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4.03.15 08:55최종 업데이트 24.03.15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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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전공의들에게 '한국 전공의 1명당 환자 20명 맡는다'고 말하니 "Unsafe"

[인터뷰] 박주얼 미국 대학병원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의대정원 확대론 필수의료 기피 해결 못해"

"미국처럼 전공의를 노동인력 아닌 수련자로 생각하고 교육·수련을 잘 할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해야"

미국 로스엔젤레스 제네럴 메디컬 센터(Los Angeles General Medical Center/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박주얼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2년차.

[메디게이트뉴스 하경대 기자] 박주얼 전공의는 현재 기피과로 불리는 소아청소년과를 미국에서 수련하고 있다. 그도 한국에서 의대를 졸업하고 국내 대학병원 수련을 고민했던 터라 최근 한국에서 발생하고 있는 의대정원 증원과 기피과 이슈, 전공의 사직 사태에 대한 관심이 누구보다 많다. 

비록 먼 타지에서 수련 장소는 다르지만 같은 전공의 입장에서 그가 바라보는 한국의 전공의 사직 사태는 안타까을 뿐이다. 그들이 평생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전 세계 최고 수준의 한국의료를 지탱하기 위해 헌신할 것을 가장 잘 알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은 필수의료 기피 문제만 해결하면 단연 세계 최고의 독보적인 의료시스템을 갖고 있다"라며 "필수의료 기피의 근본적 원인인 저수가 등을 해결하는게 아니라 의대정원 증원에만 몰두해 우수한 의료시스템을 유지할 기회를 놓치고 있는 것 같아 매우 아쉽다"고 말했다. 
 
특히 박 전공의는 향후 전공의를 노동인력 보단 수련자로 생각하고 교육과 수련을 잘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미국의 의료 시스템이 한국에서도 정착될 수 있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다음은 메디게이트뉴스가 박주얼 전공의와 나눈 인터뷰 일문일답 내용이다. 
 
Q. 간단한 자기 소개를 부탁한다. 한국 의대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전공의 생활을 하게 된 이유를 설명해달라. 
 
나는 한국에서 의대를 졸업하고 현재는 미국으로 건너와 로스엔젤레스 제네럴 메디컬 센터(Los Angeles General Medical Center/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소아청소년과 2년차 전공의다. 의대에 진학할 때부터 미국 수련을 생각하고 있었다. 어릴 적 스리랑카라는 나라에서 살았던 경험이 있어 국제보건 분야에서 활동하고 싶어 미국으로 건너왔다. 또한 보다 많은 환자들에게 도움을 주는 의학연구자가 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더 넓은 무대인 미국에서 수련을 받는 것이 꿈을 이어나가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정부가 한국 전공의들 미래에 찬물 쏟았다…전공의들 상실감이 클 것
 
Q. 미국이라는 타지에서 전공의 수련을 받으며 한국의 전공의 사직 사태를 바라보는 심정은 어떤가. 
 
안타까운 마음이 크다. 미국에 와보니 이곳의 비싼 의료비와 복잡한 보험체계 등 의료시스템의 문제가 많이 보였다. 한국에서 살 땐 체감하지 못했던 한국만의 장점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한국은 전문의에 대한 접근성이 뛰어나고 환자가 부담하는 의료비도 낮아 환자 입장에서 너무나도 좋은 의료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특히 한국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지출하는 의료비도 낮아 모두가 '윈윈'할 수 있고 세계적으로도 흔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은 필수의료 기피 문제만 해결하면 세계 최고의 독보적인 의료시스템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정부가 필수의료 기피의 근본적 원인인 저수가를 해결하는게 아니라 의대정원 증원에만 몰두해 그런 기회를 놓치고 있는 것 같아 매우 아쉽다.
 
Q. 최근 한국의 의대정원 확대 문제에 대해선 어떤 견해를 갖고 있나.
 
의대정원 확대가 이뤄지기 전에 필수의료 저수가 문제가 더 시급하다. 예를 들어 한국은 현재 영유아 건강검진 수가가 나이에 따라 3만~5만원인데, 미국은 보험에 따라 편차가 있지만 캘리포니아의 주요 보험사인 카이저병원(Kaiser Permanante)의 수가는 227~262달러(약 30만~35만원)이다. 미국 저소득층을 위한 보험인 메디케이드(Medicaid)의 수가조차 캘리포니아 기준 35~55달러(약 4만5000원~7만원)으로 한국보다 높은데, 메디케이드 환자를 많이 볼수록 적자이기 때문에 개원가는 거의 메디케이드 환자를 받지 않는다.
 
의대정원 확대가 필요하다는 과학적 근거가 충분하다면 필요할 수도 있겠지만,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급격한 확대는 근거도 부족하고 부작용이 클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의사 수가 1000명 당 2.7명으로 한국의 1000명 당 2.6명과 거의 비슷한데, 지난 10년 동안 의대로 진학하는 학생 수가 2만6691명에서 3만2862명으로 23% 증가했다.

반면 한국은 이번에 1년만에 의대 정원 65%를 증원한하게 된다. 현재 한국의 의대 교육에는 개선할 부분이 많다고 생각하는 상황에서 정원을 늘리면 교육의 질은 더욱 떨어질 것이다.
 
Q. 시급하게 개선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한국의 의료(수련)시스템 문제를 하나만 꼽자면.
 
전공의가 기형적으로 업무부담을 지는 시스템을 입원전담전문의 위주의 시스템으로 전환해야 한다. 환자 진료 업무를 전문의가 부담해야 환자안전도 확보된다. 또한 전공의 번아웃을 방지할 수 있고 전공의 교육도 제대로 이뤄질 수 있다. 나의 경우는 미국 전공의 생활 1년차에 평균 환자 3~6명의 주치의를 맡았고 규칙상 10명을 초과할 수 없었다. 미국 전공의들에게 '한국 전공의는 환자 20명을 맡는다'고 얘기하면 하나 같이 'unsafe(위험하다)'라고 말한다.
 
Q. 사직한 한국의 전공의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현재 한국 의료에 몸담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한국의 전공의들에게 감히 무슨 말을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그저 의사가 되기 위해 어릴 적부터 치열하게 살아왔는데 그만큼 기대했을 미래에 찬물을 쏟는 정책을 보며 상실감이 매우 클 것으로 생각한다. 한국 의료체계의 미래를 위해 용기를 내는 것과 환자를 지켜야 하는 의무 사이 괴로운 선택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 정말 안타깝다. 본인 양심에 따라 행동하고 있는 한국의 모든 전공의들을 응원한다. 큰 사고 없이 사태가 조속히 정상화되길 간절히 바란다.

확연히 다른 미국과 한국의 전공의 시스템…의사 생활 장점과 단점도 천차만별
 
Q. 한국에선 소아청소년과가 기피과로 알려져 점차 지원자가 줄고 있다. 미국의 상황은 어떤가.
 
미국도 소아청소년과는 경쟁이 적은 전문과 중 하나다. 미국은 학비가 비싸 의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할 때가 되면 평균 2억5000만원 정도의 빚이 생긴다고 한다. 이 때문에 의대생들이 미래 수입에 민감하고 소아과는 타과에 비해 비교적 수입이 적어 경쟁률이 적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해도 작년에는 약 4000명 되는 소아청소년과 정원의 97%를 채우는 등 한국처럼 극단적으로 지원자가 부족하지는 않다.

Q. 전공의를 대하는 한국와 미국의 시스템 차이가 있을 것 같다. 간단하게 소개한다면.
 
한국에서 전공의를 직접 경험해보지 못해 함부로 비교하기는 어렵다. 다만 미국에서 수련받으면서 느낀 점은 노동자인 동시에 피교육자인 전공의를 위한 교육 시스템이 잘 자리 잡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은 모든 전공의 프로그램을 인가하는 ACGME (Accreditation Council for Graduate Medical Education)라는 전문민간단체가 있다. 프로그램이 충분한 교육을 제공하고 있지 않다고 ACGME가 판단하면 인가가 철회되고 전공의를 더이상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이를 철저히 지키려고 노력한다는 장점이 있다.
 
지금 수련받고 있는 병원에서도 체감되는 몇 가지 교육 시스템이 있다. 금요일 오후 3시간 동안 보호받는 교육시간(업무폰을 교수에게 넘기고 강의에만 집중)이 있다. 이전에 있던 병원에서는 매 점심시간마다 1시간 동안 식사를 제공받으며 1시간씩 강의를 들었다. 또한 매달 로테이션을 마친 후 온라인으로 교수가 나를 평가하고, 나도 교수를 평가한다. 이렇게 꾸준히 피드백을 받는 것이 약점을 보완하는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어떻게 하면 교수가 교육역량을 발전시킬 수 있는지 나에게 묻는 것도 놀라웠다.
 
전공의는 매달 새로운 전문과를 도는데(로테이션), 소아과의 경우 1년차는 대부분 로테이션이 병동에서 주치의 근무라 근무시간 80시간을 채우며 고된 시간을 보내지만 2년차부터 'Elective'(선택) 로테이션이 매년 4~6개월 주어진다. 'Elective'는 내가 관심있는 분야의 로테이션을 골라서 근무하는데, 이때는 주치의 업무를 맡지 않아 매주 근무시간이 40시간 내외여서 자유시간이 많다. 이런 'Elective' 로테이션이 있을 때마다 그동안 바빠 읽지 못했던 교과서나 논문도 읽고, 연구활동도 진행할 수 있다.

특히 미국 정부는 수련병원에 평균적으로 전공의 1명당 연간 1억5000만원을 지급한다. 미국 전공의 연봉이 약 9000만원에서 1억원 사이인데 이를 훨씬 뛰어넘는 금전적 지원을 하면서 병원에서 전공의 수련을 장려한다. 반면 한국에선 전공의들의 평균 연봉이 약 5000만원이고 이마저도 대부분을 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하고 수련병원이 직접 지원한다. 따라서 한국 수련병원들은 전공의를 극한의 노동강도로 몰아야만 적자를 면할 수 있는 구조다. 전공의들이 온전히 교육을 받지 어려운 시스템인 셈이다. 
 
Q. 최근 한국 의료시스템에 회의를 느끼고 미국의사면허를 취득하고 싶어하는 전공의들도 늘고 있다. 미국 의사 생활의 장단점을 이야기해달라.
 
가장 큰 장점이라면 의사 한 명마다 환자 수가 적어 환자를 보다 꼼꼼하게 볼 수 있는 것이다. 외래의 경우 보통 예약 없이는 의사를 볼 수 없기 때문에 환자마다 15~20분의 시간이 주어진다. 환자마다 편차가 있지만 대체로 의사의 의학적 권고를 잘 존중해주는 편이라 보람도 크다. 전문의가 된 이후 개원, 교육, 연구, 파마 등 진로가 다양한 것도 장점이다.
 
한국 의대 졸업생으로서 제일 크게 체감되는 단점은 현실적으로 진출할 수 있는 전문과가 한정돼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 내과로 진출하고, 수술과에 합격하기는 지원자가 특출나지 않으면 어렵다. 신분 문제도 무시할 수 없는데 미국 영주권이 없다면 비자를 받아 수련을 받아야 하고, 영주권을 받으려면 전문의가 된 이후 의료취약지역에서 3년을 일해야 한다. 한국 사람에게 익숙한 대도시에서 살면 그나마 적응하기 편하지만, 시골로 갈수록 소수자로 살아가야 하는 외로움과 불편함이 있다.
 
그 외 모든 미국의사들에게 적용되는 단점이라면, 갈수록 늘어나는 의무기록 부담이 있다. 한국에 비해 의무기록에서 요구하는 디테일이 훨씬 더 많기도 하고 의료소송에 대한 방어를 위해 꼼꼼하게 작성해야 되기 때문에 의무기록 작성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크다.
 
또한 보험 시스템이 복잡해 환자 보험으로부터 진료비를 받으려면 서류 부담이 커 혼자 개원하기보다는 동업을 통해 서류처리 비용을 최소화하는 추세다. 환자가 응급실에 왔는데 병원이 환자의 보험을 받지 않아 다른 병원으로 전원해야 되는 경우도 종종 보는데 이런 혼란스러운 의료시스템에서 일하는 것도 스트레스다.

하경대 기자 (kdha@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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