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6.01.15 14:17최종 업데이트 26.01.15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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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궐기대회 2만명 참여 이후, 프랑스 의사의 ‘브뤼셀 원정 시위(상징적 망명)’

[칼럼] 안덕선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장·고려대 의대 명예교수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프랑스 개원의와 전문과 의사들은 프랑스 정부가 밀어붙인 사회보장재정법(PLFSS)과 의료 규제 강화 정책에 반발해 대규모 파업과 함께 시위를 전개했다. 이번 투쟁은 단순한 국내 파업을 넘어 EU의 중심지인 브뤼셀에서 프랑스 의료정책에 대한 국제적 주목을 유도하려는 상징적 행동이다. [관련 칼럼="통제만 강하고 보상은 약하다" 프랑스 의사들의 벨기에 ‘망명 투쟁]

현재 프랑스는 개원의가 주도하고 다양한 의사 이익단체들이 합류한 가운데 지난 1월 5일부터 15일까지 열흘간 파업이 이뤄지고 있다. 국제적으로 ‘망명’이라는 상징성이 큰 저항과 행동이 각국의 언론에 임팩트 있게 다뤄졌다.  

약 2만 여명의 의사들이 파리에 모여 궐기대회를 결행한 이후 1000여 명에서 최대 2500명 규모로 추산되는 의사들이 적게는 수 십대에서 최대 90여 대의 버스 행렬이 언론에 주요 장면으로 노출됐다. 이들은 브뤼셀에 3~4일 정도 체류하며 ‘의사 망명’ 퍼포먼스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프랑스 의사들이 파업에 나선 이유는 사회보장재정법(PLFSS)이 담고 있는 통제 강화 조치를 철회해 달라는 요구인데, 무엇보다도 개원지역 선택의 자유(설치 자유) 규제의 반대와 의료 수가 및 초과 진료비 규제 강화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

프랑스 의료계는 보건장관이 아닌 총리와의 직접적인 협상을 요구하고 있다. 일반 개원의들이 주도한 이번 파업 투쟁에는 수술방 운영 관련, 다른 전문의 단체도 투쟁의 대열에 합류했다. 이에 따라 민간 병원의 수술과 외래 일정의 취소와 연기사태가 발생하고 있다. 급기야 일부 지역에서는 수술실 운영도 중단됐다고 한다. 일부 지역에서 최소 진료 유지를 위해 수술방 운영 관련 의료진에 대한 소집명령(requisition)이 발부되어 약 400~500명의 의사가 파업에 동참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프랑스 정부도 의사단체의 파업과 시위 권리는 인정하고 있다. 다만 환자의 안전과 진료의 연속성을 감안하고 최소 진료 유지의 상황에서 예의 주시하고 있다. 

보장성 확대-의료비 억제 세계 공통 난제 강압적 통제보다 줄탁동시 개념 좋은 의료의 방향을 서로 고민해야

전 세계 어느 나라나 공통으로 보장성 확대와 의료비 통제라는 상호 대립적인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려고 한다. 재정 지속성을 위한 진료비 통제는 자연히 제도권 외의 민영 의료제도를 촉진시키며, 의사는 저수가에 대한 자구책으로 초과 진료비를 이용해 소득원 확보와 경영권 보호라는 자기 본능적 장치를 작동시킨다.

프랑스 정부가 보험으로 보상받지 못하는 ‘초과 진료비’에 대한 통제와 이와는 별개로 의사 소득에 대한 추가적인 세제 강화 방침을 발표했으나, 의사들의 강력한 반발로 일단 한발 물러난 상태다. 상황이 이러하자, 프랑스 정부는 일부 논란 조항에 대해서는 수정과 조정할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한 바 있다. 그래도 프랑스 정부는 현재 프랑스가 국가적으로 전체 재정위기를 맞고 있어 강경한 관리와 통제 기조를 완전히 포기하기는 힘들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워낙 의사들의 반발이 심해 제한적이나마 성의 있는 협상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프랑스의 집권 여당은 재정 건전성과 공공의료 유지 명목과 정책 논리로 정부 정책을 옹호한다. 현재의 집권 여당은 프랑스의 심각한 의료사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근 전문의들이 월 2회 정도 ‘지역 순회진료’에 나서도록 모색했으나, 너무나 미미한 지원 현황에 이미 실패한 정책이라는 자조 섞인 평가가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와 유사한 점은 국회에서 의원들이 쏟아내는 다양한 법안 발의가 현실성 떨어지는 보건정책의 ‘아이디어 박람회’를 연상케 한다.  

한 나라의 의료체계가 어떻게 구성되고 고안되는지에 따라 의사의 전문직업성이 잘 발휘되기도 하고 안 되기도 한다. 야당과 일부 시민사회단체는 현재 의료 접근성 악화와 파업사태에 대해 정부를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한다. 프랑스 정치권도 의료계의 자율성과 공공성 사이의 균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기하기도 한다.

프랑스 언론은 의료체계 위기의 신호로 평가하며 장기적인 개혁의 필요성 강조한다. 시민 여론은 의료 접근성과 비용의 문제에는 공감하면서 파업의 방식과 요구에는 찬반으로 엇갈림을 보인다. 

의사를 비롯한 모든 프랑스 시민에게 파업권의 제약이나 강제 동원령은 전시와 준하는 사태가 아니면 절대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현재 몇 명의 의사가 파업에 참여했는지 정확한 통계는 공개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수도 파리에서 개최된 궐기대회 참석자를 약 2만 명으로 추산하는데, 이 정도 규모면 우리나라 복지부는 아마 의료대란으로 간주하고 대응본부를 꾸려 비상 복장으로 갈아입고 관련자 검거와 의사협회에 대한 강압적인 수사에 착수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현재까지 보수와 진보에 아랑곳하지 않고 ‘공공의 복리’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지지 않고 뭐든 정부가 할 수 있는 국가다. 민주주의의 진보와 답보에 대한 구분이 모호하다. 의료제도의 시작이 극우 군사정권에 의한 극좌 정책이어서 좌, 우 모두 의료계에 대한 정당한 시민 권리의 유보에는 이견이 없어 보인다. 북한도 조선 민주주의 공화국이라니 민주주의의 범위는 참으로 넓기도 하다. 

“의료 개혁 왜 매번 실패하는지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야”, 정부 정책 신뢰 상실은 돌이킬 수 없는 국가적 큰 불행

우리나라에서 전공의에게 파업의 권리를 인정하였다면 아마도 대량 사직 사태는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전공의는 의사 중 가장 젊고 지위도 낮아 협상력이나 단체적 역량을 홀대받는 취약한 처지여서 복지부의 행정 명령에 의한 강제 복귀 조치나 계엄령에 의한 처단도 서슴지 않는 나라가 됐다.

정부도 현대의 의료체계에서 보건의료의 거버넌스는 고위공무원과 국회의원들이 모든 권한을 다 가질 수 없음을 이해해야 한다. 보건의료의 실무자는 병, 의원과 의료인인데 이들은 단체를 구성해야 거버넌스의 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 정부는 거버넌스의 중간 계층인 각종 단체인 의과대학 협회, 의사노조, 의학회, 면허기구, 평가인증 기구, 시험기구, 추계기구, 기기 산업 연합체, 보험기구, 배상기구 등 다양한 단체를 보건의료의 거버넌스 파트너로 인식하고 탄압이 아닌 육성책을 강구해야 한다. 

‘좋은 의료’를 위해서는 정부의 명령과 통제로 실현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프랑스에서도 잘 보여주고 있다. 프랑스 의사들은 자국의 정부가 통제적이라고 표현하는데 솔직히 우리와 비교하면 전문직으로서 존중받는 처우는 훨씬 월등해 보인다. 의료의 수준을 유지하는데도 복지부가 아닌 전문직이 구성한 이익단체나 공익단체인 면허기구가 큰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에서의 의료 개혁과 의료 혁신 등 정권마다 던지는 구호의 연속적 실패의 경험에는 정작 의료를 움직일 수 있는 공급자와 이들로 구성된 거버넌스의 중간층을 담당하는 다양한 단체의 공조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개혁 실패의 탓을 의사의 집단이기주의로 몰아 사회적 신뢰를 추락시킨 결과는 보건의료 거버넌스의 최상위층인 정부가 나머지 거버넌스의 행위자로부터 신뢰를 상실했다는 국가적 불행이 더욱 큰 문제인 것이다.

과거에도 프랑스에서 다양한 의사단체에 의한 의사 파업은 매우 흔했다. 이번 프랑스 의사들의 브뤼셀 원정 파업은 프랑스 의료정책의 구조적 긴장감을 드러낸 사건이다. 파업의 단초는 지난 2025년 프랑스 정부가 추진하려던 몇 개의 통제적 사안에 대한 반발로 시작됐으나, 이제 논의는 의료 인력 배치, 개원 자유, 재정 통제라는 보다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쟁점이 크게 부각된 것이다. 이번 사태를 보면 프랑스 정부도 향후 의료계 간 제도적 협의 구조 마련의 필요성이 과거보다 더 절실하게 제기된 것으로 풀이된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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