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세종=이준형 기자] 산업통상자원부의 에너지기본계획 대수술 예고는 탈원전 정책 ‘폐기’의 공식 선언으로 해석된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핵심 공약인 신한울 3·4호기 건설 즉시 재개를 위해 일부 인허가 절차를 생략·단축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한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3차 에기본에 ‘탈원전 대못’
에너지기본계획은 5년마다 수립되는 에너지 분야 최상위 법정 계획이다. 정부가 2년에 한번씩 세우는 전력수급기본계획도 에너지기본계획의 기조 하에 수립된다. 향후 20년을 고려한 ‘에너지 설계도’가 담겨 정부의 에너지 정책 방향성을 가늠할 수 있는 바로미터가 된다. 이명박 정부 시절 제1차 에너지기본계획(2008~2030년)을 수립해 문재인 정부가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2019~2040년)을 세웠다.
산업부는 윤 당선인이 구상한 원전 정책을 추진하려면 에너지기본계획 전면 재편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문 정부가 세운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에 ‘탈원전 대못’이 박혀 있기 때문이다. 현 정부는 2019년 심의·의결한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에서 204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을 기존 7.6%에서 최대 35%까지 늘리도록 명시했다. 박근혜 정부 당시 수립된 제2차 에너지기본계획(2014~2035년)에 명시됐던 원전 발전비중 목표치 29%는 아예 언급되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가 ‘원전 르네상스’를 외치며 제1차 에너지기본계획에 원전 발전비중 목표치를 41%로 설정했던 것과도 대조적이다.

산업부가 인수위 업무보고에서 가장 먼저 에너지기본계획을 손 보겠다고 나선 이유다. 원전 자체가 언급되지 않은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으로는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 등 윤 당선인 핵심 공약을 원활하게 추진할 수 없다. 노후 원전 계속운전을 위해 경제성 평가 등을 진행하려 해도 에너지기본계획이 뒷받침돼야 한다.
산업부는 인수위에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를 위한 구체적 로드맵도 내놨다. 우선 산업부는 윤 당선인의 원전 정책을 연내 제4차 에너지기본계획과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반영하겠다는 구상이다. 이같은 절차가 계획대로 이뤄지면 2024년 말 산업부 등 11개 부처가 전원개발사업 실시계획을 진행한다. 전원개발사업 실시계획은 원전 등 전원 설비를 설치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걸쳐야 하는 절차다. 산업부 로드맵에 따르면 원자력안전위원회 소관인 신한울 3·4호기 건설 허가는 2024년 말로 예정됐다.
로드맵은 ‘현실성’ 방점
문제는 산업부가 계획한 일정이 윤 당선인이 강조해온 ‘즉시 재개’와 거리가 있다는 점이다. 산업부는 인수위에 2025년 초 신한울 3·4호기 건설을 재개할 수 있다고 보고했다. 이에 인수위는 산업부에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를 위한 절차적 방안과 원전 생태계 복원 과제를 조속히 검토하라"고 요구했다.
산업부가 제시한 로드맵은 ‘현실성’에 방점이 찍힌 것으로 보인다. 신한울 3·4호기는 2017년 발전사업 허가까지만 받아 건설을 재개하려면 거쳐야 할 절차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5년 이상 건설이 중단돼 환경영향평가 등 이미 거친 인허가 절차를 다시 시작해야 할 수도 있다. 신한울 3·4호기는 2016년 환경영향평가를 받았지만 지난해 8월 유효기간이 끝났다.

산업부는 일부 인허가 절차를 단축·생략해 신한울 3·4호기 건설을 앞당기는 가능성도 열어놨다. 신한울 3·4호기 부지 인근에 위치한 신한울 1·2호기 환경영향평가 데이터를 신한울 3·4호기에 적용하는 방안이 대표적이다. 이 경우 통상 1~2년이 걸리는 환경영향평가 기간이 단축된다. 산업부는 환경영향평가 재평가 면제 규정을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현행법상 원전 사업이 중단된 기간 동안 부지 주변 환경에 큰 변화가 없었다면 승인 기관장, 환경부 장관 등의 협의를 거쳐 재평가 대상에서 제외할 수 있다.
다만 산업부가 일부 인허가 절차를 무리하게 건너뛰면서까지 즉시 재개를 추진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검찰이 최근 ‘탈원전 블랙리스트 의혹’과 관련해 산업부와 발전공기업을 압수수색하는 등 현 정부 정책을 주도한 공직자 수사를 본격화하고 있어서다. 정권에 따라 에너지 정책이 ‘널뛰기’한다는 점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 관계자는 "실무자 입장에서는 5년 후 다음 정권이 원전 정책 방향을 어떻게 틀지 몰라 부담이 있을 수밖에 없다"면서 "신한울 3·4호기 건설 즉시 재개는 ‘절차 즉시 재개’로 보는 게 맞을 것"이라고 밝혔다.
세종=이준형 기자 gils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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