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업데이트 22.01.31 05:00

"서민 지갑만 얇아져"…고삐 풀린 글로벌 '밥상 물가'




[아시아경제 임주형 기자]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생산 차질, 국제 정세 위기 등으로 인해 글로벌 공급 위기 우려가 심화되면서 물가도 치솟고 있다. 특히 서민들의 체감 경기에 큰 영향을 미치는 곡물, 육류 등 이른바 '밥상 물가'는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설 연휴를 맞이해 음식을 장만하러 나온 서민들의 고충이 커지고 있다.
인플레이션은 이미 주요국에서 경제 성장을 위협할 만큼 큰 폭으로 상승했다. 지난해 12월 기준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는 7%나 치솟아 거의 4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유럽연합(EU) 내 유로화 사용 지역인 유로존, 영국의 CPI 또한 5%를 초과했다.
글로벌 기업들도 물가 상승이 올해 경제 회복을 위협할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지난 13일(현지시간) 미국 비영리 경제조사기관 '컨퍼런스보드'가 글로벌 기업 최고경영자(CEO) 91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경영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경영인들은 인플레이션을 코로나19에 이은 '올해 위험 요인' 2위로 꼽았다.
물가를 높이는 주요한 원인은 공급 차질 때문이다. 지난 2020년 전 세계를 뒤흔든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세계적 대유행) 이후 많은 나라들이 사회적 거리두기, 고강도 봉쇄 등 방역지침을 내렸고, 이에 따라 공장 생산과 물류 이동이 방해를 받으면서 공급망이 취약해졌다. 임박한 경제위기로부터 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각국 중앙은행들이 시행한 유동성 공급도 자산 가격 상승을 부추겨 인플레이션을 높이는 원인으로 지목됐다.




동유럽의 지정학적 위기 또한 물가 위기를 심화하고 있다. 최근 세계 최대의 원자재 수출국들인 러시아, 우크라이나가 갈등에 휩싸이면서 구리·알루미늄·천연가스·밀 등 여러 품목의 가격이 폭등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국 또한 이 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한국의 지난해 평균 CPI는 2.2%는 미국·유럽 등 국가에 비해서는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국민의 일상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식료품 및 비주류음료' 물가 상승률은 5.9%를 기록, 터키(24.3%), 멕시코(7.2%) 등과 함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고 수준이었다.
식품과 음료처럼 삶에 필수적인 품목은 지출을 줄이기 힘들다. 이런 품목의 물가 상승은 특히 서민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다. 올해 설 연휴를 맞아 장을 보러 나온 시민들 또한 물가 상승으로 인한 생활고를 호소했다.
경기도에 거주하는 50대 주부 A씨는 "원래 명절이 되면 고기나 채솟값이 오르긴 하지만, 올해는 이전보다 훨씬 많이 오른 느낌"이라며 "돼지고기는 금값이 됐고, 쇠고기는 아예 엄두도 낼 수 없을 것 같다"라고 토로했다.
프리랜서 B씨(28)는 "자취 중에 생활비를 아끼려고 외식보다는 직접 식자재를 구매해서 요리해 먹고 있는데, 작년 말부터 확실히 물가가 오른 게 느껴진다"라며 "그렇다고 밥값을 줄이고 살 수는 없으니 고심이 크다. 내 지갑만 얇아지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20대 대학생 C씨는 "편의점만 가도 즐겨 찾던 도시락, 커피 등 가격이 못해도 200~300원은 올랐다"라며 "평소 2000~3000원 하던 것들이 갑자기 10%씩 가격이 뛴 거나 다름없다. 대학생 입장에서 싼 값에 끼니를 해결할 수 있어 찾던 음식들이 이제는 부담이 될 지경"라고 했다.
식료품 가격의 변동성이 커지다 보니, 음식을 투자 수단으로 삼는 이들이 등장하는 '웃픈'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지난 20일 미 금융 매체 '블룸버그' 등에 따르면, 미국의 자산운용사 '디렉시온'은 최근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이른바 '블랙퍼스트(breakfast·아침식사) ETF' 승인을 신청했다.
블랙퍼스트 ETF는 원두, 오렌지주스, 밀, 돼지고기의 선물 가격을 추종하는 투자 상품이다. 즉, 미국인들의 아침 밥상에 주로 올라오는 커피와 주스, 토스트, 베이컨 등에 투자해 수익을 노리는 셈이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설 연휴 사이 물가 안정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26일 오후 경기도 부천 한 시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설 민생안정대책을 발표했다"라고 밝혔다.
정부는 지난 6일부터 돼지고기, 배추, 무, 소고기 등 설 연휴 주요 성수품을 역대 최고 수준인 20만4000톤(t) 공급하고 있다. 이와 관련, 홍 부총리는 "16대 성수품과 쌀 등 17개 품목 중 15개 품목의 가격이 하락하고 있다. 통계청 성수품 일일물가조사지수도 조사 시작일인 10일 대비 1.1% 하락하는 등 점차 안정세로 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남은 기간에도 적극적으로 출하 물량을 확대하겠다"라며 "생활 물가가 안정된 흐름으로 전환되도록 노력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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