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김은별 기자] 이토 히로부미의 친필 글씨가 새겨진 한국은행 화폐박물관(옛 조선은행 본점) 머릿돌의 운명을 결정할 국민 여론조사가 진행된다. 해방 이후 일제 잔재를 처리하는 방식을 놓고 논란이 큰 만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뜻에 따른 것이다. 다만 문화재의 가치와 보호ㆍ활용여부 등에 대해 판단해야 할 전문가 집단이 민감한 문제에 대한 결정을 미루고 여론에 기대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는 비판도 피하긴 어려워 보인다.
17일 한은과 문화재청 등에 따르면, 문화재청은 한은 머릿돌 처리방식에 대한 국민 여론조사를 연내에 실시하기로 결정하고 준비 작업을 진행 중이다. 여론조사는 약 두 달간 진행될 것으로 예상돼 머릿돌 처리방식은 내년 초 최종 결론을 내릴 수 있을 전망이다.
당초 한은과 문화재청은 이달 중 머릿돌 처리방식을 결정한다는 목표로 논의를 해 왔다. 문화재청은 한은의 의견을 받아 오는 24일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머릿돌 관리방안을 마련할 계획이었다. 한은도 지난 13일 중구청을 통해 '문화재 현상변경' 신청을 했다.
한은은 소유자로서 의견은 낼 수 있지만, 처리방법은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문화재청이 최종 결정하게 된다. 한은이 낸 의견은 크게 ▲머릿돌을 없애는 방식 ▲머릿돌은 그대로 두되 안내문을 설치하는 방식 ▲머릿돌에서 글씨만 지워내는 방식 등이었다. 한은 관계자는 "200명에 달하는 문화재위원회 전문가들이 노하우를 살려 판단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사안에 대한 첨예한 대립이 있는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에 한은도 복수의 의견을 낸 것으로 판단했고, 여론조사가 필요하다고 보게 됐다"고 전했다.
논란이 된 서울 중구 한은 본관(사적 제280호) 머릿돌의 '정초(定礎)'라는 글씨는 최근 문화재청 조사 결과 조선 총독부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의 글씨로 확인됐다. 일각에선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남겨둬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일부 시민단체는 당장 없애버려야 한다며 '방망이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문화재청이 문화재 처리 방식을 두고 국민 여론조사까지 동원하는 것은 흔한 일은 아니다. 지난 2011년 광화문 현판 글씨를 한글로 바꾸는 문제를 두고 여론조사가 실시된 바 있다. 일반 국민들은 한글(58.7%)을 한자(41.3%)보다 선호한다고 응답했다. 그러나 여론조사가 곧 최종 결론으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당시 여론조사 이후 이어진 공청회와 토론회에서 한자를 선호하는 의견이 더 우세했고, 결국 문화재청은 '한자'가 아닌 '사진에 있는대로 복원하는 것'을 택했다.
김은별 기자 silversta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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