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이지원 기자] 유럽연합(EU) 이사회와 의회가 핵심의약품법(Critical Medicines Act, CMA) 제정안에 잠정 합의하면서 유럽 의약품 조달 정책의 무게중심이 '최저 가격'에서 공급망 회복력과 역내 생산 역량 강화로 이동할 전망이다. 이에 따라 EU에 진출했거나 진출을 추진하는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은 자사 제품의 핵심의약품 목록 포함 여부와 향후 공공조달 기준 변화를 면밀히 분석해 대응할 필요성이 커졌다.
13일 한국바이오협회 바이오경제연구센터에 따르면 EU 이사회는 5월 12일 보도자료를 통해 유럽의회와 유럽 내 핵심의약품 공급 안정성 확보를 위한 핵심의약품법안에 잠정 합의했다고 밝혔다.
핵심의약품법은 항생제, 인슐린, 진통제 등 주요 의약품 부족 문제를 해소하고, 핵심의약품과 EU 공동 관심 의약품의 공급 안정성과 가용성을 높이기 위해 유럽집행위원회가 지난해 3월 초안을 발표했다.
이 법안은 핵심의약품 공급망을 다변화하고, EU 회원국 간 협력을 통해 조달을 용이하게 하며, EU 내 핵심의약품과 원료의 생산 역량을 강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번 잠정 합의안은 조만간 이사회와 의회의 공식 승인을 거쳐 시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같은 날 유럽의약품청(EMA)도 핵심의약품법 이행을 위해 EU 핵심의약품 목록에 포함된 200개 이상 제품을 대상으로 공급망 취약성 평가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합의안의 핵심은 공공조달 절차 변화다. 보고서에 따르면 발주처는 핵심의약품 공공조달에서 회복력 관련 요건(resilience-related requirements)을 의무적으로 적용해야 한다. 또한 핵심의약품과 활성 성분의 EU 내 생산을 장려해 비EU 국가 의존도를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에 발주처가 'EU 우선(EU preference)' 접근 방식을 적용할 수 있도록 유연성도 부여됐다. 그동안 의약품 입찰에서 '최저 가격'이 사실상 핵심 기준이었다면, 앞으로는 가격 외 공급 안정성과 생산 기반도 주요 평가 요소로 반영되는 것이다.
회원국 간 공동조달 문턱도 낮아진다. EU 이사회와 의회는 유럽집행위원회에 공동조달 요청을 제출해야 하는 회원국 수를 기존 9개국에서 5개국으로 줄이기로 합의했다. 이를 통해 핵심의약품과 공동 관심 의약품 조달에서 회원국 간 협력을 촉진하고 공동 영향력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비상 재고 확보 조치도 보완했다. 합의안은 비상 재고 요건이 투명해야 하며 연대와 비례 원칙을 준수해야 한다는 조항을 추가했다. 아울러 회원국 간 비상 재고 데이터 교환을 보장하고, 필요 시 핵심의약품의 자발적 재분배를 위한 기존 자발적 연대 메커니즘(VSM) 활용 방안도 명확히 했다.
법안 적용 범위는 희귀의약품까지 넓어졌다. 전략적 프로젝트와 공동조달을 포함한 특정 핵심 분야의 희귀의약품도 대상에 포함되며, 이는 공급 안정성 확보 정책이 일반 필수의약품을 넘어 희귀질환 치료 영역으로도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바이오협회는 "의약품과 그 활성성분의 EU 내 생산을 우선시해 중국, 인도, 미국 등 유럽 이외 국가에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것이라고 언급했다"며 "컨설팅 회사인 유라시아 그룹의 분석가는 올해 초 '유럽산 구매' 정책이 강화될 경우 기업의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미국과 EU 간의 무역 긴장을 악화시킬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고 보도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EU에 진출했거나 신규 진출을 추진하는 국내 기업들이 자사 제품이 EU 핵심의약품 목록에 포함되는지, 포함된다면 새 공공조달 기준이 자사에 유리한지 불리한지를 면밀히 분석해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