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17.09.01 05:00최종 업데이트 17.09.0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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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크의 CETP가 드디어 웃을까?

심혈관계질환 치료 위한 CETP 저해제 개발

[칼럼]한국아브노바연구소 배진건 소장

이미지출처: 게티이미지뱅크


1989년 미국 뉴욕 콜롬비아 의과대학의 알란 톨(Alan Tall) 박사가 권위 있는 과학잡지 네이처(Nature)에 중요한 논문을 발표했다.

하와이에 거주하는 일본계 사람들이 좋은 콜레스테롤로 알려진 HDL(High Density Lipoprotein)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은 이유가 CETP(cholesteryl ester transfer protein)라는 단백질의 돌연변이 때문이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한 것이다.

콜레스테롤에스테르 전이단백질(CETP)은 지방단백질 사이에서 콜레스테롤에스테르(CE)와 중성지방(TG)의 운반을 촉진해 HDL의 콜레스테롤에스테르와 교환하는 역할을 하는 혈장단백질이다. 따라서, 이 논문은 CETP를 저해하면 이상지질혈증 치료제로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제시했다.

CETP 억제를 통해 HDL 수치를 증가시킬 수 있고 증가된 HDL은 혈관이나 조직의 잉여 콜레스테롤을 간으로 운반해 체외로 방출시킴으로써 죽상동맥경화 및 심혈관계질환의 위험성을 감소시킬 수 있을 것이다. 다국적 제약사들은 '세계 10대 사망원인'중 1위인 심혈관계질환 치료를 위해 소리 없는 CETP 저해제 개발 전쟁을 시작했다.

1990년 초 내가 근무하던 쉐링 플로(Schering-Plough)에서는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었고(그 결과로 'Zetia(ezetimibe)'라는 약이 2002년에 나왔다), 마침 톨(Tall) 교수가 임상개발 자문위원이었기에 CETP 저해제를 새로운 타겟으로 결정했다. 회사 심혈관계 신약개발 부서가 적절한 실험검증 방법 개발에 실패하자 해당 연구는 분자 약리학(Molecular Pharmacology)에 소속된 필자의 과제가 됐다.

CETP는 콜레스테롤을 옮겨주는 단백질이기에 매우 소수성(hydrophobic)이다. 포스폴리파아제(Phospholipase) 등의 연구를 통해 지방단백질의 특성을 잘 알고 있었기에 일상적으로 쓰는 튜브(Tube) 말고 실리콘 튜브(Siliconized Tube)를 써야 에세이가 가능하고 콜레스테롤 전달(transfer)이 시간과 농도 의존적으로(time-dependent) 4시간까지 계속 일어난다는 결과를 보여줬다.

이것을 바탕으로 일상적인 신약개발의 첫 단초인 고속대량스크리닝(HTS: High Throughput Screening)을 만들어 화합물은행을 돌리고 유효물질을 찾고 선도물질에 이어 후보물질까지 만드는 작업을 계속했다.

CETP 저해제 개발의 소리 없는 전쟁 중에 가장 빠르게 치고 나간 회사가 화이자(Pfizer)였다. 병용 사용할 수 있는 리피토(Lipitor)도 가지고 있었기에 가장 먼저 임상에 진입했다.

순항 중이던 화이자의 토세트라핍(torcetrapib)은 2006년 연말 사망 사건 및 안전성 문제 때문에 임상 3상 프로그램을 중단했다. 이후 CETP 타겟에 대한 약간의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토세트라핍(torcetrapib) 중단 이후 2012년 로슈(Roche)의 달세트라핍(Dalcetrapib)이 CETP 효능 불충분으로 중단되고 계속해서 2015년 일라이릴리(Eli Lily)의 에바세트라핍(Evacetrapib)이 HDL 향상효과가 분명하지 않아 개발이 중단됐다.

이제 같은 계열에 남은 것은 머크의 아나세트라핍(anacetrapib)뿐이다.

숨을 죽이고 조용히 임상을 진행하던 머크(미국·캐나다 외 지역에서는 MSD)가 'REVEAL'이라는 임상시험에서 아나세트라핍(anacetrapib)이 스타틴 약물을 투여하고 있으면서, 심장 사고(incidence) 위험이 있는 환자들에서 위약에 비해 주요 관상동맥 사고(관상동맥 사망, 심근경색, 관상동맥 혈관재형성)를 통계적으로 의미 있게 감소시킨다고 지난 6월 발표했다.

'REVEAL' 연구는 심혈관계 질환위험이 높은 환자 3만여 명을 대상으로 아토르바스타틴(atorvastatin)을 이용한 LDL-C 저하 치료에 아나세트라핍을 병행해 치료법의 효능과 안전성을 최소 4년 이상 평가한 무작위배정, 이중맹검, 위약대조군 대규모 임상시험이었다.

주요 관상동맥관련 사고에는 관상동맥 협착으로 인한 사망, 심근경색, 관상동맥 혈관재형성 시행이 포함됐다. 아나세트라핍의 안전성 프로파일 중 초기 분석에서 관찰된 지방조직 내 아나세트라핍 축적은 이번 임상에서 수백 명 바이옵시(biopsy)를 통해 안전성에 유의미하지 않아서 염려를 덜었다고 한다.

머크는 외부 전문가들과 임상시험 결과에 대해 더 신중하게 검토한 뒤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승인신청서 제출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2012년 말에 범부처신약개발사업단(KDDF)에 CETP 저해제인 CKD-519에 대한 연구과제 계획서가 들어왔다. 이때는 화이자에 이어 로슈가 선두주자로서 개발을 중단한 직후였기 때문에 빅파마도 죽이는데 이 과제가 대한민국에서 가능할지, 워낙 시장이 크기에 작은 돈을 투자해도 괜찮다 등 여러 의견이 제기됐다.

머크의 아나세트라핍과 구조가 거의 같지만 빈틈을 공략해 전세계 특허를 보유한 이 물질에 대해 범부처신약개발사업단의 투자심의위원회는 머크가 중단할 때까지는 최소한 개발을 계속할 가치는 있다고 판단했고, 결국 2013년 3월 사업단 과제로 선정됐다.

머크의 CETP 저해제가 숨죽이고 있다가 2017년 비로소 웃는다면 그 때 적절한 결정을 한 KDDF도 같이 웃을 수 있을 것이다. CKD-519 개발이 계속 잘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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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식 기자 (column@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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