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5.12.17 10:02최종 업데이트 25.12.17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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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한의대 통·폐합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칼럼] 박인숙 울산의대 명예교수·전 국회의원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지난 수 십 년 동안 의료계에서 가장 자주 논란이 되어왔던 주제는 한의사들의 의사영역 침범과 관련된 이슈였다. 이를 해결하고자 오래 전부터 의사협회에 의료일원회 위원회, 지금은 이름이 바뀌어서 한방특별위원회가 있다. 나 자신도 이런 위원회에 관여해 왔지만 지금 되돌아보면 백약이 무효이고 앞으로의 전망도 좋지 않다.
  
과거 몇 차례 의료일원화의 기회가 있었으나 양측이 합의하지 못해 번번이 무산됐고 지금은 실타래처럼 꼬여버린 상황에 이르렀다. 한의사들이 의사들의 의료행위와 현대의료기기(정확한 명칭은 의과의료기기)를 사용하려는 시도가 날로 집요해지고 있고 급기야는 한의사들의 일부 현대의료기기 사용이 합법이라는 대법원판결까지 나오는 지경에 이르렀다.

일본이나 중국과 달리 우리나라에서의 한의사들의 의사영역 침범은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안타까운 일로 국민이 의사와 한의사 사이에서 우왕좌왕하면서 ‘몸 버리고 돈 버리며’ 개인의료비 낭비, 건보재정 낭비를 초래하는 이러한 재앙적 상황은 이제 그만 끝내야 한다.
  
지난 수십 년 간 이런 갈등을 방치하며 국민 피해를 키운 것은 모든 정부의 직무유기라고 할 수 있다. 전에는 둑에 구멍이 몇 개 뚫려 있었다면 지금은 둑이 완전히 무너져서 모든 것이 물에 잠긴 상태이다. 더러운 물, 깨끗한 물을 구분할 수 없는 혼란한 현실이다.
  
한방은 이미 국민 삶에 깊이 스며들어 있다.

의사들의 노력이 무색하게도 한방은 이미 국민 삶에 넓고 깊게 스며들어 있다. 광고 물량 공세도 엄청나서 주말마다 주요 일간지 한 두 면을 통째로 각종 한방 광고가 차지하고 있다. 폐질환, 축농증, 디스크, 관절염, 비만 등 거의 모든 흔한 질환을 한약으로 완쾌가 가능하다는 허위 광고가 버젓이 언론과 온라인에 넘친다. 이런 주장대로라면 우리나라가 노벨의학상을 이미 수 십 개 받았을 것이고 대박 신약도 수십 개 터뜨렸을 것이나 그런 소식은 한 번도 없었다.

국민의 한약에 대한 우호적인 정서에 편승해서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한방 지원사업, 한방 정책들도 날로 진화하고 있다. 한방에 대한 건보급여를 지급하는 질환 종류의 확대, 급여 액수와 급여 기간 확대, 나아가서 저출산 대책이라고 내어놓은 난임 치료에 국가와 지자체가 공영방송 광고는 물론 보조금까지 주면서 한약을 권장하고 있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대로 자연임신율보다도 못한 참담한 수준이다. 와인이나 커피 한잔 마시는 것도 조심스러워하는 모유 수유하는 아기 엄마들에게 보약이라며 한약을 먹으라고 국민 세금으로 바우처를 주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대한민국 뿐이다.
  
이 뿐 아니라 건보식품, 화장품에도 한약을 추가해야 더 잘 팔린다고 하며 심지어 암을 예방한다는 한방 음식 광고도 많다. 신문과 방송에서 영양 강의는 입담 좋은 한의사들의 독무대가 된지 오래이다. 자동차 사고 환자들로 한방 병원들이 성업 중이고 요즈음 빅5 병원들 앞에서 새로이 눈에 띄는 ‘암 전문’ 한방병원들이 또 하나의 블루오션인 것 같다. 한방병원 봉고차가 ‘항암치료, ’방사선 케어‘ 라는 광고 문구를 버젓이 달고 돌아다니기도 한다.
  
한의사들의 홍보전략이 더욱 공격적으로 변하면서 어린이들을 위한 한방체험 여름캠프, 한방 약초 축제, 허준 축제가 날로 번창하고 있고, 지자체 평생교육프로그램에 포함된 한방건강관리 강의는 조기 마감될 정도로 한방에 대한 관심이 많다. 스크린 골프장에서도 휴식 시간마다 한방병원 광고가 스크린을 가득 채우며 몸 구석구석 아픈 곳이 많은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다.
  
해외에서도 한인들 사이에 한방의 인기가 높은데 최근 미국 방문 중 들른 한인 마트에서 본 신문에도 한방 광고가 많고 다들 성업 중이다. 의사 지인들도 통증 등 각종 증상에 한약을 복용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게다가 지금 세계적인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케데헌’ 애니메이션 영화에 등장하는 한의원 장면 덕분에 우리나라 한의원과 한의사의 인기가 치솟으며 외국인들의 ‘케데헌 한국 순례’ 방문지에 한의원이 포함될 정도이다.
  
국민은 물론 대부분 의사들조차 알지 못하는 놀라운 사실은 1431년부터 1901년 사이에 발간된 10개 고서(1610년 발간된 동의보감 포함)가 임상시험 면제라는 법적 특혜를 받으며 여전히 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고서들은 마치 무슨 성역이라도 된 듯 아무도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한방이 우리 국민의 삶에 넓고 깊게 파고들면서 호감도도 자연스럽게 높아진 것 같다. 그래서인지 치료 결과가 좋지 않아도 한의사를 고발하는 환자는 매우 드물다. 

한방의료 곳곳에 현대의학이 이미 깊이 침투해 있다.

의사들이 한방병원에 취직하면서 협진이라는 명분 하에 한방병원에서도 온갖 현대의학의 검사, 시술이 가능하게 됐다. 특히 최근에는 저명한 의대 교수나 병원장이 사직 후 한방병원으로 이직하는 ‘충격적’인 일도 일어나고 있다.

약 10년 전 내가 국회의원이었을때 한의사들의 주요 민원은 혈액 검사와 X-선 사진을 찍게 해달라는 것이었지만 그 후 한방병원에서 의사들의 고용이 가능해지면서 이제 이런 민원은 거의 사라졌다. 당시 민주당 의원들은 국립대 병원들에 양방 협진 클리닉을 만들라고 주장했는데 이것도 이제 해결됐다.
  
한의사들이 간단한 혈액 검사는 물론 X-레이 사진, 초음파검사, 뇌파검사, 골다공증 검사까지 하겠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레이저치료 등 피부관리, 유방 확대술 등 성형수술, 관절주사, 줄기세포 주사까지도 준다고 선전한다. 만성 폐질환, 축농증, 비염, 디스크, 관절염 같이 흔한 질환은 물론 심지어는 난임, 조현병, 뇌전증, 자폐, ADHD, 틱, 소아 희귀질환, 색맹, 바이러스 감염도 한약으로 완치시킨다며 허위 광고, 사실상 사기 광고를 마구 뿌리고 있다. 
  
이제는 연수강좌를 통해 수술도 배운다고 한다. 전문의라는 명칭도 마구 쓴다. 보이고 들리는 모든 매체를 통해 하루 종일 사방에 무차별적으로 광고와 광고성 기사들을 뿌리다 보니 국민도 이제는 한의학이 병 치료의 일부로 당연히 받아들이는 것 같다.
  
한의사들이 의사들의 영역을 침범하면서 내세우는 명분으로 자기네들도 현대의학을 배우고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한의사들은 한의대에서, 그리고 연수강좌를 통해 현대의학을 배우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한의사면허 국시에 의학관련 시험문제도 출제되는데 그것이 증거라고 우긴다. 그 배경을 살펴보자. 한방 교과서들을 보면 의학 교과서를 베낀 부분이 아주 많다. 그림, 도표도 허락없이 표절한 경우도 있다. 내가 쓴 선천성심장병의 모식도들이 버젓이 한방소아과 교과서에 실려있다(물론 나의 허가없이). 홍창의 선생님의 '소아과학' 교과서 중 심전도 여러 개도 그대로 표절됐다. 

의사들이 직접 강의하기도 하는 한의사 대상 연수강좌를 통해서 자신들도 의학, 의료기술을 배우고 있고 나아가서 연구도 하고 논문도 쓴다고 주장한다. 실제 연간 천 억원 대의 국가 연구비가 한방 연구에 투입되고 있지만 연구 제안서나 논문의 질 평가는 판단이 어려운 정도로 황당한 경우가 많다.
  
이제는 이런 소모적이고 승산없는 논쟁은 끝내야 한다.

의사들은 한의사들과의 이러한 투쟁이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국민은 이를 기득권을 가진 의사들의 ‘밥그릇 싸움’이라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사실 국민은 의사, 한의사 간 갈등에 관심이 없다. 국민 대부분은 한의사가 X-레이 사진을 찍든, 피검사, 초음파, 뇌파검사를 하든 개의치 않는다. 그저 싸고 편하게 치료받고 자신들을 괴롭히는 증상만 없어진다면 누구로부터 치료를 받는지는 상관하지 않는다.
  
나 혼자 이러한 상황을 고민하던 중 다음과 같은 비유가 머리에 떠올랐다. 전쟁 중 최전방 군인들은 목숨 걸고 적군과 싸우고 있는데, 정작 후방의 국민들은 적에게 항복해 버리는 상황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수 십 년 간 의사들은 한방, 한약의 부작용으로부터 국민을 지키려는 노력을 지속해 왔는데 정작 국민들로 부터 철저히 외면받는다면 이제는 의사들이 투쟁 전략을 바꿔야 한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라는 말이 있듯이 국민 스스로 자신을 돌보지 않는다면 의사들이 해줄 수 있는 일은 매우 제한적이다. 우리나라 만의 독특한 현상이라고 생각되는데 우리 국민 대부분이 의사들에 대해 가지고 있는 감성은 비호감이다. 여기에 더해 2000명 의대증원으로 촉발된 의료붕괴 사태, 그리고 언론의 악의적인 부추김 때문에 의사들에 대한 적개심은 더 커졌다.
  
어쨌든 이제는 한방의료를 완전히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명분은 있으나 승산은 없는 이 싸움을 그만 멈추고 현실적인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13만명 의사들은 한의사 2만5000명을 이기기 어렵다.

이 싸움이 승산이 없는 또 다른 이유는 투쟁에 임하는 의사와 한의사의 태도에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한의사들은 진료영역을 넓히려는 뚜렷한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강력한 구심점을 중심으로 뭉쳐서 한 목소리를 낸다. 게다가 더 중요한 것은 복지부, 식약처 등 정부 부처의 중요한 요소마다 한의사 또는 한의사 옹호 세력을 오래전부터 대못처럼 든든하게 박아놓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의사들은 뭉치지도 못하고 각자 다른 목소리를 내거나 아예 관심이 없거나 알고도 침묵한다. 강한 리더십이나 구심점도 없다. 심지어 극소수 의사들은 한의사 연수프로그램에서 강의를 해주거나, 나아가서 한방병원에 취직해서 그들이 하고싶어 하는 검사 행위들을 가능하게 해주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정부 부처나 국회 안에 의사 우호 세력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심지어 정부 조직 내 의사 공무원, 또는 의사 국회의원들 조차도 의사들의 주장에 모두 동조하지는 않는다. 그러니 의사들이 무기력할 수밖에 없다. 한의사들의 비과학적인 사기성 과대광고에 대하여 정부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 아닌가하는 합리적인 의심이 든다. 

끝으로 한 가지 더 지적할 것이 있다. 의사면허와 한의사면허를 모두 가진 복수 의사면허 소지자들 대부분은 한방의료를 적극 옹호한다는 점이다. 깊이 생각해 볼 대목이다. 
  
의대와 한의대의 통·폐합, 그리고 궁극적으로 단일 의사면허제도 도입만이 유일한 해결방법이다. 

나는 2011년 5월 '지금이 의대,한의대 통,폐합의 적기適期다'라는 글을 의협신문에 기고했다. 무려 14년 전이다. 그런데 그 이후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고 상황이 더 나빠졌다. 그래서 지금 그때와 똑같은 글을 쓰면서 자괴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의료이원화와 한의사들의 의사영역 침범으로 인해 의료서비스 비용 증가와 건보 지출 증가, 질병 치료의 난맥상, 한약의 부작용 등 때문에 결과적으로 국민이 ‘몸 버리고 돈 버리는’ 불행한 상황을 이제라도 종결시킬 수 있는 마지막 카드는 의대, 한의대 통폐합이라는 극단적인 조치이다. 
  
40개 의대와 한의대(의전원 포함) 12개를 통,폐합해 40개 의대로 만들고 지금의 한의대 입학정원 725명을 의대 정원으로 가져올 것을 제안한다. 그리고 통합된 의대 입학 후 새로운 교육과정을 거친 졸업생들이 졸업하는 시점에 이들 졸업생들부터 의사, 한의사 면허를 통합한 한 개의 의사면허를 주자. 
  
의대, 한의대의 통,폐합과 단일 의사면허제도는 의료이원화로 인한 문제들의 심각함을 진작부터 알고 있던 많은 의사들이 비공식 자리에서 논의했다. 나도 19대 국회의원 시절 이를 추진하려 했으나 당시 추진동력 자체가 만들어지지 않아 포기했다.  당시 내가 직접 만나본 한의대 학생들은 대부분 의대, 한의대 통폐합을 쌍수들고 반겼다. 
  
의대, 한의대 통·폐합이 지금 반드시 필요한 이유들을 아래와 같이 정리해 본다. 

1. 국민은 더 이상 의사와 한의사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몸 버리고 돈 버리는’ 혼란한 상황을 겪지 않게 돼 의료의 질을 높이며 의료비 절감과 의료 서비스 낭비를 막을 수 있다.
2. 통합된 의대가 한약의 표준화, 산업화, 세계화, 그리고 연구와 신약 개발에 의대의 인적자원과 연구 인프라가 큰 기여를 할 것이고 그럼으로써 의학 발전에 총체적 도움이 될 것이다.
3. 상당수의 한의대 학생들은 기대에 못미치는 한의대 교육과정, 그리고 의학 교과서의 많은 부분을 베낀 한의대 교과서로 공부한 결과 어정쩡하고 불완전한 의학지식을 가지게 된다. 그 결과 자신들의 미래에 대하여 회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상당할 것으로 추측된다. 따라서 한의대 학생들이 높은 수준의 의학교육을 받으면서 본인은 물론 의학과 국가 발전에 기여할 기회가 될 수 있다. 
4. 통합의대에서 기존 의학교육 프로그램에 한의학 교육도 포함해 원한다면 졸업 후 선택과목으로 한방 소아과, 한방 부인과, 한방 재활 등 전문의 자격을 얻을 수 있게 한다. 
5. 의대, 한의대 통·폐합은 의사들도 원한다면 연수강좌를 통해 침, 한약, 한방 영양제 등 한방진료로의 영역을 넓힐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6. 의사들이 한약 관련 기초연구나 한약 신약 개발에 참여한다면 연구의 질 향상 뿐 아니라 의사들의 활동 범위도 넓어지며 개인 경쟁력 향상은 물론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계기도 될 수 있다. 그런 연구에서 대박 신약이 나올 가능성도 기대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극약처방’을 지금 시작하면 향후 10~20년동안은 큰 혼란이 예상되지만 그 후에는 결국 시간이 흐르면서 안정적인 의료일원화를 이룰 것이다. 지금으로써는 대단히 무리스런 제안이라고 보이지만 이제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지금 하지 않으면 국민과 국가가 입을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질 것이다. 

지금 받아들이기 어렵더라도 길게 보면 이 정책이 국민건강 증진은 물론 의료인 모두에게 유익할 것이고 나아가 국가 경쟁력 강화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당장 손해를 보더라도 모두가 희생정신, 양보심, 포용력, 인내심, 지혜를 최대한 발휘하여 의학교육 일원화, 단일의사면허, 의료일원화가 이뤄지고 그래서 우리나라가 더욱 발전하기를 기원한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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