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여기 중병에 걸린 환자가 있다. 그러나 치료권한을 가진 정부는 환자 상태에 관심이 없다. 환자가 살아 남으려면 환자의 상태를 제대로 파악하고, 핵심을 짚어 대신 말해 줄 사람을 찾아야 한다.
문제는 환자 자신도 자신의 상태를 제대로 알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당장의 통증을 줄이기 위해 진통제 한방을 맞고 싶어 할 뿐이다. 정부를 설득해 주사 한방을 놔줄 사람을 찾거나, 목소리를 높여 진통제 한번 더 가져올 사람을 찾는 데에만 몰두한다. 그러나 중병에 걸린 환자가 진통제 몇 방으로 살아날 수는 없다.
9년전 일본의사회장을 만난 적이 있다. 일본의사회의 최대 현안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해마다 줄어드는 환자수’라고 답했다. 그래서 일본의사회는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와 ‘매일’ 머리를 맞대고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는 다르다. 환자 자신을 포함해 그 누구도 환자의 상태를 정확히 파악하려는 노력조차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비극적인 결말을 피할 길이 없어 보인다.
1. 의원의 몰락
지난 20년 한국 의료를 요약하면 세가지로 정리된다. 진료비 폭증, 병상 수의 급증, 그리고 개원가의 몰락이다.
외형적으로 진료비는 크게 증가했지만 의원의 지위는 오히려 악화됐다. 2003년 전체 진료비의 약 45%를 차지하며 시장을 주도했던 의원의 비중은 2023년 약 30%초반까지 떨어졌다.
더 중요한 지표가 있다. 의사 1인당 외래환자 수다.
의원의 의사 1인당 외래환자는 2003년 1만5587명에서 2021년 1만127명까지 감소했다. 무려 35.0%의 감소다. 2023년 기준(1만1676명)으로도 여전히 20년전보다 약 25% 낮은 수준이다.
지난 20년 한국은 병상수가 가장 빠르게 늘어난 국가 중 하나였다. 병원과 요양병원의 병상수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상당수의 의사 인력을 흡수했고, 그 덕분에 개원가의 충격이 일정부분 완화됐다.
병상이 늘어나면 의사가 필요하다. 다시 말해 ‘병상은 의사인력을 흡수하는 장치’다. 이 같은 완충장치가 존재했음에도 개원가에서는 환자 증가보다 의사 증가 속도가 더 빨랐다. 그 결과가 바로 의사당 환자 수 감소로 나타난 것이다.
2. 팽창의 시대가 끝나고 수축이 시작되는 신호들
그러나 이 구조는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
2003년 대비 2.5배 이상 가파르게 치솟았던 ‘병상 수 지수’와 ‘입원환자 수 지수’는 2018~2019년을 정점으로 꺾이거나 정체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병상 가동률은 절반 가까운 병상이 비어 있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는 더 이상 입원환자를 늘리기 어려운 한계상황에 도달했음을 의미한다. 입원환자가 늘지 않으면 병원은 더 이상 의사를 채용할 이유가 없어진다. 병상을 가진 병원이 외래진료만을 위해 의사를 채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결국 병원이 의사 인력을 흡수하던 장치로서의 기능을 잃게 되는 것이다.
그 결과 갈 곳 잃은 의사들은 개원가로 흘러 들어올 수밖에 없다. 환자는 늘지 않는데 의사는 늘어난다. 결말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3. 낙수는 이미 시작되었다
많은 의사들이 의대 정원 확대가 현실화되면 그때부터 문제가 시작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통계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낙수는 이미 시작되고 있다.
개원가의 수익 구조 악화는 곧 봉직의 연봉과 고용시장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낙수효과를 이야기하던 정부 관료와 정책학자들은 이 구조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지난 3년간의 투쟁을 돌아다보면 다소 기이한 면이 있었다. 의대생, 전공의들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우려하며 강하게 반응했지만, 정작 현실에서 낙수의 압력을 먼저 받게 될 기성세대는 상대적으로 조용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아마도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이 무엇인지 제대로 설명해준 사람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진료실에서 자신의 병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고 치료 방법을 찾으려 하기보다, 당장의 통증만 줄여달라며 진통제나 해열제를 요구하는 환자들이 있다. 상황이 심각하다는 설명을 들으면 오히려 과장된 이야기라며 반발하기도 한다.
지금 의사 사회의 모습이 어쩌면 그와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의사회원에게는 자신을 대변할 사람을 선택할 권한이 있다. 그러나 자신의 상태를 냉정하게 설명해주는 사람보다, 당장 위로해 주거나 분노를 대신 표현해 줄 사람만을 찾는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가 없다.
문제는 이미 시작된 변화가 의견이나 주장으로 되돌릴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병상 팽창이 끝나고, 의사 인력을 흡수하던 구조가 멈추는 순간 낙수는 구조적으로 발생한다. 그리고 그 충격은 언제나 가장 아래에서부터 시작된다.
통계가 보내는 경고를 외면하는 대가는 결국 우리 모두의 몫이 될 것이다. 슬픈 일이지만 그것이 지금 통계가 보여주는 방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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