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오현길 기자] 21대 첫 정기국회가 시작되면서 보험업계는 물론 자본시장까지 뒤흔들 '삼성생명법'에 대한 논란이 다시 대두되고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여당 의원들은 지난 국회에서의 실패를 이번 기회에 만회하겠다면서 입법에 속도를 내겠다는 입장이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삼성생명과 삼성화재는 삼성전자의 지분을 매각해야 해 '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지배구조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자칫 '주인 없는 회사'로 전락할 수 있다는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나오는 이유다. 이에 따라 금융업 간 규제의 형평성을 맞추기 위한 목적을 내세우고 있지만 특정 회사를 겨냥해 지나치게 제약한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보험사만 특혜…형평성 원칙 고수해야"=2일 정치권과 보험업계 등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 소속 박용진, 이용우 의원은 보험업법 일부개정법률안, 이른바 '삼성생명법'을 발의했다.

개정안은 보험업법 제106조에 담긴 보험사의 타 회사 주식 보유 비중에 대한 평가기준을 취득 당시 원가에서 시가로 변경하자는 게 골자다. 현행 법에서는 보험사의 계열사 주식 보유 규모를 '총자산 3%'를 넘지 못하도록 돼 있다.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보유 주식을 처분해야 하는 보험사는 삼성생명과 삼성화재뿐이다. 삼성을 겨냥했다고 불리는 대목이다.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주식 5억816만주(지분율 8.51%)를 보유 중이다. 1980년 당시 취득원가 기준으로 주당 1000원대로 약 5440억원 규모다. 삼성생명 자산은 309조원으로 총자산의 0.1% 수준으로 '3%'를 넘지 않는다.
하지만 시가로 평가하면 삼성전자 주가는 5만4200원(9월1일 기준)으로 이를 적용하면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가치는 27조원을 넘게 된다. 삼성생명 자산의 9%에 달할 정도로 늘어나게 된다. 개정안을 따르게 되면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주식을 20조원 넘게 처분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개정안을 추진하는 측은 현재 보험업법이 다른 금융업과 다른 기준을 두고 있어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주장한다.
은행, 저축은행, 금융투자회사들은 자산운용비율을 산정할 때 총자산 및 자기자본은 시가 등을 반영해 작성된 재무제표상의 가액(장부가액)을 기준으로 하고 있어 보험만 특혜를 적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보험사는 자산운용 상에서 보험금지급 만기와 운용자산 만기를 일치시켜야 하는데, 보유 지분을 취득원가로 평가할 경우에 시가와 평가액의 괴리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비박용진 의원은 지난 7월 열린 정무위원회에서 "삼성전자 주식 가격 변동에 따라서 삼성생명이 가져야 되는 충격이 다른 회사에 비해서 무려 20배나 크다"고 비판했다.
금융당국도 이러한 지적에 상당부분 동의하나 삼성생명에 주식 매각을 강제할 방법은 없다는 입장이다. 손병두 금융위 부위원장은 지난 31일 열린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현행 법과 원칙에 따라선 (삼성생명에) 주식 매각을 강제할 수 없고 기업에 자발적인 협조를 요청하는 것 외엔 다른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오랜 기간 적법하게 보유하던 주식, 갑자기 매각하라니"=보험업법 개정안이 '삼성생명법'으로 불릴 정도로 특정 기업 경영에 대한 과도한 침해를 불러올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계열사에 부당한 지원을 하지 못하게 막는 개정 취지에 따른다면 지분 취득 시점의 규제라는 점에서 취득원가로 따져야 한다는 얘기다.
또 대주주나 계열사 등에 대한 투자한도를 별도로 규제하는 나라는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와 일본 밖에 없다. 일본도 2001년 시가평가를 도입할 때 자회사 및 관련 회사 주식은 취득원가를, 기타 유가증권은 취득원가와 시가 중 적은 금액을 기준으로 평가하고 있다.
아울러 보유주식을 시가로 평가하면 주가 변동성에 따라 더 큰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반박한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해당 회사의 주가가 떨어지면 그 회사에 대한 지원 한도가 늘어나는 반대의 결과가 나타난다"며 "주가가 오르고 내리는 것에 따라 추가적으로 지분을 매입하거나 매각할 수 있어 자산운용 기준이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지분 취득 이후에 가치가 상승한다고 해서 보험사의 자산운용의 안정성이나 효율성이 낮아졌다고 보기 어렵다는 목소리도 있다. 삼성생명은 삼성전자로 부터 지난해 7100억원에 달하는 배당수익을 얻었는데, 저금리로 이를 대체할 수 있는 투자처를 찾는 것도 어려운 상황이다.
정준섭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생명은 법안의 취지대로 삼성전자 지분 처분에 따른 자본건전성 확보할 수 있으나 저금리 환경에서 삼성전자의안정적 배당수익률을 대체해야하는 숙제를 안게 된다"고 평가했다.
아울러 지분 강제 매각으로 인해 삼성생명의 주주 뿐만 아니라 국내 증시에 영향을 미쳐 등 재산권 침해 논란도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기본권을 제한하는 법률은 규제대상이나 범위가 일반적이어야 하는데 이번 개정안은 삼성생명과 삼성화재만 대상으로 하는 것으로 차별적이라는 점이 뚜렷해 법적 정당성에 시비가 제기된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전자 지분을 다른 계열사가 확보해야 하는데 결국 삼성에 세금을 내도록 압박하는 꼴"이라며 "금융권 뿐만 아니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다각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오현길 기자 ohk041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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