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업데이트 22.02.22 10:59

[글로벌포커스]인플레 두려워도 지갑은 활짝여는 美, 이유는?

10명 중 7명 "지출 습관 바뀌어"
씀씀이는 불변…보복소비 폭발
외식·스포츠 수요 빠른 회복세


[아시아경제 김현정 기자] 코로나19 대응을 명목으로 역대급 ‘돈잔치’를 벌인 미국이 고물가 역풍을 맞게 됐다. 40년만에 나타난 미국발(發) 인플레이션은 전 세계로 확산될 조짐이다. 미국인들 역시 물가 급등을 우려하며 소비 습관을 바꾸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동시에 미국인들은 지난 2년 간 참아왔던 여가 활동을 재개하며 ‘보복소비’에 나설 채비를 하고 있다. 쏟아붓던 재정에 늘어난 미국인들의 저축액이 물가부담의 완충재 역할을 해주며 우려보다 시장 타격은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인플레이션發 소비 패턴 바뀌나= 미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1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동기 대비 7.5% 상승해 지난 1982년 2월 이후 40년 만에 가장 빠르게 뛰었다. 전례없이 빠른 물가 상승세에 미국 소비자들 역시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지난 10~14일 미국 성인 1321명을 대상으로 퀴니피액대가 조사한 설문조사에서 코로나19(10%)와 같은 눈 앞의 악재보다 미국인들은 인플레이션(27%)을 더 심각한 당면과제로 여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결과 음식 가격이나 유가 급등 등 전반적 물가 상승으로 대부분의 미국인이 지출 습관에 변화를 느끼고 있다. 전체 응답자의 72%는 ‘지출 습관이 바뀌고 있다’고 답했고, 변화가 없다는 응답은 28%에 그쳤다.
인플레이션의 영향은 정치 성향이나 인종, 나이 등을 가리지 않고 미치고 있다. 공화당 지지 성향 응답자의 83%, 민주당 지지 성향 응답자의 57%가 소비 변화를 감지했다. 백인(69%), 흑인(66%), 히스패닉(84%) 모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인플레이션에 압박감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령을 기준으로 구분해봐도 18~34세(77%), 35~49세(71%), 50~64세(70%), 65세 이상(62%) 등 모든 계층에서 같은 대답을 했다.



◆지갑은 닫히지 않는다= ‘지출 습관의 변화’가 씀씀이를 줄인다는 의미는 아니다. 미국에서는 오히려 여행, 캠핑, 오락 등 그간 코로나19 방역으로 참아왔던 여가활동에 대한 보복소비가 폭발하려는 조짐을 보인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국 디즈니랜드 테마파크의 방문객은 팬데믹 이전 수준을 여전히 회복하지 못하고 있지만, 방문객 1인당 지출액은 2019년보다 40% 더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에어비앤비는 올해 여름 시즌 숙박 예약이 2019년보다 25% 더 늘었다고 밝혔다. 미국이 마스크 착용 의무화 방침을 해제하면서 외식 수요도 늘어날 조짐이다. 라몬 라구아르타 펩시보틀링그룹 CEO는 "가정에서의 소비도 여전히 많지만, 레스토랑 사업이 가속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스포츠 경기 수요도 강한 회복세를 보인다. 주요 경기장에 식품을 납품하는 업체 아라마크는 미국프로풋볼(NFL)에 관중이 몰렸다고 전했다. 존 질며 아라마크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메이저리그 시즌동안 코로나19 대유행 이전 수준을 뛰어넘는 관중 수에 대비하고 있다면서 "늘어나는 야구 수요로 올해 성과가 좋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인플레이션을 우려하는 미국인들이 현재의 재정 상황에 대해 비관적으로 여기지는 않는다는 점도 이 같은 전망과 흐름을 같이한다. 퀴니피액대의 같은 조사에서 최근의 재정상황을 묻는 질문에 가장 많은 응답자가 좋다(55%)고 답했고, 아주좋다(13%)가 그다지 좋지 않다(22%)의 뒤를 이었다. 빈곤하다고 자평한 응답자는 8%에 그쳤다.
다만 국가 경제에 대해서는 부정적 평가가 과반수를 차지했다. 미국의 재정 상태가 빈곤하다(42%), 또는 좋지않다(35%)는 견해가 대다수였고, 좋다(20%)거나 아주좋다(2%)는 오히려 소수 의견이었다.




대형유통사, 가격 경쟁력 앞세워
물가 인상을 매출 호재로 삼아
◆"소비자들 더 예민해질 것"…기회 모색하는 기업들= 인플레이션으로 영업환경이 악화된 일부 유통기업들은 최근의 위기 상황을 오히려 ‘기회’로 삼겠다는 태세다.
월마트의 더그 맥밀런 CEO는 최근 컨퍼런스콜을 통해 "인플레이션으로 미국의 중산층이나 저소득 가구, 심지어 부유층 가구까지도 가격에 더욱 민감해지고 있다"면서 "이것이 우리에겐 더 유리하다"고 말했다. 소위 ‘규모의 경제’로 공급 및 제조업체로부터 저가에 물건을 공급받는 기존의 영업방침이 가격 정보에 민감해진 최근의 상황에 오히려 호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회사의 브렛 빅스 최고재무책임자(CFO)는 CNBC와의 인터뷰에서 "현재로서는 (소비자들의) 쇼핑방식에 큰 변화가 없다"면서도 물가를 반영해 더 싼 브랜드로 바꿔 구매하거나 예전보다 작은 패키지의 제품을 사는 방식으로 인플레이션에 대응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 지난해 4분기 월마트의 매출은 월가의 예상을 웃돌며 미국에서 5.6% 늘었다.
시장에서도 이 같은 자신감에 힘을 싣고 있다. 특히 월마트가 소규모 유통업체보다 전자상거래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 착안, 골드만삭스는 월마트의 목표 주가를 현재(137.99달러)보다 약 27% 더 오른 175달러로 제시한 바 있다. 실제로 마케팅 조사업체 치코리가 최근 3개월간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온라인에서 식료품을 구매한 이용자의 30%는 월마트를 이용했다.코스트코 같은 창고형 할인매장의 경쟁력도 두드러질 것으로 보인다. 코스트코의 지난해 11월 전자상거래 매출은 전년 대비 14.3% 뛰었다. ‘1달러숍’으로 잘 알려진 달러트리와 달러제너럴 역시 미국의 인플레이션 수혜 기업으로 꼽힌다.
미국의 코로나19 재정 사업으로 쌓인 저축액이 인플레이션의 완충재가 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노무라증권은 지난해 말 기준 미국인들이 코로나19 재정지원으로 2조4000억달러의 누적 초과저축을 가지고 있다고 봤다. 로버트 덴트 노무라증권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올해 소비자들이 깔고 앉은 초과저축액이 재정문제에 따른 부정적 영향을 일부 상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현정 기자 alpha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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