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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광석 우리은행장이 차기 은행장 숏 리스트(후보군)에서 제외돼 연임에 실패하면서 우리금융지주 회장과 우리은행장 사이 갈등의 역사가 주목받고 있다. 우리금융은 윤병철 초대 지주 회장과 이덕훈 은행장 시절부터 줄곧 지주 회장과 은행장이 사사건건 대립해왔었다. 정부가 대주주로 있었기 때문에 정치권의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못한 게 주요 원인으로 꼽히지만, 2016년 정부가 주요 지분을 매각해 민영화된 후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어 과연 지주 회장과 은행장 간 갈등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4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금융그룹 자회사대표이사후보추천위원회(자추위)는 차기 우리은행장 숏 리스트로 이원덕 우리금융 수석부사장, 박화재 우리은행 여신지원그룹 집행부행장, 전상욱 리스크관리그룹 부행장보를 선정했다. 권광석 현 행장은 후보군에 들지 못하면서 연임에 실패했다. 권 행장의 임기는 오는 3월 만료된다.
권 행장은 2020년 3월 선임됐는데 이례적으로 ‘1+1년’이라는 임기를 부여받았다. 통상 시중은행의 대표는 ‘2+1년’ 혹은 ‘1+2년’의 임기를 보장받는다. 이에 짧은 임기의 배경은 대내외적으로 다양한 해석이 나돌기도 했다.
우리금융그룹은 2001년 지주 설립 이후 회장과 행장이 계속해서 반목해왔다. 형식적으로는 지주 회장이 우위에 있지만, 계열사 중 은행이 지주 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기 때문에 실질적인 힘은 은행장에게 있다. 2003년에는 윤병철 회장과 이덕훈 행장이 집안싸움을 벌였다. 계열사였던 우리신용카드의 경영 정상화 방안에 입장을 달리한 게 시작이었다. 이 행장은 우리은행에 우리신용카드의 흡수합병안을, 윤 회장은 우리신용카드의 독자회생을 주장했다.
이후 우리금융지주가 ‘회계투명성 훼손 가능성’과 ‘그룹 전략 역행’을 이유로 우리은행에 제재를 내렸다. 이 행장은 ‘엄중 주의’ 징계를, 최병길 경영기획본부장과 김영석 신용관리본부장은 ‘한 달 정직’ 요구까지 받았다. 그런데 우리은행 측이 잘못이 없다며 금융지주 요청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맞부딪히자 갈등이 극에 달했다. 그래서 직후인 2004년 황영기 회장 시절에는 황 회장이 은행장을 겸임하기도 했다.
행장 인사 앞둔 우리銀…이번엔 다를까2007년 취임한 박병원 회장과 박해춘 행장 시기에도 불화설이 흘러나왔다. 박 행장은 박 회장의 정책에 숱한 제동을 걸었다. 산업은행·기업은행·우리은행을 묶어 매각하는 정부의 ‘메가뱅크’안에도 박 회장은 찬성, 박 행장은 반대의견을 냈다. 우리금융 내부에서는 박 행장이 지주사의 의중을 살피지 않고 내부업무를 처리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2008년부터 2013년까지 재임했던 이팔성 회장은 이종휘·이순우 행장과 연이어 마찰을 빚었다. 이 회장은 당시 이른바 ‘매트릭스 조직’을 추진해 지주회사의 역할을 강화하려 했다. 매트릭스 조직은 가계금융, 기업금융, 글로벌 등 사업부문별 대표를 두기 때문에 은행장의 권한이 제한될 여지가 있다. 두 행장이 재임기간 내내 반기를 들면서 매트릭스 도입은 수포로 돌아갔다. 은행 임원 인사를 지주 회장과 사전협의하도록 하는 내규도 우리은행 측의 반발로 무산됐다.
반복되는 갈등의 주요 원인은 우리금융지주가 정부 소유였던 탓에 정치권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지주 회장을 밀었던 쪽과 은행장을 밀었던 쪽이 줄이 다르다는 얘기가 공공연히 돌았다. KB, 신한, 하나 등 다른 금융지주회사는 주로 은행장을 역임한 후 지주 회장으로 가는 게 일반적이었지만 우리금융은 정치권의 입김에 따라 거의 매번 회장과 행장이 바뀌었다. 지주 회장이 연임한 사례도 이명박 정부 당시 ‘4대 천왕’ 중 하나였던 이팔성 회장이 유일하다. 이 회장은 대통령과 고려대 동문으로 친분이 두터웠다. 2016년 11월까지만 해도 예금보험공사는 우리금융지주 지분 51.10%를 들고 있었다. 실질적 민영화 이후에도 지난해 11월까지 21.40%의 지분을 확보하고 있었다.
우리은행이 한일은행과 상업은행이 합병해 탄생했지만 화학적 결합을 이루지 못했다는 점도 한 요인으로 꼽힌다. 2017년 우리은행 특혜채용 의혹이 불거졌을 때도 상업은행 출신들이 문건유출자로 한일은행 출신들을 지목하면서 분란이 있었다. 우리은행은 한일은행과 상업은행 출신이 번갈아가며 행장을 역임하는 관례가 있었다. 당시 상업은행 출신이었던 이광구 행장이 책임지고 사퇴하자 "밀려나게 됐다"며 배후를 의심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현재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은 한일은행, 권광석 행장은 상업은행 출신이다.
관건은 우리금융지주가 완전민영화 이후 단행한 인사로 해묵은 갈등을 풀 수 있을지다. 금융권에서는 차기 우리은행장 후보 중에서 이원덕 수석부사장이 유력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수석부사장은 사내이사로 손 회장과 함께 지주이사회에 참여하는 유일한 임원이다. 숙원사업이었던 우리은행 ‘민영화’에도 이바지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송승섭 기자 tmdtjq850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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