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0.01.26 05:33최종 업데이트 20.01.26 0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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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의료의 미래, 정부 아닌 시장이 결정해야 한다"

치료성과 입증해야 인센티브 제공하는 가치기반 의료체계, 총액계약제 의도일 뿐

[칼럼] 박상준 경상남도 대의원·신경외과 전문의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언제부터인가 의료에 질 평가니 인센티브니 하는 단어가 붙기 시작했다. 의료의 본질을 벗어난 이런 용어가 자꾸 이용되는 기본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의료 행위에 있어 질의 평가기준은 무엇인가.

좋은 장비와 시설을 갖추고 많은 의료 인력이 투입되면, 의료 질이 좋아지는 것일까. 그리고 질이 좋으면 인센티브를 제공하겠다는 취지는 질이 기대 이하이면, 디스인센티브(Disincentive) 혹은 진료비 삭감을 해도 무방하다는 것일까. 현재를 살아가는 의사는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

소위 의료관리학을 공부한 학자들이 주장하는 이런 논리의 근거에는 한정된 의료 자원과 제한된(무한히 늘리기 어려운) 건강보험 재정이 자리하고 있다. 물론 논리의 근거가 되는 현실 상황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늘어난 국민의 의료욕구와 건강 증진에 대한 관심을 도외시한 채 단순하게 재정 문제가 중심이 된 논의 전개에 대해 동의하기 어렵다. 

건강보험 보장률을 강화하는 것은 정부나 국민의 처지에서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적절한 방안을 마련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의료 공급자에게 강요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고 현실적이지 않다. 재정 절약을 위한 수단으로 포괄수가제의 확대를 주장하나, 이는 국민의 누릴 더 나은 의료 혜택을 고려하지 않고 오직 재정 절감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기 위한 논리에 불과하다. 시대가 변하면 의료의 방향도 전환되어야 한다. 

현재 한창 실손보험업계의 관점에서 문제 되는 안과 백내장 수술의 예를 보자. 많은 노인의 퇴행성 질환인 백내장에 포괄수가를 적용한 당시의 상황을 보면, 국민의 백내장 발생 빈도가 높고 의사 간 수술방법이 비교적 표준화된 상태라고 판단하여 진행했고, 지금과 같은 수준의 렌즈 치환이나 시력교정 기술이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광학기술과 의료에 이용되는 장비의 수준이 향상돼 단순히 백내장을 제거하는 단계를 넘어 수술전의 굴절이상과 노안까지도 교정하는 더 나은 결과를 원하는 국민의 의료 욕구와 맞물려 새로운 시장이 폭발적으로 확장됐다. 신의료기술의 등장과 양질의 의료혜택을 받기 원하는 욕구가 만들어낸 접점을 인위적으로 규제하려는 시도는 명분이 없고, 현실적이지도 않다.

그렇다면 모든 국민이 백내장 수술을 건강보험이 정한 기준대로 받아야만 한다는 것인지, 더 나은 의료 시술을 받을 권리를 포기하라는 것인지에 대해 포괄수가제 확대를 주장하는 측에서 명확하게 설명해야 한다. 더불어 광범위하게 시도되고 있는 현재 치료법이 백내장을 치료하는 기준이라면 이것을 포괄수가로 도입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의견도 함께 제시해야 한다.

이 같은 예는 현재 의료 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부 사례일 뿐이다. 간병을 국가나 지자체에서 책임지고 사회가 집단으로 협력을 통해 구성원을 돌봐야 한다는 이상적인 주장에 반대할 국민이 어디 있겠는가. 다만, 그 가능성과 효과를 철저하게 분석하고 점진적으로 해결할 방법을 찾아 이 정책에 참여하는 구성원의 합의를 끌어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제도나 취지라 해도 실현 가능성이 떨어지거나 수행하는 집단의 동의가 없다면 절대로 도입하기 어렵다.

환자의 진료와 치료와 관련해 가장 비중 있게 다뤄야 할 부분은 치료 결과의 일관성 유지와 치료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질환의 응급과 중증도에 따라 집중적으로 인력과 재정을 투입해야 할 필수 영역을 지키는 것이다. 단순히 보장률을 높이기 위해 불필요한 영역에 재정을 투입해 낭비하면 정작 육성하고 집중해야 할 필수의료의 유지에 경고등이 켜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필수의료를 지켜내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국민 건강 질을 높이는 방법이다. 치료성과를 분명히 입증해야 인센티브를 제공하겠다는 주장(가치기반 의료체계)보다는 국민의 건강보호, 증진이라는 관점에서 의료체계를 정립하는 것이 훨씬 중요한 일이다. 의사에게 환자의 치유만큼 큰 보람과 인센티브는 존재하지 않는다.

의료관리학 학자 일부의 주장에 따르면, 비급여를 줄이기 위해 실손보험 개편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이는 보장성 강화가 비급여 풍선효과로 인해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실손보험의 근본 취지는 건강보험 사각지대를 보완하는 것이 핵심이다. 개인과 보험회사 사이의 사적 관계로 형성된 실손보험을 정부가 통제의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의도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실손보험에 가입한 국민의 권리를 건강보험 정책에 동원하는 것은 설혹 그 명분이 공익에 있다 해도 절대 받아들 수 없다.

건강보험료를 지출한 만큼 혜택을 받고, 부족한 부분은 실손보험으로 채워나가는 의료 시장의 자율적 기능을 인위적으로 정부가 개입해 조정하는 것은 지나친 간섭에 지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만성질환의 관리도 일차의료기관을 중심으로 자율적으로 진행되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정부가 정책적인 개입을 통해 전체를 통제하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것을 의료전달체계 개편의 볼모로 이용할 생각이면 큰 착각이다. 의료는 국가의 역할을 최소화하고 지원을 최대화할 때 실질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공공의료와 관련해서도 현재 전국의 의료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탁상공론적인 주장에 치우쳐 있다. 정부가 정책을 수립하고 수행하는 과정 전반을 시뮬레이션해보면 결과를 쉽게 예견할 수 있다. 의사 인력과 의료인의 수급 그리고 병원의 지속가능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일정 규모 이상의 지역거점병원 네트워크가 모든 것을 해결할 만능열쇠처럼 주장하는 것은 자아도취적 허상에 불과하다. 대한민국 의료에 있어 더 근본적인 원인을 제시하고 대책을 세우는 것이 바람직하다.

결론을 만들어 그 결론에 맞춘 과정을 설계하기란 매우 어렵다. 과정의 모순을 해결하지 못한 주장은 허상일 뿐이다. 모든 의료 정책을 재정에 기반을 두어 설계하려는 것은 근시안적인 대책과 방안을 쏟아낼 뿐이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총액계약제가 아닌 국가의 경제력과 국민의 의료 욕구가 충족되는 접점을 바탕으로 시장 자율에 따른 의료 혜택이 국민의 선택으로 결정되어야 한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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