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19.06.27 06:45최종 업데이트 19.06.27 0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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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의사 양성, 의사 본인만 이득 아닌 좋은 의사를 고용하는 병원과 좋은 의사로 혜택을 보는 사회의 몫"

타이완·말레이시아 등 아시아 주변국에 뒤지는 의학교육, 눈앞의 이익보다 미래를 보고 우수인력 양성에 눈을 떠야

[칼럼] 안덕선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장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우리나라에서 비행기로 불과 2시간 반 거리에 위치하는 타이완은 지리적으로 인접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생각만큼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우리 보다 물가도 싸고 겨울에는 춥지 않아 한국 관광객이 많이 몰리는 곳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반대로 한류에 대한 지대한 호감과 겨울철 눈 구경을 동경하는 대만 사람들의 한국행 여행도 많이 증가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행도 맞물려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타이완과 말레이시아는 우리나라와 상호 간 알지 못한 채 동일한 시점에 의과대학 평가인증을 시작했다. 타이완은 2200만 인구에 의과대학이 13개가 있다.

2000년대 타이완 의과대학평가인증기구(Taiwan Medical Accreditation Council) 초반에 미국시민권을 갖고 있는 타이완 학생의 입학과 미국인의 타이완 의과대학 입학을 원하는 학생을 위한 미국 정부 장학사업의 혜택을 받기 위해 미국의 NCFMEA (The National Committee on Foreign Medical Education and Accreditation)의 평가기관 기관인정(recognition)을 획득했다. 미국의 기관인정을 받기 위해 우선 타이완 의과대학을 상대로 시범사업을 한 결과 매우 충격적이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우선 동아시아 지역에서 의과대학 평가인증에 대한 개념 자체가 낯설기도 했지만, 이 분야에 대해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었다. 미국 기관으로부터 타이완 의과대학 평가인증에 대한 기관인정 심사를 계기로 타이완 의과대학의 의학교육에 대한 자율적인 ‘질 관리 개념’이 크게 발전하고, 제대로 정착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우연히 알게 된 타이완과 대한민국 양국의 의과대학 평가인증기관의 존재와 상호교류를 통해 서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고 타이완이 우리나라보다 한 세대 정도 앞서 서양의학교육을 도입한 것도 알게 됐다. 

타이완 의대, 교수진·임상실습 시설 등 우리보다 앞서고 정부 지원도 적극적 

필자는 타이완의 자체 의학교육행사에 여러 차례 참가한 경험이 있으며, 이 과정에서 많은 대학들을 현장 방문하게 됐다. 2000년대부터 시작한 우리나라의 의과대학 평가인증의 실질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양국을 비교해 보면 타이완 의과대학의 시설이나 교수진의 모습은 솔직히 우리보다 앞서 있었다.

당시 12개 의과대학 모두 좋은 시설과 임상 실습에 충분한 시설을 보유하고 있었고, 많은 임상 교수가 외국에서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사람들이 있었다. 의과대학 교수들의 외국어 구사능력도 매우 우수해 보였다. 의학교육 학술대회도 다양하게 열리는데 초청 외국 연자들 또한 학계에서는 모두가 출중한 사람들이었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 의학교육 학술대회는 넉넉지 않은 재정문제 등으로 연자 초청 자체도 녹록치 않은 일이었다. 

타이완이 개최하는 의학교육 행사에 참석해 보면, 타이완 보건부나 교육부의 지원이 있고 정부의 재정적 보조에 힘입어 국제적으로 지명도가 있는 연자들이 초청되는 사례를 종종 목격할 수 있다. 그리고 간간이 의과대학생들이 보여주는 영어 구사능력을 보면 매우 뛰어난 학생이 많은데, 이로 인해 의학교육 학술대회 전체를 영어로 진행하는데도 아무 지장이 없었다.

의학교육평가원 재직기간부터 타이완과의 좋은 관계 덕분에 발표할 기회도 많았고 많은 외국 연자로부터 좋은 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 요즈음 회자 되는 ‘가치기반 의료(value based care)’에 대해서도 주창자인 마이클 포터 교수로부터 의학교육행사에서 직접 들을 수 있었다. 제약회사의 지원이 없는 의학교육이나 의료윤리 등을 위한 행사에 타이완 정부의 지원이 이런 행사를 우리보다 훨씬 활발히 할 수 있게 만들고 있었다. 보건부 장관은 의과대학 교수 출신이 많아 교육적인 행사에 대한 정부의 이해는 매우 높은 수준이었다.

타이완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장군(將軍)병원의 예를 보면 자체적인 의과대학도 있고 많은 임상 교수가 자기 분야에서 국제적인 명성을 얻고 있었다. 이에 외국인 유학생도 많고 임상분야에서 장기간 연수를 하는 외국의사도 많다. 우리나라는 까다로운 면허제도와 면허기구 발달의 부재로 외국인 의사의 1년 이상 연수를 힘들게 하고 있다. 반면에 타이완은 제도적 뒷받침에서 외국인 수련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한국 타이완 말레이시아 3국 ‘평가인증’ 비슷하게 출발 정부 지원은 전혀 다른 양상

우리나라와 타이완, 말레이시아 세 나라가 비슷한 시기에 의과대학 평가인증제도를 구축하여 시작한 것은 우연의 일치이거나 국제적인 흐름에 쫓아가는 의학계의 노력을 반영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말레이시아는 영어사용국의 장점과 과거 영국식민지의 역사를 잘 이용해 영국의 제도를 정착시켜 의과대학의 평가인증과 질 관리를 잘 하고 있다. 이 중 중국계 말레이시아인에 대한 차별로 만들어진 말레이시아 International Medical University는 철저한 교육중심 국제화정책을 채택하여 설립된 지 20년 만에 국제적인 인지도를 높이고 매년 대규모의 국제적인 의학교육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필자는 말레이시아 의과대학 평가인증을 위한 의과대학 교수를 위한 행사에 참가한 경험이 있다. 역시 정부의 지원으로 초청받아 온 영국과 호주 연자의 평가인증에 대한 최신 지견과 경험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호주의 의과대학이 말레이시아에 분교를 세운 후 다수의 유명 외국의대가 말레이시아에 분교를 설치하고 운용하고 있다.

그러나 급작스런 의과대학 증가를 경험하며 말레이시아 정부는 더 이상의 의과대학 증설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모라토리엄(moratorium)을 선언했다. 평가인증에서 우리나라와 타이완 그리고 말레이시아의 정부가 보여주는 태도는 사뭇 다르다. 

타이완은 교육부에 ‘타이완의과대학평가인증위원회’를 설치하고 행정적 재정적 지원을 하면서도 간섭은 하지 않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의사면허기구에 의과대학 평가인증과 전문의교육에 대한 질 관리를 한다. 영국의 General Medical Council과 유사한 구조를 갖으나 보건부 산하에 두고 있다. 그 이유는 의학교육의 질 관리에 필요한 비용 모두를 정부가 부담하기 때문이다. 전문직에서 산출한 위원장이 자율적으로 조직을 운영하고 정부는 간섭을 하지 않고 지원만 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타이완은 재벌 그룹이 13번째 의과대학을 설립하면서 영어로 수업을 진행하는 국제의대로써 외국인이 입학하는 조건을 걸고 정부를 설득해 성공을 거뒀다. 타이완 의학계는 학교의 주인이 적절한 주체가 아님을 지적하고 설립 반대했다. 그러나 재벌의 강력한 로비에도 불구하고 타이완 평가인증기구의 원장은 스스로 반대 의지를 굽히지 않고 사임했다.

의과대학 설립이 실제 사회적 수요 보다는 정치적 의제로 변질되고 있는 대목이다. 현재 세계 여러 나라에서 나타나고 있는 절대로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이다. 정치인들이 지역주민들로부터 표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변질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타이완 가오슝대학, 국제학술대회센터 보유 의인문학 접목 ‘전문직업성’ 강화 유도

필자는 이번에 타이완의 가오슝대학의 초청연자로 다녀왔다. 가오슝의학대학교는 1954년 의사가 설립한 타이완 최초의 사립의학대학교로 의학대학교 산하에 의과대학, 간호대학, 치과대학, 운동의학대학, 의인문대학 등 6개의 대학이 있다. 가오슝 의학대학교는 지역 내 유일한 의과대학으로 지역사회 기여와 지역의 신망이 높은 대학이다.

시설도 자체 국제학술대회센터를 갖고 있고 외국 유학생도 꽤 확보하고 있다. 가오슝 대학교는 의인문학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고 학교의 분위기도 인문학을 강조하는 정책을 취하고 있다.

지난 8년 동안 매년 의인문학과 전문직업성에 대한 주제로 국제 학술대회를 개최하는데 매년 외국연자를 3명 정도 초빙해 금요일과 토요일 오후는 워크숍을, 토요일 오전은 전체 행사로 프로그램을 편성 행사를 진행해오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의학교육을 주제로 매년 정기적으로 국제 학술대회를 개최하는 의과대학은 아직 단 한곳도 없다. 의학교육을 주제로 싱가포르에서 매년 개최되는 ‘아·태 의학교육 학술대회’는 어느덧 참가자가 1000명을 돌파해 국제적으로 잘 알려진 행사로 자리 잡고 있다. 매년 참가자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이웃 말레이시아도 이와 경쟁을 하느라 매년 국제의학교육학술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이보다 작은 규모이기도 하나 홍콩도 열성적이다.

영어가 장애요인인지는 몰라도 일본에는 잘 알려진 국제의학교육학술대회가 없으나 국내학회에 영어로 진행하는 부분을 두고 해외 참가자를 독려하고자 일정 수의 참가자에 대한 등록비 면제와 여비보조 형태로 유인책을 쓰고 있다. 일본은 의학교육학회에 매년 후생성과 교육부의 관리가 참여하여 개회식 후 각 각 축사와 인사의 말을 하고 있다. 그리고 정부는 무엇을 도와주어야 하는가를 경청하고 의견채집을 꼼꼼히 기록해 간다. 

중국도 최근 의학교육학술대회를 활발히 개최하고 있다. 급속한 경제성장에 부응하지 못하는 의학교육의 발전을 위해 교육부 내 의학교육담당자를 육성하고 의학교육학술대회에 참여하여 중국정부의 의학교육에 대한 정책의 발표나 지원책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약 10년 정도 지켜본 결과 중국의 의학교육을 담당하는 교육부 관리는 늘 같은 사람이었다. 발표를 처음 들어본 순간 의학교육의 국제적인 흐름 모두를 꿰뚫고 있는 의학교육전문가로 보였고 당연히 의과대학 교수인줄 착각했다. 그러나 알고 보니 놀랍게도 중국 교육부 공무원이었다.

우수한 의사 양성은 결국 '사회 환원'이라는 인식 전환, 지원과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의학교육에 대한 정부의 지원을 보면 중국, 타이완, 일본, 태국, 싱가포르 모두 우리나라와 사뭇 달라 보인다. 필자가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원장을 역임하던 시절에 정부 지원을 호소하면 우리나라 교육부는 매년 일부 연구개발 보조비로 4000만 원 정도 지급한 것을 두고 정부가 지원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3만 불 소득 국가에서 과연 의학교육에 대한 정부의 관심과 지원이 우선 우리나라 주변국들과 견주었을 때 어느 정도 규모가 적정한지 궁금증이 유발되는 대목이다.  

교육부의 지원으로 의학교육이나 의료윤리, 의인문학 등 속칭 병원이나 대학에서 돈이 안 되는 학문에 대한 각종 학술대회를 활발히 진행하는 주변국을 보면서 우리나라는 언제쯤 이런 날이 올 수 있을지 스스로 좌절감에서 벗어나기 힘든 상황이다.

현재 세계에서 3000명 이상의 가장 많은 참가자를 자랑하는 유럽의학교육학술대회에 최다 참가자를 배출하는 나라는 놀랍게도 300명 이상을 보내는 태국이고, 다음으로 200명에 육박하는 타이완이다.

우리나라의 참가자가 일본보다 작을 것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20명 정도 참가하는 우리보다 국민소득이 못한 나라들이 유명 국제학술대회의 참여가 많은 이유는 정부의 지원으로 외국의 학술대회에 참가하기 때문이다. 금년 4월에 16년 만에 우리나라에서 개최된 세계의학교육연합회에 최대 참가자를 보낸 나라는 필리핀이었다.

이런 사실은 국제적 의학교육학술대회 참가조차 교수 자신이 해결해야 하는 우리나라와는 정말로 달라도 너무나 달라 보인다. 임상교수의 의학교육학회 참석은 권장할 만한 사항이 아닌 병원수입의 차질을 초래하는 불필요한 행사로 간주하는 대학이나 병원장들도 있다. 좋은 의사의 양성은 과연 누구의 혜택인가? 의사 본인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좋은 의사를 고용하는 병원이나 좋은 의사로 혜택을 보는 사회의 몫인 것이다. 

이런 연유로 싱가포르, 태국, 캐나다 등에서 보여주는 의사의 수가 산정에서 ‘교육비 산정’을 엿볼 수 있다. 즉, 개원의에게 학생이 파견되면 학생을 가르치는 보상으로 환자에 대한 수가 산정을 하듯, 학생실습에 대한 수가 산정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것은 좋은 교육의 혜택이 사회로 돌아간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외국의 의학교육 학술대회 참석도 이와 같은 사고에서 정부 차원의 지원을 아끼지 않기에 참가자가 많은 것으로 가늠해볼 수 있겠다. 

우리 사회에도 최근 들어 ‘사회 참여형 의료’ 라는 용어가 종종 회자되고 있다. 그러나 면밀히 보면 한국식 사회참여형 의료란 결국 사회참여형 ‘원가이하 의료 유지단’, 혹은 ‘원가이하 수가 압박’을 위한 그럴듯한 모양새로 ‘기획된 포장형 구호’로 끝나는 현상을 보면서 의료 분야만큼은 우리나라의 사회 인식 수준이 정말로 후진국임을 실감하게 된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메디게이트뉴스 (news@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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