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 자연분만 아기, 출생 후 뇌성마비 진단에 기소 당해…산부인과학회∙모체태아의학회 "부당한 사법적 폭거"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박민식 기자] 분만 관련 의료사고로 서울의대 산부인과 교수가 형사 불구속 기소를 당한 것으로 확인돼 파장이 예상된다. 의료계는 가뜩이나 부족한 산부인과 의사가 멸종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5일 대한산부인과학회∙대한모체태아의학회에 따르면 지난달 26일 서울의대 산부인과 A 교수가 분만 관련 의료사고 형사 사건에서 불구속 기소됐다. A 교수가 수년 전 자연 분만으로 받은 아기가 출생 후 뇌성마비 진단을 받게 된 것과 관련해 형사 재판을 받게 된 것이다.
통상 분만 과정에선 의료진이 교과서적 진료 지침을 준수하고 충분한 주의 의무를 다하더라도 뇌성마비와 같은 중대한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다. 이에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및 일본 등의 주요 선진국에서는 분만 과정에서 발생한 불가항력적 손상이나 단순 과실에 대해 의사를 형사 기소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형사 사건화는 고의 또는 극심한 중과실이 있는 지극히 예외적인 경우에 한정되며, 대부분의 배상은 민사적 합의나 무과실 보상 기금을 통해 해결된다.
이에 두 학회는 이날 성명서를 발표하고 “이번 불구속 기소는 의학적 사실을 외면한 부당한 사법적 폭력이며, 산부인과 의사 전체를 잠재적 범죄자로 낙인 찍는 위험천만한 선례가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뇌성마비는 분만 과정의 특정한 의료행위 하나로 직접적 인과관계가 입증되기 어렵다는 게 의학계의 공통 결론”이라며 “미국 산부인과학회와 국제산부인과연맹 역시 뇌성마비의 원인을 분만 의사의 과실로 단정하는 건 부적절하다는 공식 지침을 수차례 밝힌 바 있다”고 했다.
학회들은 “따라서 선생아 뇌성마비의 발생을 단순히 의사의 잘못으로 단정해 형사 법정에 세우는 건 의학적 근거를 무시한 무리한 기소”라며 “산부인과 의사 전체를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행위”라고 했다.
이어 “우리나라의 열악한 분만 환경은 이미 많은 산부인과 의사에게 분만을 접게 만든 지 오래”라며 “반면 혼인, 출산 연령의 상승으로 고위험 산모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고위험 산모 및 태아의 진료를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산과 교수의 수는 매년 감소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학회들은 “이런 상황에서 24시간 분만장을 지킨 의료진에게 불가항력적 결과에 대한 형사 처벌이 감행된다면, 어느 산부인과 의사가 어느 산과 교수가 우리나라의 분만 현장을 지키겠나”라며 “최선의 진료를 다했음에도 불행한 결과가 나왔단 이유로 의사를 가해자로 내몬다면, 이는 산부인과 의사들에게 분만장을 모두 떠나라고 강요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했다.
이어 “이런 사례가 이어진다면 이제 전국 의대의 산부인과 교수들은 더 이상 산과학을 학생들에게 가르치기 어려운 상황이 될 것이고, 이는 결국 우리나라 분만 인프라의 멸종이라는 국가적 재앙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에 두 학회는 ▲불가항력적 분만 관련 사고에 대한 기소 관행 즉각 중단 ▲제도적 보상 체계 마련 등을 촉구하며 “향후 불합리한 형사처벌로 인해 분만 기피, 교육 중단, 의료공백 사태가 발생한다면 그 책임은 전적으로 정부 등 수사기관에 있음을 천명한다”고 했다.
이어 “학회는 산부인과 의사의 정당한 권익과 안전한 분만 환경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노력할 것”이라며 “이러한 부당한 사법적 폭거가 다신 발생하지 않도록 강력히 대응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