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경수 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
전 세계의 관심을 받는 잭슨홀 회의가 지난주 가상공간에서 개최됐다. 올해의 빅뉴스는 물가상승압력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목표인플레이션에서 평균인플레이션으로 통화정책의 틀을 바꾸겠다는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의 발언이다. 통화정책의 무게중심을 물가에서 고용으로 이동하겠다는 것이다. Fed의 정책 전환에는 파월의장이 지적했듯 고용시장이 침체될 때 소수인종을 중심으로 저소득층이 고통을 받는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우려가 작용한다. 이미 민주당은 끊이지 않는 인종 갈등에 대처하기 위해 법을 개정, 인종 간 경제적 격차에 적극적으로 대처할 것을 요구했다.
작년 잭슨홀 회의의 주연은 마크 카니 당시 영국은행(BOE) 총재였다. 그는 그동안 학계에서 제기되던 달러 중심의 현 국제통화체제 개혁을 주장했다. 세계에서 미국의 위상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으나 달러화(化)가 국제무역의 결제통화로서 지배적 위치를 점하는 비대칭성이 구조적 문제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작년 우리나라 수출의 83.5%, 수입의 80.6%가 달러화로 결제됐다. 무역의 달러화는 원ㆍ달러 환율이 교역 조건을 통해 대외 수지를 조정하는 경로가 사라지게 하는 대신, 세계 교역량이 강달러 시 위축되고 약달러 시 확장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더욱이 미 Fed가 주도하는 글로벌 금융 순환은 일국 거시경제 상황과 무관하게 저금리 기조에서 조성된 약달러가 과다한 자본 유입, 자산인플레이션과 신용 확장을 일으키고 반대로 고금리 기조에서 강달러는 금융 순환을 반대로 일으킨다. 글로벌 금융 순환은 신흥국들이 통화정책의 자율성을 포기하고 어쩔 수 없이 미 Fed의 통화정책 방향에 편승하게 한다. 따라서 목표인플레이션 통화정책은 시대착오적이라고 카니 당시 총재는 냉소했다.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은 미국을 곤경에 빠뜨렸다. 엄청난 희생자를 쏟아내고 불거진 인종 갈등은 미국사회를 분열하는 촉매제가 됐다. 미국사회는 모순을 치유하는 자정 기능을 잃어버렸다. 파월 의장의 발언은 Fed가 그 비용을 분담하겠다는 선언에 다름없다.
파월 의장이 연설한 날, 마윈 알리바바 창업자가 보유한 앤트그룹이 홍콩과 상해에 동시 상장돼 기업 가치가 4배(2000억달러) 이상 성장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제3자 모바일 결제 서비스에서 시작해 대출ㆍ자산관리ㆍ보험 등 거대 금융회사로 등장한 앤트와 텐센트의 위챗은 결제 기능이 중심이 된 플랫폼에서 금융 생태계를 이뤘다. 플랫폼을 소유한 기술기업이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데이터 중개기관으로 거듭난 것이다. 디지털 위안화의 출범을 앞둔 중국은 금융 후진국에서 벗어나 이제 기술 중심의 금융 시스템을 구축하게 됐다. 언론은 일대일로(一帶一路: 육상ㆍ해상 실크로드)지역에서 달러화의 영향력은 쇠퇴할 것으로 전망한다.
한 나라 통화가 기축통화로 사용될 때 희소성과 신뢰는 상충 관계를 지닌다. 적으면 유동성이 부족해지고, 반대로 많으면 그 가치가 하락할 위험이 따른다. 파월 의장의 발언은 즉각 인플레이션에 대한 기대를 드높였다. 국채 수익률은 상승했고, 미 달러인덱스는 하락했으며 금값은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팬데믹 위기로 달러화는 이른 시점에 신뢰의 시험대에 올랐다. 잭슨홀 콘퍼런스에서 카니 전 총재는 달러 중심의 국제통화체제의 대안으로서 다극(多極) 통화체제를 제안했다. 불안정성에도 다변화의 장점이 훨씬 크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유로화와 위안화 그리고 페이스북 주도의 디지털화폐인 리브라가 달러화와 겨루는 것은 먼 훗날의 일이 아니다.
김경수 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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