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5.09.24 08:09최종 업데이트 25.09.24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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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Err is Human” 지나치게 처벌 중심이라는 대통령의 발언

[칼럼] 안덕선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장·고려대 의대 명예교수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5일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열린 제1차 핵심 규제 합리화 전략회의에서 현재 우리 사회가 마주하고 있는 핵심 사안에 대해 의미심장하며 통찰력이 있는 발언으로 이목을 집중시켰다. 비록 보건의료인을 위한 자리는 아니었으나, 우리나라 필수 의료 붕괴의 주요 원인 중 하나인 ‘의료 형사 범죄화’ 문제와 직결되는 내용이어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이 대통령은 “대한민국에는 불필요하게 (기업 활동에 대한) 처벌 조항이 너무 많고, 정작 그 효과는 별로 없다”라고 언급했다. 대통령의 발언 내용을 놓고 보면 우리 사회 중대 사안의 하나인 필수 의료 붕괴와 의사에 대한 과잉 형사처벌 문제에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고 하겠다. 

“처벌 조항 많은데, 효과 없다 = 형사처벌로 의료가 좋아질 수 없다”

회의 참석자를 보면 정부와 우리나라 주요 경제 분야를 책임지고 있는 인사들을 위한 자리로 보여진다. 아무래도 회의 자리가 의료계를 위한 것은 아니었기에 의료의 형사적 범죄화를 논의할 의제는 아니었으나, 대통령으로서 이미 과도한 형벌 주의가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히 인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이 대통령은 우리나라에 처벌 조항이 너무 많은데도 효과는 별로 없다는 매우 간결한 표현으로 의료의 형사 범죄화와 그 모순을 잘 지적하는 것 같아 매우 인상 깊게 느껴졌다. 형사처벌로 의료가 좋아질 수 없다는 내용과 같은 맥락이다. 

이 대통령은 “기업인이 한국에서는 투자 결정을 잘못하면 배임죄로 감옥에 갈 수 있다”며, “판단과 결정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 기업의 속성인데, 이러면 위험해서 어떻게 사업을 하느냐”고 말했다.

이를 현재 우리나라의 보건의료 상황에 그대로 적용하면 의료의 부정적인 결과로 의사가 형사 처벌을 받아 감옥에 갈 수도 있고, 면허도 자동으로 박탈당할 수 있는데 어떻게 필수 의료를 수행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과 일맥상통한다. 자신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판단과 결정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 의사와 의료의 속성인데, 고부담의 의료행위는 위험해서 할 수 없다는 당연한 논리로 귀결된다. 의사에 대한 불가항력적 사고까지 형사소송을 진행하는 것을 보면, 법조인이 오판에 의한 잘못된 법 해석과 이를 잘못 적용하면 법조인도 형사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이런 상태에서 한 나라의 사법제도는 정상적으로 잘 유지될 수 있을까? 한편으로는 법조인의 판단은 책임지지 않아도 될 만큼 안전하고 완벽한 것일까? 라는 의구심이 자연스레 생길 수밖에 없다. 

최신 의학일수록 더 큰 불확실성 내포 자기 검증토록 전문직 특성 배려해야   

상식 이하의 어처구니없는 과실이 아닌 이상 의사에 대한 형사처벌을 하지 않는 선진국의 문화는 아무래도 기독교의 원죄(original sin)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즉, 서양의 전통은 인간은 실수, 오류 또는 잘못된 판단을 하는 본질적인 경향이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Human Fallibility). 그래서 인간은 비록 최선의 의도와 노력에도 판단이나 생각, 의사 결정, 기억, 행동에서 다양한 실패를 경험할 수밖에 없는 불완전한 존재로 인식된다.

‘최신 의학’일수록 의료는 불확실성의 특성을 내포한다. 이런 이유로 최신 의료는 인간의 오류 가능성을 고려하고 이를 완화하는 시스템이나 절차 등 보호 장치를 설계하는 일련의 과정들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아울러 지식과 기술의 진보에 상응하는 겸손하고 겸허한 자세, 실수에 대한 지속적인 학습을 통해 인간 경험의 자연스러운 부분을 이해하고 배움의 기회로 전환하여 더욱 좋은 의료를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 전문직의 특성이다. 

의료 형사 범죄화의 근원이 되는 의료 과실은 두 가지 대비되는 변증법적 긴장(dialectic tension) 상태를 만들어낸다. 강력한 예방조치가 필요하다는 주장과 처벌보다는 과실 관리가 더 중요하다는 입장이 서로 대립한다. 그러나 실제로 강력한 공안 조치는 대통령의 언급대로 별 효과가 없거나 역효과를 만들어낸다. 우리나라의 경우 필수 의료 붕괴가 이를 잘 설명하고 있다. 어떤 과실도 발생 잠재성에 대한 예측은 거의 불가능하다. 강력한 처벌은 오히려 과실 처리에 대한 역량을 소실시키고 역량 대신 회피를 택하게 한다. 아울러 실수를 통한 귀중한 배움의 기회도 소실시킨다. 이미 우리나라 의료에서 고부담 직무 회피와 과실의 진실은 호도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 됐다. 

처벌보다는 과실 관리가 중요하다는 측은 ‘인간의 속성은 실수하는 것’이라는 “To Err is Human”이라는 영문으로 간결히 표현된다. 과실은 절대로 완전 예방이 불가능하고, 절대적인 방지 노력에서 과실 관리로 전환하해 과실 방지와 함께 과실 관리 역량을 증대시키고 과실을 중요한 학습 기회로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런 논리에 근거하여 사과법이나 과실 공개로 자연스럽게 이행하는 것이다. 

형사 처벌 만능주의와 불감증 결국 잔인한 의료 황폐화의 길로 안내할 뿐   

이 대통령은 끝으로 우리나라는 전과자가 너무 많다며 민방위기본법, 예비군 설치법, 산림법 등으로 벌금 5만~10만 원만 내도 전과가 남는다고 지적했다. “지나치게 처벌 중심”이라고 강조했다.

환자단체나 일부 법조인이 의사 형사 처벌이 연간 30~40회 정도여서 별것 아니라는 불감증은 왜 우리나라가 의사 형사처벌 세계 최고 국가인지를 설명하고도 남는 형벌 중심 사고의 전형적이고 잔인한 모습이다. 현재도 의료 형사 범죄화에 대한 특례법 제정에 관한 담론이 조심스럽게 진행되고 있으나 아직은 답보상태에 있다. 다른 선진국에서는 기본적으로 의료는 형사처벌의 대상이 아닌데도 의사에게 무슨 대단한 특혜를 주는 것처럼, 본전도 안 되는 특례 시비가 집요하게 따라붙고 있다. 

선진국은 의료 형사소송을 위한 ‘특별한 특례법’이 없다. 법조인의 형벌 해석 판단과 적용에 관한 practice standards(관행 수준) 자체가 우리나라와는 다른 것이다. 
출처
 Professional and Practice-based Learning
Johannes Bauer et al. Human Fallibility-The Ambiguity of Errors for Work and Learning. Springer
중앙일보  2025.09.16 01:21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67201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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