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향의대 어은경 교수 주장…강희경 교수 “의료사고 패러다임, 분쟁∙처벌→시스템 개선∙재발 방지”
순천향대부천병원 응급의학과 어은경 교수(왼쪽), 서울대병원 소아신장내과
[메디게이트뉴스 박민식 기자] 의료공동행동이 18일 서울의대 의학도서관에서 심포지엄을 열고 응급의료 시스템과 의료사고 문제에 대한 개선 방안을 제시했다. 의료공동행동은 의사∙소비자∙환자 등이 모여 의료체계에 대해 논의하는 단체다.
순천향대부천병원 응급의학과 어은경 교수(의료공동행동 응급의료-병원전단계 분과장)는 이날 심포지엄에서 최근 불거지는 응급의료 시스템의 문제에 대해 “전주기 시스템의 실패”라고 진단하며 구체적 해결책들을 내놨다.
어 교수는 먼저 119 구급대의 이송 과정에서 이뤄지는 응급 처치 등의 업무에 대한 질 관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환자안전과 구급대원 보호를 위해서는 이 과정에서도 전문의 개입 등을 통해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현행 119법에도 복지부장관이 구급상황센터의 업무를 평가할 수 있고, 이를 위해 복지부가 소방청에 관련 자료를 요청받으면 소방청은 응하도록 하고 있다”며 “하지만 실제로는 이행되지 않아 질 관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했다.
이어 “일본 등 다른 나라에서는 대부분의 구급업무를 의료 역량으로 생각하고 전문가가 지도하고 있다. 우리도 병원 전, 병원 간 이송을 의료 행위로 보고 역량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어은경 교수 발표 자료 중 발췌.
어 교수는 응급실에 도착한 환자를 초진 구역에서 분류하는 일은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직접 하도록 하자고도 제안했다. 현재는 병원별로 해당 업무를 담당하는 의료진이 천차만별인데 이에 따라 의료 질이 달라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초기에 환자 상태를 판단하고 검사, 처치, 전원을 신속하게 결정하도록 하자”며 “전공의는 안전한 환경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고 환자안전 제고 효과도 있다. 실제 영국, 호주 등에서는 전문의가 직접 진료했더니 사망률 감소와 진단 정확도가 향상됐다는 보고도 있다”고 설명했다.
어 교수는 이 외에도 ▲병원 간 이송 담당 사설 구급대의 국가 공적 시스템으로 개편 ▲병원 간 중증환자 공공 이송 서비스 확대 ▲병원 전 이송 ‘이동진료형 구급차(응급의학과 전문의 동승 및 직접 의료지도)’ 시범사업 실시 ▲차세대 응급의료 정보∙통신 플랫폼 도입 ▲지자체∙소방∙의료기관∙시민이 참여하는 지역응급의료협의체 활성화 ▲국무총리실 산하 국가위기대응시스템 컨트롤 타워 신설 등을 제안했다.
이어서 발표에 나선 서울대병원 소아신장내과 강희경 교수(의료공동행동 환자안전강화 분과장)는 의료사고(환자안전사건)와 관련해 ‘개인간 분쟁과 소송’ 중심의 현재 상황을 ‘시스템 개선과 재발 방지’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 교수는 “지금은 문제가 생기면 환자 측이 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중재를 요청하거나 민∙형사 소송을 제기한다”며 “형사고소 건 중 실제 유죄 판결이 나는 건 극히 일부라는 주장도 있지만 입건 자체가 연 700여건이고, 경찰서에 불려 다니는 것 자체가 의료진을 공포에 빠뜨린다. 필수의료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요소”라고 했다.
이어 “결국 사고가 발생하면 (의료진은) 소송의 두려움으로 실수를 은폐하거나 소통을 하지 않게 된다. 사고를 당한 환자와 가족들에게 충분한 위로와 설명이 어려워지고,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고 시스템을 개선해 재발을 막을 기회도 갖지 못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고 덧붙였다.
강희경 교수 발표 자료 중 발췌.
강 교수는 “환자 입장에서도 소송을 하더라도 결과가 나올 때까지 5~7년이 걸려 고통이 지속된다”며 “의료사고를 시스템의 미비가 아닌 개인의 문제로 접근하는 방식이 모두를 피해자로 만들고 있는 셈”이라고 했다.
이에 강 교수는 배∙보상과 무관하게 의료사고에 대해 조사할 수 있는 독립된 환자안전조사 기구 설립을 제안했다. 이를 통해 전문가들이 사고 원인을 투명하게 조사하고, 그 결과에 기반해 시스템 개선∙의료진 재교육 및 면허 관리 등을 실시하자는 것이다.
또 건강보험 수가에 포함된 위험도 부분과 국가 예산을 더해 환자 안전망 기금을 조성하고, 의료진 과실 여부와 관계 없이 건강보험 적용 의료행위 중 발생한 의료사고를 당한 환자 측에 우선 보상하자고 했다.
강 교수는 “이런 시스템을 도입하면 환자와 가족들도 피해를 신속히 구제받을 수 있고 알권리가 보장된다. 시스템 개선으로 재발을 막아 환자와 가족들의 고통도 줄어들 것”이라며 “의료진도 더 안 전환 진료 환경에서 일할 수 있어 필수의료가 유지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고 했다.
이어 “기존 정부안과 다르게 우리는 형사처벌의 무조건 면제를 주장하지 않는다. 일단 조사하고 시스템이 책임을 지자라는 것”이라며 “이런 제도가 도입되더라도 소송을 원하는 사람들은 할 수 있겠지만 원하는 이들은 별로 없을 것이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