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세종=김혜원 기자] 우유를 사먹는 사람은 줄어드는데 우유를 만드는 원재료, 원유(原乳) 가격은 계속 오르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수년째 이어지고 있다. 반면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치즈나 버터 같은 가공 유제품시장은 가격이 싼 수입산 원유에 내준 상태다. 사실상 정부의 정책·재정 지원에 의존하는 국내 낙농산업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 가격 산정 체계 등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1일 낙농업계에 따르면 우유 등 음용유 소비가 급감했음에도 원유 가격은 지난 20년 동안 ℓ당 629원에서 1083원으로 72.2%나 올랐다. 같은 기간 가격 증가율이 일본(33.8%), 유럽(19.6%), 미국(11.8%) 등을 크게 웃돈다. 원유 가격의 절대 금액인 1083원을 분석해 보면 경영비(667원)의 1.6배이고 생산비(791원)의 1.4배에 달한다. 업계에서는 경영비와 생산비 사이에서 움직이는 외국에 비해 국내 낙농가의 수익률은 높은 수준으로 평가한다.
이 같은 현상은 시장 수급 상황이 전과 달라졌는데도 쿼터제와 생산비 연동제라는 제도에 묶여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데서 비롯됐다. 국내 낙농산업은 쿼터제, 생산비 연동제, 정부의 차액 보전 등 3개 축으로 연명하는 실정이다.
우선 원유 쿼터량(223만t)은 수요량(175만t)을 초과하고 있다. 하지만 쿼터 내 원유는 시장 가격보다 높은 고정 가격으로 거래 담보가 가능하다. 특히 쿼터제는 소비가 줄고 있는 음용유 가격에만 적용하고 있어 가공 유제품 소비가 늘어나는 현실과는 동떨어진 제도라는 지적을 받는다. 콜드체인, 유제품 가공 등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현재는 쿼터제의 의미가 약화된 것이 사실이다. 유럽의 경우 2015년부터 쿼터제를 없앴다.
쿼터제가 존재한다고 해도 국제 가격이 ℓ당 400~500원 수준에 불과한데 국내 유업체가 1000원대인 국산 원유를 다 구매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때 정부가 구입 가격의 일부를 보조하는데 2020년에는 336억원을 대신 내줬다. 쿼터 보유 농가(4800호)당 약 700만원 수준이다. 지난 20년간 수입산 원유 공급량은 272.7% 증가한 반면 국내산 자급률은 77.3%에서 48.1%로 29.2%포인트나 떨어졌다. 낙농산업 경쟁력 저하의 현주소인 셈이다.
정부는 낙농산업을 되살리기 위해 원유의 가격을 생산비의 증감에만 연동해 조정하는 현재의 생산비 연동제를 용도별 차등 가격제로 우선 손보자는 입장이다. 생산비 연동제는 과거 우유가 부족하던 시절 우유 생산을 늘리고 낙농가와 유업체 간 매년 실시하는 원유 가격 협상을 원활히 하자는 취지에서 2013년 도입됐다. 그러나 음용유 소비가 계속 주는 데 반해 생산비 연동제는 공급 측면의 가격 인상 요인 만을 반영한다는 문제점이 대두됐고 수요와 공급의 균형이라고 하는 시장경제 원리에도 위배된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생산자 입장에서는 쿼터제와 생산비 연동제가 생산량과 가격을 보장하고 있기 때문에 제도 개선에 부정적이다.
원유 가격 결정 주체인 낙농진흥회 이사회가 생산농가 중심으로 구성된 점은 해결 과제다. 낙농진흥회 이사회는 이사 3분의 2 이상이 참석해야 열릴 수 있는데 이사 15명 중 7명이 생산자 단체 측이다. 이들이 반대하는 안건이면 개의조차 불가능한 구조다.
세종=김혜원 기자 kimhy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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