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과오 인정, 어떤 불리한 대책도 수용한다" 의료계 비판 여론…"특혜 시비 논란에 불가피" 주장도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대표와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한성존 비상대책위원장이 28일 열린 간담회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메디게이트뉴스 하경대 기자] 대한전공의협의회 한성존 비상대책위원장이 환자단체와 만나 대국민 사과를 한 것과 관련해 의료계 내부에서 갑론을박이 치열하다.
한성존 위원장은 28일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길어진 의정 갈등으로 인해 불편을 겪고 불안하셨을 국민 여러분께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아울러 의료계를 대표하고 이끄는 위치에 있었던 일부 의사들의 부적절한 언행으로 국민들에게 심려를 끼친 점, 젊은 의사로서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깔끔한 사과 문구에 '전공의들의 사과를 촉구하는' 모두발언을 준비했던 안기종 대표는 한 위원장 발언 이후 "발언하기 머쓱해졌다"는 말을 내뱉을 정도였다.
그러나 '사과 발언' 이후 의료계 내부는 갑론을박이 치열하다. 특히 이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인사들은 '사과의 의미를 한성존 위원장이 깊게 생각하지 못한 듯하다'고 아쉽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안기종 대표는 2013년 '폭력이 무서우면 어떻게 의사를 하나'라는 발언을 했다고 알려져, 의료계 내부에선 반감이 큰 인물이다. 이 때문에 한성존 위원장이 안 대표와 만나 대국민 사과를 한 것이 '의료계가 백기투항하는' 상징적 의미가 크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특히 의정갈등 상황에서 발생한 의료계 투쟁을 과오로 인정했다는 점에서 불합리한 의료 정책에 저항하기 위한 의료계 단체행동 명분이 희석됐을 뿐 아니라, 향후 협상 과정에서 의료계가 불리한 위치에 놓일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번 의정갈등 사태에서 가장 일선에서 정부를 비판해 온 배장환 전 충북의대 교수는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한성존 위원장의 사과 보도를 인용하며 "선비는 곁불을 쐬지 않는다. 구질구질한 곁불을 바라느니 찬바람을 맞고 얼어 죽는 것이 옳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한의사협회 임현택 전 회장은 보다 직접적으로 강한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그는 페이스북에 "한성존 (위원장이) 사과할 대상이 중간착취자라고 욕했던 교수와 불황에 생계지원 성금을 주고 고용한 선배들, 무대책으로 일관해 온갖 피해를 감수하게 된 다수 일반 전공의들인가, 안기종 (대표)인가"라며 "오늘 사과한 안기종 (대표는) 의사는 맞아도 싸다고 했던 인물이다. 전공의 생계 지원금으로 쓰라고 의협에 냈던 내 첫달 월급 전부가 아깝다"고 전했다.
의협 김경태 감사도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가 과연 어떤 의미를 갖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사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 정부의 책임에 대한 인식조차 희미해져 버린 것 같아 안타깝다"고 했다.
한 시도의사회 관계자는 "이번 사과는 그동안 의료계와 대척점에 서 있던 인사를 만나 전공의 대표가 사과 메시지를 직접 냈다는 점에서 큰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지금까지 모든 과오를 의료계가 인정하고 어떤 후속 대책도 수용하겠다'는 정도로 사실상 무릎을 꿇은 셈"이라고 말했다.
반면 전공의들의 사과가 필요했다는 의견도 있다. 더 나아가 전공의들이 수련연속성 보장 등 요구조건을 철회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한 사직 전공의는 "의료 정상화를 위해 더 이상 복귀를 미룰 수 없는 상황에서 특혜 시비가 계속되는 상황이었다. 대승적 차원에서 여러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특단의 사과도 필요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서울의대 오주환 교수는 "특혜 논란을 종결하려면 전공의들이 앞서 밝힌 요구안들은 실제 요구가 아니라 바람일 뿐이었다고 밝혀야 한다. 특히 '수련의 연속성을 요구 조건으로 내걸지 않는다'가 아니라 '수련의 연속성 요구를 더 이상 하지 않기로 했다'는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고 피력했다.
오 교수는 "전공의들은 '앞으로 더 나은 수련 시스템 속에서 새로운 과, 병원을 자유롭게 찾아가겠다. 사회와 병원 수련 시스템, 정부, 선배 의사들이 (더 나은 시스템을 위한 협의를 하면) 우리는 이를 보고 자유롭게 천천히 새로운 과와 병원을 경쟁해서 돌아가겠다'는 선언이 있다면 아주 일관성이 높고 멋진 투쟁이 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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