지자 상대적으로 저렴한 유찰물건 등으로 수요가 몰린 것으로 풀이된다.
31일 법원경매 전문기업인 지지옥션에 따르면 이달 서울지역 아파트 경매의 평균 낙찰가율은 96.3%로 집계됐다. 낙찰가율은 감정가 대비 낙찰가 비율로 예컨대 감정가 1억원인 아파트가 9630만원에 낙찰됐다는 의미다. 이는 2020년 9월 이후 18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치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던 지난해 10월 119.9%보다 23.6%포인트 감소했다. 서울 낙찰가율은 지난해 상반기부터 7개월 동안 낙찰가율이 110%를 웃돌며 5차례나 역대 최고가를 경신했지만 지난해 11월부터 다섯 달 연속 하락세가 이어지고 있다.

수도권 낙찰가율 일제히 하락… 20~30% 저렴한 유찰 물건 인기서울 외 수도권 지역 낙찰가율도 마찬가지로 하락세다. 이달 수도권 전체 아파트 평균 낙찰가율은 30일 기준 99.5%로 100% 아래로 떨어졌다. 인천지역 아파트 낙찰가율은 전달보다 11.5%p 떨어진 101.7%로 14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역대 최고치를 찍었던 지난해 8월(123.9%) 대비 22.2%p 감소한 셈이다. 경기도의 경우 이달 기준 101.3%로 나타나며 15개월 만에 가장 낮았다.
경매 낙찰가율은 일반적으로 주택 시장의 선행지표로 불린다. 낙찰가는 주택시장의 매도 호가나 실거래가의 최저가를 바탕으로 써내는 가격이기 때문이다. 낙찰가율이 높다는 건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감으로 응찰자가 많아 경쟁이 치열하다는 의미다. 집값 상승을 기대하는 사람이 많다고도 볼 수 있다.
이처럼 수도권 아파트 법원경매 시장이 위축된 것은 정부의 전방위적인 대출규제 강화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이주현 지지옥션 선임연구원은 “새 정부에서 대출규제를 완화해줄 것이라는 기대감에 낙찰률은 소폭 올라갔지만 아직은 응찰자들의 자금여력 부담이 큰 상황”이라며 “지난해처럼 공격적으로 응찰하는 대신 보수적인 가격을 써내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수도권 아파트 평균 낙찰률은 이달 기준 57.9%로 최근 1년 내 가장 낮았던 올해 1월(53.8%)보다 4.1%p 올랐다.
유찰된 매물을 통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값에 낙찰 받으려는 수요가 유입된 영향도 크다. 유찰 물건은 통상 권리관계가 복잡하거나 교통 접근성 등 입지가 비교적 좋지 않은 경우가 많아 상승장에서는 외면 받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시장이 불안정할수록 가격이 저렴해 부담이 적다보니 인기가 높아진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실제로 이달 서울에서 낙찰된 아파트 33건 중 절반이 넘는 19건이 한 차례 이상 유찰된 물건이었다. 경매 물건이 이전에 낙찰되지 않고 유찰될 경우 최저매각가격이 20~30% 낮아져 다시 경매에 나오게 된다.
류태민 기자 right@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