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3.11.07 07:43최종 업데이트 23.11.07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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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체 불확실성 외면한 채 의사에 '형사처벌'?…"메스 잡는 외과의사 사라진다"

[인터뷰] 대한외상중환자외과학회 이재길 회장 "보존적 치료 vs 응급 수술 적절성 판단, 사실상 불가능"

대한외상중환자외과학회 이재길 회장

[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필수의료 살리기를 약속한 정부의 구호가 무색하게 최근 사법부가 필수의료를 담당하는 외과의사에게 '업무상 과실치상죄'를 인정해 금고형을 선고하는 사건이 빈발하고 있다.

열악한 현실에서 필수의료를 지속하고 있는 외과의사들의 사기를 꺾는 사법부 판단에 외과의사들은 물론 모든 의사들이 우려하며 필수의료 기피 현상 심화를 예견하는 가운데 관련 학회로서는 처음으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판결의 문제점을 지적한 대한외상중환자외과학회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외상중환자외과학회 이재길 회장(이대목동병원)은 대한민국 의료계 화두인 '필수의료'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복부응급수술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외과의사에게 이 같은 판결은 사기를 꺾는 것을 넘어 수술 포기를 가속화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장폐색 환자 보존적치료 결정 후 응급수술 환자…장 절제 후 회복됐지만 의사 '금고형'

'외상중환자외과학회'는 중환자의학 세부전문의, 외상학 세부전문의 (외상외과 세부전문의), 응급 수술 외과계교수 들이 모인 학회로 권역외상센터, 외과계 중환자실에서 주로 근무하며 응급 수술도 진행하는 그야말로 최근 정부가 강조하는 생명과 직결된 '필수의료'를 담당하는 의사들이 모인 곳이다.

이 회장은 "우리 학회는 생명과 직결된 업무를 하는 의사들이 모인 학회인 만큼 최근 대법원이 장폐색 환자에 대해 보존적 치료를 택한 외과의사에게 형사처벌을 확정한 데 대해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판단, 심각한 우려와 강한 유감의 입장을 밝혔다"고 전했다.

해당 사건은 피고인인 외과 전문의가 2017년 갑작스러운 복통으로 응급실로 내원한 환자를 장폐색으로 진단했으나 환자 통증이 호전되고 있고 6개월 전 난소종양으로 개복수술을 받은 과거력이 있음을 고려해 우선적으로 보존적치료를 시행했다가 상태가 악화돼 소장을 절제한 사건이다.

실제로 해당 환자는 큰 문제 없이 보존적 치료를 받았으나 입원 7일째 상태가 급격히 악화됐고, 의사 역시 응급 수술을 결정해 환자의 소장을 절제했으나 괴사된 소장에 발생한 천공으로 인한 패혈증과 복막염 등이 발생해 이후 추가적인 2차 수술을 진행했다.

결국 환자는 목숨을 건져 회복됐지만 의사는 환자의 형사고발을 통해 법정에 서야했다.

이 회장은 "일단 해당 외과 전문의가 왜 형사소송까지 휘말려야 했는지를 모르겠다. 보존적 치료를 결정할 때 해당 환자도 동의했고 응급 수술을 하긴 했지만, 환자는 회복됐다"며 " 해당 의사가 보존적 치료를 결정할 때 혹시 모를 응급 수술이나, 수술 지연에 따른 합병증 발생 등에 대해서 환자나 보호자에게 충분하게 전달되지 못한데 대한 불만이  작용했을 수도 있다"고 바라봤다.

결국 의사는 형사 소송의 피고인이 됐고, 대법원 재판부는 입원 당시 즉각 수술을 하는 것이 가장 적절한 치료 방법이었음에도 의사가 보존적 치료를 결정해 수술을 지연시켜 환자에게 상해를 발생시켰다고 판단해 해당 의사에게 업무상 주의의무 위반죄로 금고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만사 아닌 개복수술, 신중하게 결정해야…인체 불확실성에 응급수술 적절성 판단 어려워

문제는 외과학 교과서 및 국내외 여러 진료 지침에서는 수술 후 장유착에 의한 장폐색의 치료에서 성급한 응급수술보다 보존적 치료를 권고하고, 보존적 치료를 시행하면서 환자의 임상 상태와 장교액 여부에 따라 신중하게 수술을 결정하도록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회장은 "장폐색으로 병원에 온 환자 중 실제로 수술로 회복되는 환자는 10명 중 3명이다. 실제로 수술이 필요한 환자는 30%뿐이며, 수술을 받는 30% 중에서도 병원에 온 직후 응급으로 수술을 받아야 하는 환자는 정말 한 두 명에 불과하다"며 "장폐색은 기본적으로 보존적치료로 해결되는 환자가 많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그는 "개복 수술은 만사가 아니다. 오히려 수술을 하게 되면 장 유착이 발생해 없던 장폐색도 유발할 수 있다. 개복수술은 사망을 포함하는 중대한 합병증 등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에 환자를 위해 최대한 회피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해당 의사가 환자를 처음 진찰했을 때 장폐색임을 인지하고서도 응급수술이 아닌 보존적 치료를 결정한 것이 적절했는지 부적절했는지를 판단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 장폐색 환자에게 응급수술이 필요하다고 판단할 근거는 맥박, 혈압, 체온, 백혈구 수치 등 임상 증상과 CT 촬영 정도인데, 그 기준 역시 명확하지 않다”고 밝혔다.

그 이유는 인체마다 특성이나 병의 발현이 다양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사람마다 겉으로 증상이 없던 사람이 실제로는 심각한 장폐색일 수도 있고, CT와 임상 증상에서는 심각한 상황이라 개복을 했는데 오히려 멀쩡한 경우도 있다. 진찰을 할 때는 멀쩡했다 몇 시간만에 상태가 심각해지는 사람도 있고, 증상이 심각해 보이지만 보존적 치료로 며칠만에 치료되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또 "수술 내용도 사람마다 다르다. 유착만 끊어주면 돼 30분 만에 끝나는 수술도 있고, 유착 박리가 심해 장을 꿰매거나 잘라야 해 3~4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환자 상태에 따라 수술 내용이 360도 달라지는 것이다"라며 "눈에 보이지 않는 몸속의 상황이나 환자가 악화될 타이밍을 100% 예측하기란 불가능하다. 이처럼 개인마다 다른 인체의 불확실성을 의사가 예측하지 못했다고 형사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가혹하다"고 비판했다.
 


위험도 높은데 보상은 적고 업무 강도는 높은 외상, 중환자, 응급 파트…의사 떠난다

무엇보다 이재길 회장은 잇따르는 의료사고 형사처벌 사건이 실제 응급 수술을 하는 외과의사들에게 미칠 악영향을 우려했다. 이미 의료소송 가능성이 높은 외상, 중환자 파트, 응급 수술 파트에 대한 외과의사들의 기피는 심각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국가에서는 필수의료 의사 부족을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하며 필수의료를 장려하겠다고 말만 하고 있다. 그러면서 공공의대 등 의사를 늘리는 정책을 고려하는 것 같은데 그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당장 외과를 선택하려는 사람들, 중환자와 응급환자를 위주로 생명과 직결된 업무를 하려는 의사들이 그 신념을 지킬 수 있도록 해 주는 게 급선무"라고 지적했다.

그는 "외과의사라는 자부심과 정체성만으로는 버틸 수 없다. 힘들고 위험한 일을 선택한 데 대한 메리트가 명확해야 한다"며 "외과 내에서도 펠로우를 하려는 의사 130명중 5~60%는 유방과 갑상선, 혈관 분야를 선택하고 있다. 더 힘들고 위험한 일을 선택할 동기가 없기 때문이다"라고 꼬집었다.

무엇보다 외과는 수술에 대한 행위료만 있어 수술 준비, 수술 계획 등 수술을 위한 준비 과정에 대한 보상이 없고, 행위 결과가 같다면 30분 수술도 4~5시간이 걸리는 수술도 비용이 똑같은 현실이다. 또 응급 수술을 위한 대기 시간에 대한 보상 및 응급 수술을 위한 당직 근무 규정이 명확하지 않아 높은 업무 강도에 비해 보상이 부족한 과목에 속한다.

이런 상황에서 학회는 이번 대법원 판결은 외과 의사들에게 수술 후 발생 가능한 불가피한 합병증을 '범죄'라고 규정지어 필수의료 현장을 지키던 기존 의료진마저 이탈하게 만들고 있으며, 반복되는 의료사고 형벌화 경향은 의료진의 방어 진료를 일반화시켜 필수의료 기피를 더욱 심화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 회장은 "응급 수술을 담당하는 외과의들은 잠재적 범죄자가 됐다. 현재도 어려운 속에서 고군분투하던 외과의들이 더 이상 필수의료 현장을 지킬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다"며 "배출되는 의사들이 필수의료를 하고 싶게 병원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 수 있는 명분을 만들어야 한다. 법적으로 연속 근무에 대한 제동을 걸고, 외과 의사들이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 투자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 만큼 보상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런 말을 하면 우리나라 의사들이 돈을 많이 번다고 하는데, 외국은 우리나라 의사의 10분의 1만 일하고 우리와 비슷하거나 많이 번다"며 "한 달에 20건씩 기계처럼 수술을 해야 수입이 나고 병원이 돌아가는 현 구조는 의사를 갈아 넣는 시스템으로 결코 미래가 없다"고 비판했다.

조운 기자 (wjo@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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