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19.04.23 06:33최종 업데이트 19.04.23 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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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에 역행하는 전공의 수급 정책

대형병원 수요에 따른 전공의 정원 책정은 문제, 고용 가능 여부로 정원 산정해야

[칼럼] 안덕선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장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의사면허 취득 후 인턴과 레지던트를 거치며 수련 과정을 밟는 전공의에 대한 TO 즉, 인력 편성에 대한 최종 결정권은 보건복지부가 쥐고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전공의 적정 인원 산정을 위한 실행부서는 보건복지부에 존재하지 않는다. 보건복지부 내에 의료정책 또는 의료자원 담당 부서 몇 명의 공무원이 우리나라의 모든 보건의료 직종에 관한 인력들을 관리하고 있다. 이들은 대개  2~3년 또는 더 짧은 주기로 보직이동을 반복하고 있다.

따라서 보직을 맡고 있는 공무원들은 전문성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특화된 전문성을 요하는 직무에서 광범위하고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 이렇기 때문에 정부 중앙 부처 입장에서는 당연히 하도급을 주는 것처럼 전문의 인력 추계 업무를 해당 전문 학회에 의뢰하게 되는데, 학회 역시 급변하는 의료수요와 질병 변화의 패턴 등에 기반한 근거 중심의 논리적이고 체계적 분석 없이 과거부터 흘러온 방식대로 소위 역사적 산정(historical account)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형병원 환자 쏠림에 따른 수요로 전공의 정원 채워선 안돼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국가 보건의료체계의 틀을 유지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기초가 되는 것이 바로 전공의 수급계획이다. 이에 정부의 사업 계획과 확보된 예산 범위에서 논의가 시작된다. 

복지부 일관된 정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복지부 한쪽에서는 의료전달체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고 또 다른 쪽에서는 선심성 짙은 의료정책으로 전달체계를 무력화하는 방향으로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중앙 부처 등 정부 조직은 각 부서별 전문성을 기반으로 국민을 위한 보건의료제도와 정책을 수립하고 유지해야 한다. 그러나 각 부서 간 합리적 조율이나 협업을 기대하기 어렵다. 청와대 역시 국가 보건 정책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하기는 마찬가지여서 국민을 위한다는 보건의료제도가 정권유지 내지 새로운 정권 창출을 위한 도구로 둔갑되는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해 국민에게는 막대한 경제적 부담과 피해를 입히는 의도치 못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는 것이다.

현 정권에서도 마치 돈 먹는 하마처럼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고 있는 ‘문재인 케어 정책’과 일부 대형병원으로의 환자 쏠림 급발진 현상이 발현되는 것은 전문가단체와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한 검증되지 않은 정책 탓이다. 

국민의 경제적 부담 없는 의료제도를 확대하는데 반대할 사람은 없다. 그렇지만 당장 눈앞에 펼쳐지는 ‘공짜 점심’ 보다는 건강한 국부 창출과 지속 가능한 균형 있는 국가 운영의 틀이 우선적으로 고려돼야 한다. 따라서 현재와 같이 인기 위주의 정권 유지용이나 도덕적으로 해이한 정책들이 곳곳에서 힘을 쓴다면 국가 장래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심각한 판단을 할 수밖에 없다. 

선심성을 염두해 기획된 정략적인 정치 산물은 대부분 사회주의 국가들에서 테스트 베드용으로 끝나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선진국을 모방한 제도 역시  선진국과 우리나라의 차이를 냉정하게 판단해 생각 없이 따라 하기나 그 결과에 대한 속단을 경계해야 한다. 누적된 국부로 100년 이상을 지탱할 수 있는 저력이 갖추어진 국가들과 겨우 한세대에 걸쳐 초고속 압축 성장을 통해 이룬 초보 경제선진국의 역량은 분명히 큰 차이가 있음을 망각하지 말아야 한다.

현 정권 출범에 따라 내놓은 사은 상품과도 같은 문 케어의 현실은 전국의  대학병원들을 마치 대형 진료 공장처럼 가동하게 하고 있다. 이에 따른 수많은 종사자들의 심각한 피로감과 인력부족으로 이어지고 있다.

의료전달체계의 붕괴는 고사하고 부족한 전공의 수를 채워 준다해서 이들이 전문의가 됐을 때 고용이 가능할까. 이들이 전문의로 계속 일을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이미 전공의로 교육 받은 전문과목과 실제로 자신이 하는 의료 활동에서 괴리 현상이 심각하게 전개되는 현실에서 임상교실이나 병원의 기관 성장을 위한 전공의 수는 절대로 고려요소가 돼서는 안 된다.

선진국에서 전공의 배정은 사회 전체 의료수요에 대한 산정이다. 정부가 예산을 지원해 양성하는 사회적 수요에 대한 산정이지, 단순히 기관 수요에 대한 산정은 아닌 것이다.  

영국 흉부외과 전공의 14명, 1년 50건 이상 수술하지 않으면 전공의 선발 불가 

현재의 40개 의과대학 체제에서 전공의 수급계획은 애초당초 조절이 불가능해 보인다. 모든 대학병원이 대학마다 모든 임상과의 전공의를 1명씩만 요청해도 과목별 40명이 되는 현실이다. 전산용어로 디폴트가 40부터 출발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이는 실제 사회의 수요와는 배치되는 산정방식이다. 전국 40개 의과대학의 현실에서 제대로 된 진정한 의료 수요예측과 의료기관의 생존을 위한 예측이 충돌할 가능성이 아주 농후한 것이다. 

속칭 비인기과로 지원자가 적어 애를 먹고 있는 예를 들어보자. 캐나다의 경우 흉부외과는 2012년에 전국에서 12명의 전공의를 선발하고 있다. 인기과인 성형외과의 경우 캐나다 전체에서 23명(11개의 교육프로그램)이 전공의로 선발돼 훈련받고 있다. 필자가 캐나다 전문의 시험을 볼 때 캐나다 전국에서 12명이 합격했는데 그나마 2명은 미국에서 수련한 캐나다 시민이었다.

영국의 흉부외과는 매년 필요한 전공의를 14명으로 책정하고 있으며, 2014년부터 성형외과는 37명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런 정원 조정은 사회적으로 신뢰할 만한 각종 통계자료에 근거한 것이다. 

영국의 2011년 흉부외과 전문의 응시생은 20명이었다. 지금도 전공의 수는 비슷하다. 심장수술 등 고난이도의 외과계열 수술은 최소 주당 1건, 년간 50건의 사례가 최소 인증기준으로 적용돼 최소한의 수술건수 등이 보장되지 않는 병원은 전문 인력 양성이 원천적으로 차단돼 있다. 

전공의 정원 책정은 국가 의료제도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사안이다. 현재와 같이 과학적이지 못하고 기득권에 의한 전통 재래 방식의 전공의 인력 추계 방식은 사라져야 한다. 이제는 공적 자본에 의한 공공기구나 제도의 설립으로 전공의 수급, 의사 뿐만 아니라 보건의료인력 전체에 대한 체계화된 수급 정책을 마련할 수 있는 선진화 방안을 마련해야 할 때다.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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