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5.09.01 07:05최종 업데이트 25.09.01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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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화 아니라 칼이었다면"…폭행 피해 외상센터 교수, 끝까지 간다

피의자 '모욕 및 응급의료법 위반,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재고소…최근 조사차 경찰 출석

김진주 교수가 폭행 당한 모습이 담긴 CCTV 영상 갈무리. 사진=김진주 교수 본인 제공

[메디게이트뉴스 박민식 기자] “A씨가 던진 게 신발이 아니라 칼이나 돌이었으면 어떻게 됐을까요. 저는 7살 아이의 엄마이자 우리 부모님의 자식입니다.”

폭행 피의자 재고소를 위해 경찰서를 찾은 김진주 교수(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는 ‘흰 운동화’만 봐도 그날의 기억이 떠올라 괴롭다고 했다. 평소 땅을 보고 걷곤 했던 그였지만, 7개월 전 있었던 사건 이후로는 그런 습관도 사라졌다고 했다. 

지난 1월 15일, 김 교수는 여느 때처럼 외상센터에서 근무 중이었다. 남편이 던진 칼에 맞아 실려 온 환자를 치료할 때까지도 평소와 다를 것 없었다. 하지만 환자의 보호자이자, 동시에 환자에게 상해를 입힌 피의자이기도 한 A씨를 맞닥뜨리면서 그날은 잊을 수 없는 날이 됐다.

경찰이 A씨를 병원에 두고 떠난 게 화근이었다. A씨는 환자 상태를 설명하는 김 교수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욕설을 쏟아냈다. 그러고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자신이 신고 있던 운동화를 벗어 김 교수를 향해 있는 힘껏 던졌다. 운동화는 김 교수의 복부를 가격한 뒤 떨어졌다. 

김 교수는 만신창이가 돼 실려온 환자들을 앞에 두고도 이성적으로 치료에 집중했던 외상외과 의사였다.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리는 환자들도 숱하게 상대해 본 경험이 있었다. 하지만 그날 그를 향해 날아온 하얀 운동화는 단순한 타박상을 넘어 마음에도 깊은 상흔을 남겼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진단을 받았고, 사건 발생 7개월가량이 지난 지금도 정신건강의학과에서 통원 치료를 받고 있다.

수원지방법원은 지난 6월 20일, A씨에 대해 벌금 100만원의 약식명령을 내렸다. 이에 앞서 경찰은 김 교수에 대한 제대로 된 조사 없이 A씨를 사건 발생 4일 만에 단순 폭행 혐의로 넘겼고, 검찰도 벌금 100만원 약식 명령을 청구했다. 

사건 발생 직후부터 김 교수는 물론이고 의료계가 힘을 모아 엄벌을 탄원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특히 경찰이 응급의료기관에서 일하는 의료진 폭행 시 가중 처벌을 규정하고 있는 응급의료법 대신 단순 폭행죄를 적용한 것이 알려지며 논란이 됐다. 보호자와 ‘상담’ 과정에서 일어난 폭행에 대해선 응급의료법이 별도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사건이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지며 의사 출신인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개혁신당 이주영 의원이 응급의료 방해 금지 대상 행위에 '상담' 행위를 포함하는 내용의 응급의료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이 정도면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겠지만, 김 교수는 포기하지 않았다.
 
8월 29일 조사를 받기 위해 수원영통경찰서를 찾은 김진주 교수(왼쪽에서 두 번째)와 성남시의사회 김경태 회장(오른쪽에서 두 번째).

지난 7월 10일, 김 교수는 A씨를 모욕 및 응급의료법 위반,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재차 고소했다. 27일엔 성남시의사회 김경태 회장의 도움을 받아 부장 판사 출신 등 변호사 2명과 함께 수원영통경찰서를 찾아 조사를 받았다. 일사부재리 원칙 때문에 결과가 좋지 않을 수도 있지만, 다퉈 볼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렇게 끝까지 가보겠다고 마음먹은 건 이 사건이 단순히 김 교수 자신만의 싸움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 사건을 이렇게 마무리하면 같이 일하는 의사, 간호사, 보안요원 등 동료들을 볼 낯이 없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앞으로 유사한 사건이 생겼을 때도 제대로 처벌이 이뤄지지 않을 수 있잖아요. 결과적으로 환자들의 생명권도 위협받을 수 있고요. 복귀하는 의대생, 전공의 등 후배들도 폭행에 더 취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후배들이 잘 보호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발판을 마련해주고 싶습니다.”

2시간가량 진행된 조사를 마치고 나온 김 교수는 지쳐 보였다. 잊고 싶은 그날의 일을 상세히 떠올려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이내 힘을 내 웃어 보였다.

“좋은 결과가 나오길 바랍니다. 국회에 올라가 있는 법안도 꼭 통과됐으면 하고요.”

박민식 기자 (mspark@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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