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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정현진 기자]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은행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9개월 만에 배당금 지급을 일부 재개할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백신 보급이 시작된 이후 경기 회복 기대감이 커지자 유럽중앙은행(ECB) 감독위원회가 배당금 지급을 허용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이다. 다만 대출 부실화 등의 우려가 여전한 만큼 지급 조건은 더 엄격하게 유지할 방침이다.
13일(현지시간) 주요 외신에 따르면 ECB 감독위는 14일 회의를 열고 유로존 내 117개 대형 은행 가운데 건전성이 확보된 일부에 대해 배당금 지급을 허용하는 내용의 '배당금 지급 요건'을 발표한다. ECB 감독위는 지난 3월 유럽에서 코로나19 확산 속도가 급격히 빨라지자 배당금 지급과 주식 환매를 모두 금지하는 조처를 내린 바 있다. 이는 유로존 내 은행권이 확보해둔 300억유로(약 39조7000억원)의 자본유출을 막기 위한 의도였다.
ECB가 은행의 배당을 다시 허용하는 쪽으로 입장을 바꾼 것은 은행권의 요구가 거셌기 때문이다. 은행들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당시보다 많은 자금을 확보해둬 안전판을 충분히 마련했다는 입장인데, 배당금 지급 금지가 오히려 은행권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을 줄여 새로운 자금이 들어오는 것을 막는다고 주장했다. 유로존 벤치마크인 유로스톡스50지수는 연초 대비 8%가량 하락했으나 유로스톡스은행지수는 같은 기간 25% 이상의 낙폭을 기록했다.
유럽권의 한 시중은행 회장은 "은행이 특권을 가진 분야처럼 보이지만 주가를 보면 정확히 반대"라면서 불만을 토로했다. 이에 따라 은행권은 내년 초 배당금 지급을 재개할 수 있도록 허락해달라며 그동안 규제 당국을 상대로 로비를 펼쳐왔다.

유로존이 아닌 유럽 국가에서 은행의 배당이 다시 허용되기 시작한 점도 ECB의 판단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스위스 UBS그룹과 크레디스위스는 자국 규제 당국의 동의를 받아 내년에 배당금 지급을 실시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다만 ECB의 허용 폭은 크지 않을 전망이다. 소식통들은 ECB가 9개월 만에 배당금 지급 금지 조치를 풀어주는 대신 지급 규정을 더욱 강화해 내놓을 준비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타격으로 예상되는 손실을 흡수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자본을 쌓았을 때만 배당금 지급이 가능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영국중앙은행(BOE)이 지난주 발표한 은행의 과거 2년간 누적 수익의 25%나 위험가중자산의 0.2% 수준 내에서만 배당금 지급을 가능하도록 한 규정을 참고할 것으로 보인다. ECB가 BOE의 규정을 '가드레일' 삼아 그보다 낮게 주주 배당 상한을 결정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한 소식통은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는 BOE가 제한적으로 특정 요건을 갖춘 일부 은행에만 배당금 지급을 허가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로존 은행들은 수익의 10~20% 정도만 배당을 할 수 있도록 제한될 것으로 보인다고 다른 소식통은 밝혔다.
외신들은 ECB 감독위 내에서 배당금 지급 금지 조처의 연장에 대해 갈등이 일었다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각국 정부가 코로나19에 따른 타격을 막기 위해 실시해온 경기 부양책을 줄이면 은행의 채무불이행(디폴트)이 갑작스럽게 확대될 것을 우려해 자금을 확보해놓는 차원에서 배당금 지급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오스트리아 감독 당국의 수장인 헬무트 에틀 ECB 감독위원은 배당금 지급과 관련해 은행이 "매우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말하기도 했다.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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