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정두환 건설부동산부장] "유휴 공공부지에 주택을 지어 싼값으로 청년ㆍ노인 등 다양한 계층에 공급하겠다." 2013년 출범한 박근혜 정부가 부동산 정책의 핵심으로 내놓은 '행복주택' 이야기다. 당시 초대 국토교통부 수장이던 서승환 전 장관은 이 중에서도 '철길 위 주택'에 공을 들였다. 서울 곳곳에 놓인 지상 철도 구간에 건물을 지으면 땅값이 들지 않으니 효율적인 주택 공급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논리였다.
철길 위 주택은 불과 몇 개월 만에 없던 일이 됐다. 검증 과정에서 철로에서 발생하는 소음과 진동을 해결하려면 엄청난 비용이 발생해 실익이 없다는 결론이 나와서다. 당시 기자와 만난 업계 관계자는 "다양한 전문가의 견해에 조금만 귀를 기울였다면 철길 위 주택 구상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며 "학자 출신 장관이다 보니 긍정적 측면만 본 것 같다"고 말했다.
관가에서는 정치인 출신 장관에 대한 평가가 후한 편이다. 힘 있는 실세 장관인 만큼 해당 부처의 정책에도 힘이 실리기 때문이다.반면 학계나 업계 등 이른바 전문가 출신 장관에 대한 평가는 의외로 박하다. 정책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 너무 확고하다 보니 반대 의견에 귀를 닫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실제로 참여정부 당시 모 부처의 장관은 내로라하는 업계 최고경영자(CEO) 출신으로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았지만 정작 내부에서는 직원들의 의견을 무시한 독단적인 밀어붙이기식 정책 추진으로 임기 내내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영국의 정치철학자 이사야 벌린은 세상사를 하나의 개념이나 이론으로 설명하고 이해하려는 사람들을 '고슴도치'에 비유했다. 다른 생각은 무시하고 오로지 자신만 옳다고 믿는 '확증편향'에 빠진 사람은 잔뜩 웅크린 채 가시를 곤두세운 고슴도치의 모습과 같다는 것이다. 심리학자들은 특히 전문가들일수록 오히려 일반인보다 강한 확증편향에 빠지기 쉽다고 경계한다. 오랜 기간 수많은 연구와 경험을 통해 축적한 자신의 견해가 우월하다고 믿고 반대 의견에 귀를 닫으면서 더 확고한 신념에 빠지는 악순환에 빠진다는 것이다.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가 우여곡절 끝에 인사청문회의 벽을 넘었다. 과거 서울도시주택공사(SH공사) 사장 재직 당시의 부적절한 발언에 발목잡혔지만 여당은 28일 오전 청문보고서 채택을 강행했다. 학계와 연구소, 주요 공기업 사장을 거친 풍부한 경험이 있는 그가 잇따른 실패로 난관에 부딪힌 부동산 정책을 풀어나갈 적임자라는 이유에서다.
그럼에도 시장에서는 전문가 출신 장관 후보자에 대한 기대보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더 크다.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엿보인 그의 확증편향 탓이다. 특히 현 정부 주택 정책에 대한 그의 평가는 시장의 인식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특히 "주택 정책의 실패를 부동산 가격만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는 변 후보자의 생각은 국민 정서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불과 1년 전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과의 대화를 통해 "부동산만큼은 자신 있다. 지금 방법으로 (가격을) 못 잡으면 더 강력한 여러 방안을 강구해서 반드시 잡겠다"고 밝혔다. 집값 안정이 부동산 정책의 핵심임을 국민 앞에 공개적으로 천명한 것이다. 그런데 결과는 어떤가. 이미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뛴 집값만으로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실패다. 그럼에도 "가격만으로 평가할 수 없다"니, 그의 발언은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변 후보자가 주택ㆍ도시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전문가임은 명확하다. 그렇기에 시장은 더 우려한다. 기존 부동산 정책 실패에 대한 인정과 반성이 전제되지 않는 한 수장이 바뀐다 한들 달라질 것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정두환 부국장 겸 건설부동산부장 dhjung6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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