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김은별 기자] 전 세계시장이 미국 달러화 약세에 베팅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백신이 개발됐다는 소식에도, 코로나19 확산이 심각하다는 소식에도 시장은 갖가지 이유를 대며 달러 약세 기조로 향하고 있다. 역사적 사례로 봤을 때 강(强)달러 현상이 나타날 법한 재료도 먹히지 않는 모습이다. 달러 약세 흐름에 위안화와 원화는 상대적 강세를 보이며 원ㆍ달러 환율이 연일 하락 중이다. 수출이 국내총생산(GDP)의 40%에 달하는 우리 경제 구조상 원ㆍ달러 환율 급락은 반갑지 않은 소식이다. 제조업의 수출 경쟁력 약화는 물론 기업 채산성 악화와 같은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어서다. 그러나 코로나19 만큼이나 예측 불허인 달러 향방, 환율 조작국 지정 우려 때문에 외환당국이 섣불리 개입하기도 어려운 노릇이다.
'美민주당=강달러' 공식 깨지나17일(현지시간) 마켓워치에 따르면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미 달러화의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0.22% 하락한 92.44를 기록했다. 코로나19 확산 초기인 지난 3월15일 102.82까지 치솟았던 달러인덱스는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막대한 자금을 풀자 하락했다.
달러 약세 기조는 이달 초 치러진 미 대선에서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승리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후 더 가팔라졌다. 지난 2일 94.13을 기록한 달러인덱스는 보름여 만에 1.8%나 하락했다. 바이든 후보가 정권을 잡으면 대규모 경기 부양책이 통과되고 시장에 달러가 더 풀리며 달러 가치는 하락할 것이란 해석이 뒤따랐다. 따라서 바이든 시대엔 '민주당=강달러'라는 공식이 당분간 맞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1980년도부터 달러인덱스와 재임 대통령, 집권당을 살펴보면 통상 공화당은 약달러, 민주당은 강달러를 선호했었다. 빌 클린턴 전 미 대통령, 버락 오바마 전 미 대통령이 집권 당시 모두 달러 인덱스가 20%가량 올랐었다.
경기 부양으로 美국채금리 올라도… 달러는 약세통상 미국의 국채금리가 오르면 달러화 가치도 강세를 보인다. 미국의 채권금리 상승을 노린 글로벌 투자자들의 달러 수요가 크게 늘어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의 경기 부양책 통과→경기 회복 기대→물가 상승→국채금리 상승(국채가격 하락)→달러 강세' 흐름이 나타나곤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집권 초기 경기 부양책이 통과되면 이와 같은 현상이 나타났었다.
그러나 올해엔 경기 부양책 소식만 들리면 오히려 달러가 약세를 보이고 있다. 바이든 후보의 당선 소식이 달러 약세를 부추기고 있는 것도 부양책 통과 가능성과 연관이 있다. 오창섭 현대차증권 애널리스트는 "내년에도 미 대통령이 취임한 후 경기 부양책 이슈는 달러화 약세를 더 강화할 수 있는 요인"이라고 전망했다. 한 외환시장 관계자는 "경기 부양책이 통과되면 국채 발행이 늘며 금리는 상승할 텐데, 오히려 달러는 더 떨어지고 있다"며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백신 개발 소식도 위험자산 베팅 부추겨코로나19 백신 개발 소식도 오히려 달러 약세를 부추기는 재료로 사용되고 있다. 지난 9일 미국 제약회사 화이자가 개발 중인 코로나19 백신 효과가 90% 이상이라고 밝히자 달러인덱스는 약 이틀간 강세를 보였다. 백신이 조기에 보급되면 미 경기 개선 속도가 빨라지고, 기준금리 인상 시기도 앞당겨질 수 있다는 전통적 생각에 기반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내 달러는 다시 하락 추세를 탔다. 시장은 이번엔 '경기가 개선되면 위험자산 쏠림 현상이 나타난다'라는 이유를 댔다. 시티그룹은 백신 호재로 내년 미 달러가 20% 급락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유와 상관없이 달러 약세가 지속되자 우리 외환당국도 난감한 상황이다. 세계적 기조에 따라 움직이는 원ㆍ달러 환율 하락에 섣불리 개입하기도 어렵다. 한 외환당국 관계자는 "해외시장에서 한국의 성장률 개선세가 1위인데 원화 가치가 오르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냐고 물어오는데 할 말이 없었다"고 전했다.
그렇다고 외환당국이 손을 놓고 있을 수도 없다. 시장에선 대기업은 원ㆍ달러 환율 1000원대 정도까지는 버틸 여력이 있다고 보고 있지만, 중소기업들은 1100원 아래로 환율이 떨어지면 충격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은행과 기획재정부 등 외환당국은 '달러 약세 기조는 용인하되, 급격한 변동성이 있을 때엔 대응한다'라는 입장이다.
김은별 기자 silversta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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