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요즘 넷플릭스 드라마 '참교육'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서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선마저 넘는 학생이나 학부모, 교사로 인해 붕괴된 대한민국의 교권과 교육현장을 지키기 위해 ‘교권보호국’이 창설되었고, 논란이 될 수 있는 방법을 불사해서라도 문제를 통쾌하게 해결하는 이른바 ‘참교육’을 한다는 내용이다.
사안에 따라서 다소 거칠거나 시빗거리가 될 수 있는 방법들이 나오는데도 시청률이 올라가고 많은 국민들의 공감을 받는 이유가 무엇일까. 아마도 지난 수십여 년 간 우리나라의 교권과 교육현장이 무너지고 있는데도, 당자사인 학교나 교사, 학생과 학부모는 물론이고, 대한민국 정부나 국회조차도 제대로 된 해결책을 마련하지 못해왔던 것에 대한 실망 때문이었을 것이다.
물론 오랜 세월동안 우리 교육이 서서히 무너져온 것은 한두 가지 이유로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거슬러 올라가 보면 유교적인 인습과 전근대성, 일제 치하에서 도입되었던 경직된 교육제도, 지나친 교육열과 조변석개하는 입시제도, 급속한 경제발전 과정에서 생겨난 사회적 갈등 같은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작용되었다. 특히 과거 권위주의적 교육을 받으면서 자랐던 기성세대는 학교 교육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견을 갖게 되었고, 그 반작용으로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교권이 해체되어 온 것도 있다.
그러나 과유불급이라는 말처럼 이러한 탈권위화가 지나쳐서 수많은 교권침해와 학교폭력을 양산하게 되었고, 교사의 정당한 학생지도가 아동학대로 고발당하고 직위 해제를 당하는 등 구체적인 피해 사례는 셀 수도 없다.
교육부가 발표한 '2024년도 교육활동 침해 실태조사'를 보면 그해에만 무려 4234건의 지역교권보호위원회(교보위)가 열렸으며, 최근 수년 동안에도 계속 증가 추세이다. 교보위를 열지 않고 내부에서 유야무야 되는 경우가 훨씬 많다는 것을 감안하면, 지금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교권침해 사례들은 도대체 몇 건이나 될지 가늠하기도 어려운데, 특히 지난 2023년에는 소위 ‘서이초 교사 사망사건’이 발생하여 전국의 교사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던 일까지 벌어지고 말았다.
그럼에도 현장의 교사들에 대한 학교나 교육계의 보호는 미미하다. 아동학대 신고를 당하면 교사가 혼자 알아서 대응해야 하는데, 무혐의로 나올 때까지는 학대 교사라는 부정적인 시선에 갇히게 되고 개인적으로 법률적 대응을 해야 하며, 판결이 나올 때까지 직위가 정지되기도 한다. 결국 공교육 제도 하에서 교사는 국가를 대신하여 공적인 교육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인데, 정작 정부나 국회는 이들을 제대로 보호하는 방법을 내놓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소수의 희생으로 쌓아올린 공공시스템
그러면 왜 지금껏 국가는 교사들의 희생을 못 본 척 외면해왔을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결정적인 것은 학생과 학부모에 비해 교사가 소수(少數)였기 때문이다. 심각한 교권침해 사례가 발생해도 학생은 어려서 잘 몰랐다거나 뉘우칠 기회를 줘야 한다는 식으로 빠져나가고, 학부모 역시 자식에 대한 사랑 때문에 우발적으로 지나친 행동을 했다는 식으로 우겨대지만, 교사는 법적 책임 외에도 도적적인 의무까지 짊어지면서 ‘무조건 교사가 참고 양보하라’는 식으로 희생을 강요당해 왔다는 것이다.
정치권 입장에서는 표가 되는 다수의 눈치만 보면서, 소수의 희생을 통해 공교육이라는 시스템을 유지하는 것이 손쉬운 방법이었다. 그렇게 교사들이 갈려나가고 학생들의 학습권도 무너졌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 교사는 안정적인 인기 직업이었기에, 그 빈자리를 누군가가 메워주면 그만이었다. 또 공교육의 학습 분위기가 흐려져도 대학 갈 학생들은 어차피 사교육을 받지 않느냐는 어처구니 없는 주장마저도 나왔던 것이다.
이쯤 되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눈치를 챘겠지만, 대한민국의 무너진 공교육과 소위 필수의료의 붕괴는 너무나도 닮아있다. 과거 의료보험제도 시행 전이나 시행 후에도 한동안은 아직 우리나라의 경제력이 뒷받침해주지 못해서, 돈이 없어서 병원에 제대로 가보지 못하고 죽는 사람들이 적지 않기도 했었다. 그래서 정부나 국회는 보편적인 의료서비스 제공을 위해 의사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요양기관 강제지정제를 실시하고 의료수가를 억제하면서 지금의 건강보험제도를 일구어 왔다.
그러나 사물에는 항상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있는 것처럼, 단기간 내에 급성장한 건강보험제도의 이면에는 소수(少數)인 의사들의 희생과 억압이 있었다. 현재 교사들이 셀 수 없이 다양한 교권침해들로 고통을 받는 것처럼, 의사들 또한 수많은 의권침해로 고생하고 있다. 이는 의사들의 주관적 판단이 아니라, 통계적으로도 증명이 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의료과실에 대한 형사 소송률이나 낮은 의료수가에 비해 과다한 의료배상금액 뿐만 아니라 의료인에 대한 폭력이나 영업방해, 사회적 비난 등이 그 어느 나라에 비해서도 심하게 자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직업적 저항의 최후 수단은 안 하는 것
교권침해에 시달리는 교사들이 점점 더 학교폭력 같은 사안에 개입을 꺼리거나 무관심해지고, 견디다 못하면 사직을 하게 되는 것처럼, 의사들 역시 비슷한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다. 과거에는 의권침해에 대한 대응으로 집단행동을 하는 등 적극적인 저항을 했었으나, 날이 갈수록 적극적 행동에 대한 비난과 처벌 수위가 높아지면서 이제는 차츰 소극적인 방법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이른바 ‘지필공’으로 불리는 지역의료, 필수의료, 공공의료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사실은 하고 싶어도 못하게 되었다).
교사에 대한 인격모독이나 수업 방해, 심지어 학생이나 학부모에게 폭력을 당해도 학교나 정부에서 그를 보호해주지 못한다면 어떻게 교사직을 계속 수행할 수 있을까. 마찬가지로 필수의료에 종사하는 의사가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면서도 수시로 폭력을 당하거나 지나친 의료소송과 형사처벌 위험에 처한다면, 누가 계속 의료현장을 지키겠는가. 과거엔 나라에 돈이 없어서 강제지정제를 하고 의료수가를 제한했다고 하지만, 우리 경제가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 지금엔 헌법적 기본권을 보장하면서 적정한 보상을 해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지난 정부의 의대정원 증원이나 필수의료패키지의 강행이 엄청난 오판이었으며, 그로 인한 ‘의료대란’이 정권의 수명을 스스로 단축한 자충수로 드러나게 되었다. 이제 현 정부 또한 지난 정부의 실패에서 무엇을 배웠을지 우려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참교육은 그 주체인 교사들의 자율성과 안전을 보장할 때 이뤄질 수 있는 것처럼, 참의료 또한 의사들이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는 것으로부터 출발하지 않을까.
우리는 드라마에서처럼 사회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자들을 화끈하게 응징하고 처벌하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개혁은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한 법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조금씩, 대한민국 의사들이 다른 선진국의 의사들처럼, 소신껏 의료현장에서 일할 수 있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게 바로 참의료로 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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