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호남 기자 munonam@
[아시아경제 문제원 기자] 집주인이 세입자의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해 보증기관이 대신 변제한 금액이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수도권 등을 중심으로 매매ㆍ전세가격이 크게 오르고 있음에도 보증사고가 급증한 것에는 정부의 부동산 규제 강화로 전세와 대출을 끼고 주택을 매입한 일명 '갭투자자'들의 자금 사정 악화가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주요 산업거점 도시의 경기침체가 원인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7일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올들어 8월까지 HUG의 전세보증금반환보증 대위변제 금액은 총 3015억원으로 이미 지난해 전체 금액 2836억원을 넘어섰다. 8월말 현재 대위변제 가구수 역시 1516가구로 지난해 전체 가구수 1364가구를 웃돌았다.
전세금반환보증은 전세를 든 임차인이 계약 만료 후 집주인으로부터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가입하는 보험이다. 집주인이 전세금을 돌려주지 못하면 HUG가 먼저 세입자(가입자)에게 전세금을 대위변제하고, 추후 집주인에게 구상권을 행사에 청구한다.
2013년 9월 출시된 이 상품은 실적 집계가 시작된 2015년 이후 매년 대위변제 금액이 증가하고 있다. 2017년 34억원에 그쳤지만 이듬해 583억원으로 급증했고, 지난해에는 2836억원까지 치솟았다. 올해의 경우 이같은 추세라면 연말까지 대위변제 금액이 4500억원까지 급증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보증사고 건수도 8월까지 1654건으로 지난해 1630건을 넘어서며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HUG, 대위변제 올해 4개월 남았는데 이미 역대 최대HUG의 대위변제 금액이 늘었다는 것은 그만큼 세입자에게 전세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집주인이 증가하고 있다는 의미다. HUG는 보험 가입 실적이 매년 증가하고 있는 만큼 대위변제 금액도 자연스럽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실제 보험 발급 금액(가구수)과 보증사고 금액(가구수)은 지난해 각각 30조6443억원(15만6095가구), 3442억원(1630가구)으로 최대치를 찍었다. 올해는 지난달까지 각각 22조9131억원(11만2495가구), 3254억원(1654가구)을 기록 중이기 때문에 이 부문도 조만간 연간 최대치를 경신할 가능성이 크다.
서울 등의 경우 올해 들어 아파트 전세가격이 크게 오르고 있는 만큼 HUG의 보증금 대위변제가 아파트 보다는 수도권 외곽지역과 지방의 단독ㆍ다세대ㆍ연립주택에서 집중적으로 이뤄졌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지난해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서 수백채의 빌라를 갭투자로 매입한 집주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해 사고가 나는 등 문제가 잇따라 발생한 바 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지방의 노후 아파트나 다세대주택 등은 자산가치 변동이 크게 없다"며 "이런 곳들 중 전세가율이 높은 지역에서 전세 보증사고가 많이 일어났을 수 있고, 한 사람이 갭투자를 많이 해서 연쇄적으로 (보증금) 돌려막기 하다가 사고가 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갭투자 규제 강화로 다주택자 자금난…지방침체 탓도정부가 최근 다주택자와 법인 등의 대출을 제한하고 세부담을 높이는 등 규제를 대폭 강화한 것이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최근 매매ㆍ전세가격 하방압력이 별로 없음에도 대위변제 금액이 크게 늘어난 것은 무리하게 대출받아 갭투자를 한 사람들이 정부 규제로 추가 대출이 막히면서 전세금을 못돌려주고 있기 때문일 수 있다"고 말했다. 함 랩장은 "다주택자 등의 갭투자를 규제하면서 나오는 디폴트 매물로 인해 보증사고가 증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경기침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창원ㆍ울산 등 주요 지방 산업거점도시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들 도시는 고용시장 위축으로 지역 주택 시장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새로운 임차인을 구하지 못한 집주인들이 늘면서 대위변제가 늘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문제원 기자 nest263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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