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세종=권해영 기자] 우리나라보다 코로나19발(發) 재정지출 규모가 큰 국가들의 물가 상승률이 대체로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금리 등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히지만 정부의 대규모 재정지출 역시 물가를 밀어올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추가경정예산(추경)안 증액을 요구하는 정치권 일각에선 한국의 재정지출이 적은 편이라고 주장하지만 추경 규모를 확대해 돈을 더 풀면 빠르게 오르는 물가를 더욱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15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검토보고서 및 각국 통계기관 자료를 종합하면 코로나19가 발생한 2020년 3월부터 2021년 9월까지 주요국의 GDP 대비 재정지출 비율이 우리나라는 16.5%로 미국(27.9%), 일본(45.0%), 영국(36.0%), 독일(43.1%), 프랑스(24.8%)보다 적은 편이지만 물가 상승률 또한 대체로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소비자물가가 1년 전 보다 3.7% 오를 때 재정지출 비율이 1.7배인 미국은 물가 상승률이 7.0%에 달했다. 재정지출 비율이 2.2배 많은 영국과 2.6배 많은 독일의 경우 물가 상승률이 각각 4.8%, 5.7%(독일 내 기준 적용시 5.3%)에 이르렀다. 프랑스는 재정지출 비율이 1.5배 많았는데 물가 상승률은 3.4%로 우리나라와 비슷했다. GDP 대비 돈을 가장 많이 푼 일본만 물가상승률이 0.8%로 낮은 편이었다.
특히 출자·융자·보증·자산구매·채무인수 등 '간접적 재정지출'이 아닌 지출 확대·조세 감면과 같은 '직접적 재정지출'이 GDP 대비 25.5%로 가장 컸던 미국의 물가 상승률은 7.0%로 가장 높았다. 코로나19 발생 전인 2019년 12월 물가 상승률(2.3%) 대비 인상폭 역시 4.7%포인트에 이르러 다른 국가들(영국 3.4%포인트, 독일 4.2%포인트, 프랑스 1.8%포인트) 대비 컸다. 올해 1월 물가 상승률 또한 전년 동기 대비 7.5%에 달해 1982년 2월 이후 4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시중에 풀린 유동성이 물가를 자극한 셈이다. 김부겸 국무총리가 전날 한 방송사에 출연해 "GDP 대비 다른 나라는 몇프로까지 (재정지출을) 했는데 (우리는) 왜 안하냐고 하는데, 그런 나라들이 전부 물가 때문에 고통스럽다"며 "결국 공짜 점심은 없다"고 반박한 것도 이같은 배경에서다.
설상가상 우크라이나 사태 등으로 원유를 비롯한 각종 원자재 가격도 급등하고 있어 우리나라를 비롯한 글로벌 주요 국가들이 물가를 통제하기 힘든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졌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정치권이 추경안의 증액을 요구하고 있어 재정·통화 당국의 고민은 더 깊어지고 있다. 특히 재정당국은 유동성 확대가 물가를 자극하고 무엇보다 추경 재원 대부분을 적자국채 발행으로 조달해야 해 국채금리가 급등, 가계와 자영업자의 대출금리 상승을 부채질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전날 국고채 3년물 금리는 2.347%로 2014년 9월23일(2.350%) 이후 7년5개월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전 세계적인 물가 상승은 통화정책의 영향이 가장 크지만, 재정지출 자체가 큰 규모로 이뤄지면 물가 상승 압력은 더욱 강화될 수밖에 없다"며 "이번 추경은 금리와 물가를 더욱 자극해 국민들의 삶을 더욱 힘들게 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세종=권해영 기자 rogueh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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