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유인호 기자, 조강욱 기자] 정몽규 HDC현대산업개발 회장이 아시아나항공 인수 여부의 기로에 섰다. 아시아나항공 채권자인 산업은행의 이동걸 회장이 전날 정 회장과의 회동에서 HDC현산의 인수자금 부담을 덜어주는 안을 제안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결국 공이 정 회장 측으로 넘어갔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업계에서는 산은의 제안을 사실상 최후통첩 성격이 강한 만큼 정 회장이 기존의 재실사 입장을 고집한다면 HDC현산의 아시아나항공 인수는 무산될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27일 산은에 따르면 이 회장은 전날 오후 서울 모처에서 정 회장을 만나 한시간 정도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둘러싼 굵직한 문제들을 논의했다. 이 회장은 정 회장에게 "재협의를 해보자"며 "원하는 것을 말해달라"고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이 말한 재협의란 인수가격을 다시 따져보자는 것으로 해석된다. 다만 이날 회동에서 이 회장이 구체적인 금액을 거론하진 않았다는 게 산은측 설명이다. 산은 관계자는 "아시아나항공 인수ㆍ합병의 원만한 종결을 위해 현산 측과 인수조건에 대한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논의했다"면서 "모든 가능성이라는 말 자체가 딜을 위해 많은 대화를 나눴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구체적인 조건이 대화 테이블에 나오지 않았지만 '모든' 조건을 놓고 HDC현산과 논의하겠다고 거론한 것은 채권단이 기존 인수조건을 바꿀 수 있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현산이 금호산업과 지난해 12월 17일 맺은 주식매매계약(SPA)은 현산이 금호산업 보유 아시아나항공 지분 30.77%를 3229억원에 매입한 뒤, 2조1771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통해 신규 자금을 투입하는 내용을 담았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하면서 항공업황이 크게 악화했고, 현 시점에서 당시 SPA 조건을 돌아봤을 땐 아시아나항공이 고평가된 셈이다.
시장에서는 산은이 아시아나항공 인수가격을 최대 1조원가량 깎아주는 내용의 공동투자를 제안했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채권단이 현산과 함께 각각 최대 1조5000억원을 투입해 총 3조원을 아시아나 경영 정상화에 투입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산은이 이미 지원한 영구채 등 8000억원에 이어 추가로 7000억원을 더 지원해 총 1조5000억원 가량을 자본으로 확충해주는 안이다. 또 영구채 8000억원을 주식으로 전환하지 않는 방안도 거론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경영환경이 바뀐 만큼 인수가격이 변경돼야 한다는 현산 측 주장을 수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 회장의 공동투자 제안은 결과적으로 HDC현산이 당초 계약금액인 2조5000억원보다 1조원가량 적은 1조5000억원으로 아시아나를 인수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제 정 회장이 선택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다. 그간 HDC현산의 태도를 볼 때 산은의 재협의 카드를 무시하고 12주간 재실사 요청을 해달라고 할 가능성이 높다. 더구나 산은의 공동 투자 제안의 경우 아시아나항공 인수 가격 자체를 낮추는 것은 아니어서 HDC현산 측이 이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낮다. 이럴 경우 산은은 HDC현산과의 딜을 종료하고, 출자 전환을 통해 채권단이 아시아나항공 최대주주에 올라 구조조정를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 회장이 재협상에 나선다고 하더라도 난관은 남아있다. 여전히 아시아나항공 인수가격을 놓고 장기간 재실사 필요성이 있다고 보고 있는 만큼 향후 재실사 이후 인수를 취소할 가능성도 있다.
산은 관계자는 "어떠한 제안에도 협의할 의사가 있다는 의견을 전달한 만큼 이에 대한 현산 측의 답변을 기다릴 것"이라면서 "이후 일정은 답변 내용에 따라 금호산업 등 매각주체와 협의해 진행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유인호 기자 sinryu007@asiae.co.kr
조강욱 기자 jomarok@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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