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0.07.08 06:27최종 업데이트 20.07.08 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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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시대에 필요한 것은 원격의료 강행이 아니라 필수의료 정비다

[칼럼] 이필수 전라남도의사회장 대한의사협회 부회장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코로나19 감염증 사태를 빌미로 지난 5월 중순, 청와대와 정부가 ‘비대면 의료 서비스’(원격의료)의 확대 방침을 밝히면서 원격 의료 논의가 뜨겁다. 

청와대에 이어 국무총리도 “비대면 진료 확대, 원격 모니터링 서비스 발굴 등 보건의료 대책의 과감한 중심 이동이 필요하다. 스마트·비대면 산업을 육성하는 등 방역 보건 시스템을 한 단계 도약시키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원격 의료가 보다 활발히 진행될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겠다”고 강조했으며, 기획재정부 제1차관은 “(원격 의료) 시범사업 확대를 위한 인프라 보강 등이 한국판 뉴딜 10대 중점 과제 중 하나”라고 한 걸음 더 나아갔다.

대한병원협회는 6월 초 비대면 진료 제도 도입에 '원칙적으로 찬성한다'는 기본 입장을 밝혔다. 병협은 “국민 보호와 편의 증진을 위한 세계적 추세 및 사회적 이익 증대 차원에서 비대면 진료의 필요성을 공감하고 이같이 결정했다"고 했다.

이에 대해 대한의사협회는 “병협이 의협과 아무런 상의도 없이 전체 의료현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사안에 대해 회원들의 의견 수렴 절차를 생략하는 등 절차적 정당성을 상실한 상태에서 이 같은 찬성 발언을 했다. 이는 논란의 소지가 있는 매우 부적절한 처사”라고 유감을 표시했다

원격의료 논란은 오랜 시간 지속돼왔다. 박근혜 정부가 원격의료를 추진하려 했을 때, 현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원격의료는 의료 민영화의 시작이다”라며 원격의료에 반대하는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박근혜 정부의 원격의료 추진을 거세게 반대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대선에서 원격의료를 포함한 의료 민영화에 대한 반대를 공약으로 내걸기까지 했다. 그런데 여야가 바뀌고 나서 정부는 오로지 코로나19 사태에 기대 원격의료가 필요하다고만 강변하고 있다. 왜 입장이 바뀌었는지에 대해 명쾌한 설명이 없다. 어리둥절할 따름이다.

원격의료(Telemedicine)는 ‘정보통신 기술을 이용해 원거리에 있는 의사와 환자 또는 의사와 의사 간 의료 정보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든 활동’으로 정의할 수 있다. 

의학적 관점에서 원격의료의 장점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들 수 있다. 우선, 외딴 지역이나 원거리에 있는 환자들에게 의료 서비스와 건강 관리가 지금보다 편하게 진행될 수 있다. 또한 환자와 의료진 간에 전염병이 옮기는 경우가 없으며, 병원을 방문하는 것을 싫어하는 환자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단점은 이런 장점들을 모두 덮고도 남는다.  첫째, 원격 통신과 데이터 장비 구매 및 관리 비용이 발생한다. 둘째, 의료인과 환자 간 인간적 소통과 공감이 줄어들어 환자의 진솔한 병력 청취가 어려울 수 있다. 셋째, 청진이나 촉진 없이 화면으로만 보고 진단함으로 인해 오진의 위험이 높다. 넷째, 진료 후 즉시 치료를 시작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영상으로 정보를 저장 및 전송하는 과정에 개인 정보가 노출될 위험도 크다. 

이처럼 의학적으로 특별한 장점도 없는 원격의료를, 높은 인구밀도로 인해 세계적으로도 의료접근성이 매우 높은 나라로 손꼽히는 우리나라에서 해야 할 이유가 뭘까? 대통령과 국무총리에 이어 보건의료 주무 부처도 아닌 기재부와 산자부의 장-차관조차 앞장서서 원격 의료를 해야 한다고 주장해야만 할 급박한 이유가 있는가?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 장관은 국민 건강 수호의 ‘모세혈관’ 역할을 하는 동네 병·의원들이 원격의료 도입에 반발하자 이를 무마하려는 듯, 지난달 15일 동네병원 의사가 주된 ‘수익자’가 되는 원격의료를 확대하겠다고 팔을 걷어붙였다.  

주무부처 장관까지 이렇게 밝혔는데, 왜 정작 동네 병·의원을 대표하는 의협은 반대를 하는 것일까? 반면, 대학병원과 종합병원 등 ‘거대 병원’을 대표하는 병협이나 경제단체를 비롯한 헬스케어업계는 왜 찬성을 할까? 

이는 결국 원격의료가 상급종합병원을 비롯한 대형병원으로 의료 쏠림을 유발하고, 원격의료 기기나 자재를 제조하는 업체만 배 불리는 의료 상업화로 치닫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결과, 국민 의료의 첨병인 동네 병·의원은 더욱 어려움에 처하게 될 것이 명약관화하다.

코로나19는 지금 전 세계에 경제사회 모든 분야에서 새로운 노멀을 요구하고 있다. 보건의료 분야에서도 그렇다. 감염병의 반복 유행에 대비한 인프라 구축 및 인력 양성의 필요성과 더불어 인구 고령화로 인한 의료 전달체계의 정비 등 필수의료 서비스의 확립이 당면과제로 부각되고 있다.

지난 2월 보건복지부는 생명과 직결된 필수 의료 서비스를 강화하기 위해 권역별 국립대병원의 지역별 책임의료기관 지정을 추진하고, 지방자치단체(시·도)와 함께 필수 의료 협력체계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러한 정부의 계획은 고령화로 인한 다양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포괄적 해법이 되지 못하는 미봉책에 불과하다. 고령화로 인한 문제는 단지 한 두 개 진료과목의 확충이나 권역별 책임의료기관 지정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고령화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는 생명과 직결된 의료적 문제 이외에 돌봄과 삶의 질, 그리고 더 나아가서 ‘웰 다잉’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러한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좀 더 포괄적 접근을 정부가 해야 한다. 

현재 대부분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에서 하고 있는 지역별 연령별 데이터에 기반한 필요 병상 수요를 바탕으로 퇴원 이후 사회적 돌봄에 이르기까지 노인 의료 및 요양 서비스 전반에 대한 보다 정교한 연계 정책이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아동과 모성, 정신질환, 장애인 등 취약계층과 관련된 보건의료, 재난 및 감염병에 대한 안전체계 구축 등 국민의 생명 안전 및 기본적 삶의 질을 보장하는 필수의료체계 구축도 시급하다.

보건의료 분야에 산적한 문제가 많다. 지금 필요한 것은 원격의료가 아니라 필수의료의 정비라는 사실을 청와대와 정부가 분명하게 알고 현명한 판단과 정책 집행을 기대한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메디게이트뉴스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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