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업데이트 22.02.01 20:37

'밀크 인플레' 잡으려다 우유대란 맞나…정부-낙농가 '기싸움'




[아시아경제 세종=김혜원 기자] 때아닌 우유 대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밀크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우유의 원재료인 원유(原乳) 가격 산정 체계를 개편하려는 정부의 움직임에 낙농가 단체가 소득 불안정을 이유로 거세게 반발하면서다. 정부가 당초 입장에서 후퇴한 수정안을 제시했지만 생산자 단체는 현실을 외면한 정책이라며 납유 거부를 포함한 고강도 투쟁을 예고한 상황이다. 다만 갈등의 또 다른 불씨였던 낙농진흥회의 공공기관 지정이 없던 일로 끝나면서 낙농가의 집단 공급 거부의 명분은 다소 낮아졌다.
치솟는 우윳값…정부, 생산비 연동제→용도별 차등 가격제 개편 추진
1일 정부와 업계에 따르면 농림축산식품부는 오는 10월을 목표로 용도별 차등 가격제 도입과 낙농진흥회의 의사결정 구조 개편 등을 골자로 한 낙농산업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정부 개편안의 핵심은 원유 가격 결정 체계를 현재의 원유 가격 연동제(생산비 연동제)에서 용도별 차등 가격제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우유 공급이 부족하던 2013년 생산을 늘리기 위해 정부가 도입한 원유 가격 연동제는 낙농가의 생산비와 각종 인센티브를 더해 원유 가격을 정하는 게 골자였다. 낙농산업의 안정화라는 초기 취지는 좋았다. 문제는 수요와 공급 법칙에 기반하지 않은 제도 시행 후 우윳값은 계속해서 오르는 반면 비싼 가격 탓에 소비량은 감소하는 것은 물론 유제품을 원료로 만드는 기타 식품 물가 상승을 초래했다는 데 있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 원유 가격은 ℓ당 1083원으로 미국(491원)과 유럽(470원)보다 배 이상 높다. 가격 경쟁력에서 밀리면서 국산 유제품 점유율은 2001년 77.3%에서 2020년 48.1%로 떨어졌다.
용도별 차등 가격제는 원유를 흰 우유를 만드는 음용유와 치즈·버터 등을 만드는 가공유로 나눠 가격을 차등 적용하는 것을 말한다. 농식품부는 수요가 많은 음용유는 지금과 같은 가격인 1100원에 공급하고 가공유는 800원에 공급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가공유의 경우 정부가 일부 차액을 보조하는 방식이다. 첫해에는 음용유 190만t과 가공유 20만t을 적용하고 두번째 해부터는 음용유 185만t·가공유 30만t, 다음 해에는 음용유 180만t· 가공유 40만t과 같은 방식으로 시장 상황을 고려해 단계적 적용하겠다는 게 정부 수정안의 골자다.
하지만 한국낙농육우협회는 즉각 성명을 내고 "낙농가들은 생산비 폭등과 각종 환경 규제로 인해 우유 증산 자체가 어렵다"면서 "정상 쿼터를 구제역 파동(2011년) 당시 생산량 수준인 190만t으로 조정할 경우 우유 대란을 부추기를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반발했다.
농식품부는 수정 제시한 용도별 차등 가격제 적용 첫해와 현재 제도 지속 시 농가의 생산 및 판매 수입을 비교해 보면 오히려 농가의 판매 수입이 1500억원 이상 늘어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이에 대해 협회 측은 "지난해 사료비 폭등 요인으로만 봐도 생산비가 10% 이상 증가한 900원 이상으로 예측되는데, 800원의 가공유를 생산할 농가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낙농진흥회 공공기관화 무산…생산자 단체 중심 이사회 구성은 문제
원유 가격을 결정하는 주체인 낙농진흥회를 둘러싼 잡음도 이어지고 있다. 낙농진흥회를 공공기관으로 신규 지정하려는 정부의 움직임은 사실상의 가격 통제라는 안팎의 반발 여론에 밀려 무산됐다.
하지만 낙농진흥회 이사회가 생산자 단체 중심으로 구성돼 있어 의사결정 구조가 '기울어진 운동장'인 점은 해결해야 할 문제로 지적된다. 낙농진흥회 이사회는 이사 3분의2 이상이 참석해야 열릴 수 있는데 이사 15명 중 7명이 생산자 단체 측이라서 이들이 반대하면 이사회 자체를 개최할 수가 없다.
이에 농식품부는 현재 낙농진흥회 이사회 구성 인원 15인을 23인(정부 3, 학계 3, 변호사 1, 회계사 1, 낙농진흥회 1, 소비자 대표 3, 생산자 대표 7, 유업체 대표 4)으로 늘리고 이사의 3분의2 이상이 출석해야만 개의할 수 있는 조건을 삭제하되 출석 인원 과반수로 돼 있는 의결 조건을 과반수로 강화하는 내용을 제시했었다. 이에 대해 생산자 단체 측에서 교섭권을 무력화하는 처사라고 맞서자 농식품부는 다시 별도의 소위원회를 구성해 원유 구매 물량과 가격 결정권을 부여하자는 수정안을 던진 상태다. 협회는 이달 중으로 결의대회를 열어 원유 납품 중단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낙농가 단체의 납유 거부로까지 사태가 비화할지는 미지수다. 유업체와 체결한 원유 공급 계약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법적 책임 공방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세종=김혜원 기자 kimhy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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