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6.01.02 12:56최종 업데이트 26.01.02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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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계위 참여한 정재훈 교수 "논의 시간 부족·데이터 한계…활용한 모형도 부적절"

아리마 모형 장기 추계에 쓰는 나라 거의 없어…현재 과잉된 의료이용에 대한 정치적 결단 필요

정재훈 교수는 2일 페이스북에 추계위에 참여한 소회를 밝히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메디게이트뉴스 박민식 기자] 의사인력수급추계위원회에 위원으로 참여했던 정재훈 교수가 추계위는 충분한 논의가 이뤄지기 힘든 구조였고, 제공된 데이터도 한계가 있었다고 털어놨다.
 
고려대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정재훈 교수는 2일 페이스북에 “처음 시도하는 추계위에 완벽을 바라는 것은 욕심일 수 있지만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미리 준비했다면, 우리가 가진 훌륭한 자원들을 제대로  활용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며 이같이 밝혔다.
 
정 교수는 “형식적으로는 6개월의 시간, 15차례에 걸친 격론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내실을 들여다보면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며 “회의 시간은 고작 2시간 남짓이었고, 15명의 위원이 각자 전문적 식견을 펼치기엔 물리적 한계가 명확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산술적으로만 따져봐도 위원 한 명에게 주어지는 발언 시간은 5~6분에 불과했다”먀 “목소리가 크고, 같은 주장을 반복하며 길게 말하는 위원이 있으면, 상대적으로 다른 위원들의 발언 기회와 깊이는 줄어들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고 덧붙였다.
 
정 교수는 또 “무엇보다 가장 뼈아픈 부분은 자료원의 한계다. 우리나라는 전 국민 단일 건강보험시스템을 갖추고 있고, 모든 의사의 급여 행위가 빠짐없이 기록되는 데이터 관점에서 축복 받은 환경을 갖고 있다”고 했다.
 
이어 “하지만 우리가 실제로 검토할 수 있었던 자료는 기존 연구들에서 아주 약간만 더해진 수준에 불과했다”며 “여전히 많은 불확실성과 한계를 내포한 데이터, 딱 그 정도의 재료로는 결국 그 정도 수준의 결과물밖에 만들어낼 수 없다”고 했다.
 
정 교수는 이번 추계에서 장기 정책 결정 방법론으로 부적절한 시계열 모형(ARIMA)이 쓰인 것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표했다. 인공지능(AI)으로 인한 의사의 생산성 증가, 워라밸 중시 풍조에 따른 의사의 근무량 감소 등의 영향에 대해 충분한 논의가 이뤄지지 못한 점도 꼬집었다.
 
그는 “전 세계에서 의사 인력을 추계하는 수많은 선진국 중, ARIMA 모형의 결과를 주요 모형이나 장기 수요 예측의 방법론으로 채택하는 국가는 거의 없다. 현재까지 제가 문헌을 통해 찾아본 바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어 “그 이유는 명확하다. 본질적으로 ARIMA 모형은 매우 짧은 구간의 미래를 예보하는 데는 유용하지만 장기적 전망에는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우리는 지금 15년, 20년 뒤의 미래를 바라고 있다. 그 먼 미래를 그리는 데 있어 이 도구를 사용한 건 방법론적으로 타당성이 부족하다”고 덧붙였다.
 
정 교수는 “미래의 의사는 과거의 의사와 같은 양의 일을 할 것인가도 중요한 질문이었다. 한편으론 AI와 기술의 발전으로 의사는 단위 시간당 더 높은 생산성을 발휘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워라밸을 중시하는 사회적 분위기로 의사가 노동시장에 투입되는 시간 자체가 줄어들 수도 있다”고 했다.
 
이어 “이 상반된 두 가지 효과 중 어느 것이 미래 노동시장에 더 크게 작용할지는 결론 도출에 있어 결정적”이라며 “하지만 이를 깊이 있게 논의할 시간 자체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결국 시간이 부족하면 미래에도 현재와 같은 추세를 보일 것이란 느슨하고, 어쩌면 비현실적인 가정을 선택할 수밖에 없게 된다”고 덧붙였다.
 
이에 정 교수는 보다 의미있는 추계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선 정교한 추계를 가능하게 할 표준 데이터셋을 구축하고, 정책적 시나리오를 중심으로 추계가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또 추계 방법론에 대해 검증할 수 있는 전문가의 참여도 중요한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정 교수는 특히 ‘현재 우리의 의료 이용은 정상인가’에 대해 먼저 답을 내놔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역의료가 붕괴되고 필수의료 공백이 발생하는 현실은 분명 해결해야 할 과제”라면서도 “그 이면에 존재하는, 세계 최고 수준의 외래 이용 횟수와 낮은 문턱을 자랑하는 현재의 의료 이용 행태가 과연 정상인지, 그리고 미래에도 지속 가능한지에 대한 냉정한 성찰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어 “과잉된 의료 이용을 적절히 조절해 미래 세대가 감당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 것인가, 아니면 비용이 급증하더라도 현재의 이용 패턴을 유지할 것인지, 이건 수식과 모델링을 하는 전문가들이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며 “이건 결국 우리 사회가 어떤 의료 환경을 지향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의 영역이며, 이를 끌고 나갈 정치적 결단이 필요한 문제”라고 했다.

박민식 기자 (mspark@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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