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1.03.11 17:12최종 업데이트 21.03.11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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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인 면허취소법의 또 다른 독소, '의료인 교육프로그램 필수 이수' 면허재교부 요건은 위헌적 법률

의료인이 건강보험 제도의 피해자임에도 분개하지 않고 무기력감에 빠져있는 건 아닐까

[칼럼] 박재영 법률사무소 정우 대표변호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의료인에 대해 면허를 취소하는 의료법 개정안은 면허가 취소된 의료인에 대한 면허 재교부 요건으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교육프로그램(의료인 교육프로그램)을 필수적으로 이수하도록 한다(의료법 개정안 제65조 제2항 본문). 하지만 변호사법은 면허취소와 유사한 징계처분인 제명 후 변호사로 등록할 경우 교육프로그램을 이수하도록 하지 않는다. 

의료인 교육프로그램 필수이수조항은 보안처분과 유사한 것으로 법률유보원칙 또는 일반적 행동자유권을 침해한 위헌적 법률안이다. 

헌법이 기본권의 제한을 직접 규정하지 않고 그 제한을 법률에 위임하고 있는 경우 이를 법률유보라고 한다. 법률유보는 기본권을 제한하기 위해 반드시 입법권자가 제정하는 법률에 의하거나 법률에 근거가 있어야 한다는 의미로 행정권이나 사법권으로부터 기본권을 보호해주고 기본권을 강화해주는 기능을 한다. 

법률유보에도 기본권 전반이 법률에 의해 제한될 수 있다고 규정하는 일반적 법률유보와 특정의 기본권에 법률유보조항을 둬서 특정한 기본권을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다고 규정하는 개별적 법률유보가 있다. 헌법 제37조 제2항은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해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고, 이를 일반적 법률유보로 보는 것에는 별다른 이견이 없다. 그리고 신체의 자유에 관한 헌법 제12조 제1항을 개별적 법률유보로 보는 견해가 다수설이다(한수웅, 헌법학, 2014, 458-459쪽). 

개별적 법률유보는 그 법률의 목적과 조건을 부가해 일반적 법률유보보다 기본권 제한을 더욱 엄격하게 한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고 봐야 한다. 헌법 제12조 제1항 후문의 “누구든지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체포·구속·압수·수색 또는 심문을 받지 아니하며, 법률과 적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처벌·보안처분 또는 강제노역을 받지 아니한다”는 규정은 법률로 신체의 자유를 제한할 경우에는 적법절차에 따라야 함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 조항은 기본권 제한법률에 일정한 내용을 요구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보안처분은 행위자의 장래 위험성에 근거해 범죄자의 개선을 통해 범죄를 예방하고 장래의 위험을 방지해 사회를 보호하기 위해서 형벌에 대신해 또는 형벌을 보충해 부과되는 자유의 박탈과 제한 등의 처분을 뜻하는 것으로서 형벌과 그 근거와 목적을 달리하는 형사제재이다. 헌법재판소도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명령 조항 위헌확인 사건”에서 이수명령은 형벌과 본질적 차이가 있는 보안처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헌법재판소 2016. 12. 29. 선고 2016헌바153 판결 참조).

헌법 제37조 제2항에서 규정하고 있는 “법률로써 제한”이란 “법률에 의한 제한”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법률에 근거한 제한”을 의미하므로, 대통령령에 의해서 기본권을 제한할 수도 있다. 다만, 법률우위의 원칙, 포괄위임입법금지 원칙 등 위임입법의 한계를 준수해야 한다.

헌법재판소는 "법률이 입법사항을 고시 등에 위임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그에 관한 통제는 더욱 엄격하게 행해져야 하고, 전문적·기술적 사항이나 경미한 사항으로서 업무의 성질상 위임이 불가피한 사항에 한정된다고 할 것이고, 그러한 사항이라 하더라도 포괄위임금지원칙상 법률의 위임은 반드시 구체적·개별적으로 한정된 사항에 대해 행하여져야 한다"는 입장이다(헌법재판소 2004. 10. 28. 선고 99헌바91 판결 참조). 

의료인 교육프로그램 필수이수조항은 신체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점에서 전문적·기술적 사항이나 경미한 사항으로 보기 어렵다. 이에 의료인 교육프로그램에 관한 내용을 법률에서 정하지 않고 대통령령에 위임한 의료인 교육프로그램 필수이수조항은 포괄위임금지원칙을 위반한 것이다. 의료인 교육프로그램에 관한 사항을 대통령령으로 위임하는 것이 합헌이라 하더라도, 헌법 제27조 제3항에 따라 형사피고인은 상당한 이유가 없는 한 지체 없이 공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이에 형사피고인에 대해서는 법관이 재판을 통해 보안처분의 부과 여부를 결정해야 적법절차원칙에 부합한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의료인 교육프로그램 필수이수조항은 ①법관에게 의료인 교육프로그램 부과 여부에 관한 판단을 받지 않는다는 점 ②복지부 장관에게 의료인 교육프로그램 운영과 관련한 인적 구성이나 예산·경비 등이 예속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운영기관의 독립성을 인정하기 힘들다는 점 ③의료인 교육프로그램 대상자가 능동적으로 의견을 진술하고 증거 제출이나 증거조사신청 등을 통해 절차에 참여할 권리가 전혀 보장돼 있지 않아 공정한 심리구조가 갖추어지고 절차적 권리가 보장되고 있다고 볼 수 없다는 점 등을 종합해 고려하면 적법절차원칙에 부합하지 않는다.

헌법 제10조 전단은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해 행복추구권을 보장하고 있고,  행복추구권은 구체적인 표현으로서 일반적인 행동자유권과 개성의 자유로운 발현권을 포함한다(헌법재판소 2003. 10. 30. 선고 2002헌마518 판결 참조). 

일반적 행동자유권은 적극적으로 자유롭게 행동을 하는 것은 물론 소극적으로 행동을 하지 않을 자유도 포함된다(헌법재판소 2010. 11. 25. 선고 2009헌바246 판결 참조). 면허 재발급을 받기 위해서 의료인은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일정 기간에 장소에 출석해 교육프로그램을 이수해야 하므로 헌법 제10조의 행복추구권에서 파생되는 일반적 행동의 자유를 제한받는다. 그렇다면 ’의료인 교육프로그램‘ 필수이수조항이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돼 의료인의 일반적 행동자유권을 침해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의료인 교육프로그램 필수이수조항은 면허취소사유의 개별성과 특수성을 고려할 수 있는 여지를 일체 배제하고 필요적 규정을 뒀다는 점에서 침해최소성의 원칙에 위배된다. 즉, 어떤 법률의 입법목적이 정당하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선택한 수단이 어느 정도 적합하다고 하더라도 입법자가 임의적 규정이나 기본권 제한이 덜한 다른 수단으로 법의 목적을 실현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체적 사안의 개별성과 특수성을 고려할 가능성을 일절 배제하는 필요적 규정으로 법의 목적을 실현하려 한다면, 이는 침해의 최소성 원칙에 위배된다(헌법재판소 2015. 5. 28. 선고 2013헌가6 판결 참조).

헌법재판관 2인은 2002년 국민건강보험법 요양기관 당연지정제에 관한 사건의 반대의견에서 “모든 통제시스템은 한편으로는 통제권을 행사하는 측의 부패 만연을 걱정해야 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통제를 받는 측의 안일과 나태를 걱정해야 하며 또 다른 한편에서는 수혜자 측의 과잉수혜를 걱정해야 하는 3중의 폐단을 지닌다. 요양기관 강제지정제도에 대해서도 역시 유사한 문제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라고 밝혔다.

헌법재판관 2인이 약 20년 전에 현재 우리 의료계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점을 예측했던 이유는 “인간의 이기적 습성”에 관한 예리한 통찰이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대한의사협회가 2017년 9월 13일 ‘비급여 진료 의료기관의 건강보험 요양기관 당연지정제 예외 허용을 위한 토론회’를 개최했다. 당시 토론회에 참석한 복지부 공무원은 “단일보험자와 다수 의료기관의 계약제는 단일보험자의 권한이 막강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의료기관 솎아내기가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계약의 관리 방식은 지나치게 폭력적이어서 바람직하지 않다. 당연지정제 폐지가 의료기관에 유리한지 의료계 스스로 자문해봐야 한다. 단일보험자(건보공단)와 계약에서 배제된 의료기관은 현실적으로 생존할 수 없다”라는 의견을 냈다. 헌법재판관 2인이 통제권을 행사하는 측의 관료주의를 걱정한 것이 이해되는 대목이다. 

애덤 스미스는 정의(justice)의 여러 규칙으로서의 소유권과 계약법의 기원과 정의를 집행하는 정부 정당성의 기초를 신의 의지나 정의의 사회적 효용에 의해서가 아니라 '피해자의 분개'에 대한 '공평한 관찰자의 공감'에 의해 설명했다. 의료인이 사회보험제도인 건강보험의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분개하지 않고 무기력감에 빠져 있지 않았는지 고민이 필요하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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