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송승윤 기자, 구은모 기자]"삥시장이 어딨어. 다 옛말이지."
16일 오후 1시께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 청과시장. 차도를 따라 늘어선 과일 가게 사이 골목으로 들어서자 여느 주택가와 다를 것 없는 풍경이 펼쳐졌다. 그러나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자 ‘○○상회’ ‘××상사’ 등의 상호가 적힌 정체 모를 가게가 줄지어 서있었다. 이곳은 과거 식품업체의 대리점에서 미처 못 판 물건들이 ‘땡처리’로 흘러들어왔던 이른바 ‘삥시장’이다. 음료나 라면, 장류 등 각종 물건이 절반 수준으로 싸게 거래돼 ‘깡통시장’ ‘깡시장’ ‘땡처리시장’ 등으로도 불렸었다. 그러나 현재는 간신히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유통 구조의 변화와 더불어 주요 고객이던 동네 슈퍼마켓 등 소매점이 자취를 감추며 함께 쇠퇴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날 방문한 삥시장 골목엔 영업을 하고 있는 곳보다 셔터를 내린 채 굳게 닫힌 가게가 더 많았다. 오랫동안 문을 열지 않은 듯 여기저기엔 ‘임대’라는 글자가 적힌 플래카드도 붙어 있었다. 8~9년전 만 해도 골목 곳곳엔 가게가 빼곡했지만 이런 상황이 이어지자 3분의 2가 문을 닫았고 원래 가게가 있었던 골목마다 다세대주택이 들어서면서 절반은 주거 지역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했다.
당시 이런 물건들은 싸게 파는 대신 세금계산서 발급이 가능한 정상적인 거래가 아닌 이른바 ‘무자료 거래’로 이뤄졌다. 하지만 탈세의 온상이라는 지적이 이어져 온 탓에 지금은 이 같은 거래 형태가 아예 사라졌다는 게 이곳 상인들의 말이다. 이곳 상점들에선 권장소비자가가 1000원인 농심 매운새우깡 90g 한봉지가 880원대다. 900원인 오징어짬뽕컵은 700원 수준이다. 과거 ‘땡처리 상품’이 40~50%가량 싸게 판매됐던 것을 생각하면 가격적인 메리트가 크지 않은 셈이다. 이런 이유로 찾는 이가 줄어든 것은 물론, 이젠 이곳을 아는 이조차 적어지게 됐다.

이날 시장을 찾은 김찬영씨(47·여)는 "술집을 운영하는데 필요한 물건을 사러 방문했다"며 "가게가 근처라 가끔 오긴 하지만 멀리 있다면 굳이 찾을 이유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유통 지형의 변화도 한몫했다. 손님 대부분이 슈퍼마켓 등 소매점을 운영하는 이들인 탓에 동네 슈퍼가 점점 사라져가는 상황이 큰 영향을 끼쳤다. 그나마 거래하던 곳에 납품하거나 간혹 찾아오는 손님 외엔 새로 찾아오는 이들이 드물어 일부 가게는 매출이 10년 전과 비교해 크게는 10분의 1 수준으로 줄기도 했다고 한다.
이곳에서 13년째 가게를 운영하는 김성호씨(43·가명)는 "100곳 넘는 가게가 거의 문 닫으면서 삥시장이란 말도 이젠 들어본 지 오래"라며 "간혹 대리점에서 떼오는 물건도 싸게 들여오지 않기 때문에 당연히 옛날처럼 팔 순 없고, 점점 납품할 곳도 사라져 이젠 식품류를 파는 곳은 여기를 포함해 2~3곳만 남았다"고 말했다.
송승윤 기자 kaav@asiae.co.kr
구은모 기자 gooeunm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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