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황서율 기자] 서울에서 거래된 주택 임대차 계약 중 월세의 비중이 8년여만에 전세를 넘어섰다. 금리인상 때문에 전세 보증금을 얻어 이자를 내느니 아예 월세로 사는 게 유리해진 상황 변화가 영향을 줬다. 집주인의 경우 전셋값을 올리면서 그만큼을 월세로 내놓는 경우가 많다. 전세시장에선 주로 급매물 위주로 거래가 이루어지면서 서울 전셋값은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11일 대한민국법원 등기정보광장 확정일자 전·월세건수에 따르면 지난달 월세 거래건수는 3만9494건으로 전세 3만5757건보다 많았다. 확정일자 부여사무가 전산화된 2014년 1월1일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확정일자란 법원 또는 동사무에서 주택임대차계약을 체결한 날짜를 증명하기 위해 계약서에 도장으로 찍은 날짜를 의미한다.
현장에서 만난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들은 금리인상으로 전세자금대출 부담이 커지자 월세 매물을 찾는 임차인들이 많아졌다고 입을 모았다. 임차인들이 매달 상환해야 하는 대출 이자가 월세로 전환했을 때 내야하는 비용보다 비싸진 경우가 많아진 것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시중 은행 전세자금대출 금융상품 중에는 당월 최고금리가 5.25%에 달하는 것도 있다. 서울시의 공동주택 전·월세전환율은 4.7%(지난해 12월 기준)다. 즉 4.7%보다 높은 금리를 부담해야 하는 임차인은 대출을 받는 것보다 그만큼 월세를 부담하는 게 유리하다.
임대인 입장에서도 전세값을 높여서는 거래가 되지 않기 때문에 인상분을 월세로 전환한다. 윤지해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전월세상한제를 적용받지 않는 신규계약의 경우 전세보증금 인상분을 부분 월세로 전환하는 경우가 많아 전세의 월세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내놓은 매물에 비해 세입자 수요가 없다보니 전세 호가를 내리는 급매물 위주로 거래되면서 서울 아파트 전세가격은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 지난주 아파트 전세가격은 2주 연속 하락(-0.03%)을 유지했다. 이번달 실거래 된 성북구 길음동 길음뉴타운9단지래미안(전용면적 59.92㎡)의 경우 4억5000만원에 거래됐다. 지난 2020년 9월 비슷한 층수가 5억에 거래된 데 비해 5000만원 떨어진 가격이다.
물론 서울 내에서도 지역별로 이런 현상은 다소 상이하게 나타난다. 지난달 월세건수가 전세보다 많았던 자치구는 25개 중 16개였다. 지난달 12개, 전년 동월 6개구에 비해 많아졌지만 여전히 전세가 많은 곳도 존재하는 것이다. 성북구 길음동 A 공인중개사사무소(공인) 관계자는 "작년 같으면 임대차계약 10건 중 4건이 전세였다면 지금은 3건 정도로 줄어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황서율 기자 chest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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