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수 추계 시 인구고령화 따른 '의료수요 증가'만 보는 한국…미국은 정책·의료환경 변화 모두 고려
의료정책연구원, '미국의 의사인력 수급추계 사례분석 보고서' 발간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하경대 기자] 한국 의사인력 수급추계위원회가 향후 인구 고령화로 인한 의료수요 증가만 고려할 것이 아니라 다양한 정책 변화에 따른 시나리오를 추계에 반영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은 2일 이 같은 견해를 담은 '미국의 의사인력 수급추계 사례분석 정책현안분석 보고서'를 발간했다.
2025년 정부는 의과대학 입학정원을 과학적 수급추계에 근거해 결정하기 위해 의사인력 수급추계위원회를 출범했다. 그러나 자료의 한계와 제한적인 시나리오 구성 등으로 의사의 실제 근무시간이나 지역별·전문과목별 수급 현황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있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우선 미국 보건자원서비스청(HRSA)의 의사인력 수급추계는 2023년을 기준으로 전일제 기준(FTE) 활동의사는 전문활동에 필요한 총 주당 근무시간으로 정의하고 의사인력의 특성에 대한 회귀분석을 수행하는 과정을 통해 FTE로 환산했다.
의사인력 공급모델에서 의사 개개인의 주간 이동확률을 추정하고 이주한 의사를 재배정하는 계산과정을 통해 지역별 의사인력 공급추계를 수행했다.
미국 보건자원서비스청(HRSA)은 지역별, 전문분야별로 상세한 의사인력 추계를 실시하고 있다. 사진=의료정책연구원
미국의과대학협회(AAMC)의 의사인력 수급추계는 FTE의 기준으로 주당 근무시간은 환자진료 시간으로 정의하고 의사의 연령, 성별, 전문분야별(일차의료, 내과계, 외과계, 기타, 호스피탈리스트)로 보정했다. 인구구조의 변화를 반영하는 현상 유지 시나리오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여기에 책임진료기구 및 가치 기반 지불모델(관리형 의료 시나리오), 소매진료소 이용 확대, 전문간호사 및 의사보조인력 활용 증가, 인구집단의 건강목표 달성 등과 같이 정책적‧의료환경적 변화를 반영한 다양한 확장 시나리오를 적용했다.
미국의과대학협회(AAMC)는 의료환경, 정책 변화 등 다양한 변수를 고려해 시나리오를 구체화한다. 사진=의료정책연구원
HRSA와 AAMC의 추계결과에서 주요한 점은 의사인력 수급추계를 위한 기준연도의 공급과 수요의 상태가 균형이라고 가정하지 않고, 현재 상태에서의 부족분을 탐색한 것이다.
의정연은 "단순히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OECD 회원국보다 적기 때문에 의사가 부족하다고 판단하기보다는 문헌과 데이터 기반으로 현재 부족 수준을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특히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응급의학과, 외과 등 필수의료로 인정된 전문과목들은 현재 수준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이를 추계의 시작점으로 명시해야 필수의료과의 위기를 과소평가하는 오류를 피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역별 의사추계를 위해 공급모델에서 이동성을 고려한 설계가 필요하다는 점도 강조됐다.
의정연은 "HRSA는 실제 의사의 과거 이동 데이터를 통해 처음부터 의사 개개인의 주 간 이주확률을 공급모델에 포함했고, AAMC는 공급모델에 지리적 요소를 포함하지 않았다"며 "그 결과 AAMC의 추계 결과는 지역별, 도시여부별로 의사수요를 산출했으며, 의사공급은 제시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은 요양기관에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보건의료자원 통합신고포털 등의 채널에 인력현황과 신규, 퇴사 등의 변경사항을 신고하고 있으므로 자료를 활용하면 전공의가 수련을 마친 후 실제 어느 지역에 정착하는지, 전문의의 지역 간 이동은 어떤지를 확률모형으로 추정해 공급모델에 포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의사추계 시 다양한 시나리오가 필요하다는 점도 역설했다.
한국 의사인력 수급추계위원회는 미래 의료환경 변화로써 공급 여건 변화(AI 생산성/근무일수)와 보건의료 정책변화를 반영한 의료이용량 적정화라는 두 가지 시나리오를 구축했다.
미래의료 환경변화는 AI 도입이 생산성을 향상시키나 동시에 생산성의 향상이 근무일수를 감소시킬 것이라고 가정해 소극적인 AI 향상성 시나리오를 구축했고, 보건의료 정책변화에서는 의료이용량 억제 효과(1.5% 감소)가 10년에 걸쳐 발생하는 것으로 보수적으로 적용했다.
의정연은 "미국 두 기관은 미래의 의료서비스 이용양상이 현재와 같을 것이라는 현상 유지 시나리오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이에 더해 HRSA는 수요와 관련해 의료장벽이 해소돼 의료접근성이 개선될 경우의 사나리오를 구성하고 있다. AAMC는 진료제공 방식의 변화를 바탕으로 여러 시나리오를 갖췄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또한 책임진료기구(ACO) 및 가치 기반 지불모델의 확장, 소매진료소 이용 확대, APRN 및 PA의 활용 증가 등 정책적으로 의료환경을 변화할 수 있는 시나리오들을 구성하고 있다. 더불어 공급모델에서도 전공의 TO의 증가, 은퇴연령의 변화, 근무시간의 변화 등 여러 시나리오를 구축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연구원은 "다른 국가들과 달리 한국은 의료전달체계(Gatekeeping)가 사실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특징으로, 환자가 원하면 동네의원부터 상급종합병원까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며 "정부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상급종합병원의 구조전환 지원사업, 의뢰・회송 사업 등을 추진해 왔으며, 만성질환관리제를 통해 일차의료기관에서 경증환자 관리를 강화하고 있다. 적정 의료이용을 유도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들을 보건의료 정책변화 시나리오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끝으로 의정연은 "국내에서도 필수의료과의 인력 부족분을 현재 상태에서 객관적으로 판단하여 추계의 시작점으로 명시하고, 전일제환산(FTE) 의사인력의 기준(주당 근무시간 범위 등)을 명확히 정립해야 한다"며 "인구고령화로 인한 수요 증가뿐만 아니라 의료전달체계 개편, AI 도입 등 다양한 정책·환경 변화를 반영한 시나리오를 구성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