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김효진 기자] "회장 자리가 '경력 징검다리' 쯤으로 전락하는 느낌입니다" 차기 은행연합회장 선임과 관련해 시중은행 관계자가 내놓은 관전평이다. 마치 전통처럼 자리잡은 '관(官)피아', '나눠먹기', '낙하산'의 그림자가 여전한 가운데 '정(政)피아' 논란까지 보태져 한층 짙어진 혼란상을 꼬집은 것이다.
은행연합회장 후보는 김광수 NH농협금융그룹 회장, 이정환 주택금융공사 사장(이상 관료 출신), 김병호 전 하나금융그룹 부회장, 민병덕 전 KB국민은행장, 신상훈 전 신한금융그룹 사장, 이대훈 전 NH농협은행장(이상 은행 출신), 민병두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7명으로 추려졌다. 관료ㆍ정치권 출신 3명과 은행 출신 4명의 구도다.
은행권에선 관료나 정치권 출신이 더 유리하지 않겠느냐는 시각이 우세하다. 은행권 관계자는 "정권의 그립이 워낙 강력해서 은행장들이 이리저리 눈치를 많이 살피는 분위기"라고 귀띔했다. 이정환 주금공 사장이 뒤늦게 유력 후보로 조명받는 것도 이런 기류와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이 사장은 문재인 대통령과의 지연(地緣)으로 주목도가 높아진 '부금회' 멤버로 금융권 안팎에서 거명된다.
민병두 전 의원을 두고서도 뒷말이 무성하다.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는 "은행이나 금융현장 경험이 전무한 민 전 의원이 도대체 왜 은행연합회를 이끌어야 하는지 전혀 모르겠다"면서 "국회 정무위원장으로 금융에 관여한 것을 금융업력으로 인정하긴 어렵지 않겠느냐"고 지적했다.
은행연합회는 은행들의 회비로 운영되는 비영리 사단법인으로 은행권을 대변하는 기관이다. 역대 은행연합회장 가운데 정치인은 한 명도 없었다. 민 전 의원은 전(前) 정부 시절 정권의 보은인사 관행을 앞장서 비판했다. 은행권에선 '관치금융을 넘어 본격 정치금융의 시대로'라는 자조 섞인 표어(?)가 우스개처럼 나돈다. 회장 선임과 관련한 정치권발(發) '메모'가 다양한 루트로 은행권에 답지하고 있다는 얘기도 끊임없이 들려온다.
은행연합회장 뿐이겠는가. 차기 생명보험협회장으로는 한나라당 3선 의원 출신의 정희수 보험연수원장이 유력하게 거명된다. 손해보험협회가 정지원 전 한국거래소 이사장을 차기 회장으로 선출하고 SGI서울보증 이사회가 유광열 전 금융감독원 수석부원장을 대표이사로 내정한 것을 두고서도 '관피아 나눠먹기' 논란이 불거졌다.
금융공기업 낙하산 논란도 여전하다. 김진표 의원 보좌관을 지낸 이한규 전 민주당 정책위 정책실장이 예금보험공사 감사로 선임된 것이 대표적이다. 기관장에 이은 '넘버2' 격으로 기관 운영을 감시해야하는 자리에 대놓고 정치색을 입혀버린 모양새다.
금융권 관계자는 "여기저기에서 엉뚱한 이들이 기웃거리거나 들어앉는 것을 보면 금융권에 무슨 큰 장(場)이라도 선 것 같다"고 비꼬았다. 금융 선진화를 가로막는 해묵은 관행을 걷어내는 일은 이처럼 또 한 번 뒷걸음질하고 있다.
김효진 기자 hjn252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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